불교계 내외의 호응 속에 진행돼 온 ‘동화사 담선대법회’의 논주로 예정됐던 중진 수좌스님이 불참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0월 9일 열린 제6회 담선대법회에서 ‘간화선의 수행체계’를 발표할 예정이었던 논주 철인 스님(선원과 토굴에서 30년간 정진한 선방수좌)은 이틀전인 7일 동화사 홈페이지에 올린 편지 글을 통해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종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강의로 인해 조사선을 실참하는 한 종도로서 자괴감을 느꼈다”며 담선법회의 불참 이유를 밝혔다.
철인 스님은 이 글을 통해 “선의 종지에 대한 바른 안목을 탁마하자는 것이 담선일진데 어록을 읽고 사유하는 것이 간화선이라고 강변하는 논리의 바탕 위에서 실참수행하는 납자는 설자리가 없는 것”이라며 “따라서 무슨 담선이며 무슨 선사상을 운위할 수 있겠느냐”며 강조했다. 스님은 “선은 시대의 철학이 아니라 초시대적 깨달음이며 교학의 역사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교학이전의 인간의 본분에 곧바로 참예(參詣)하고자 하는 것이다”며 “실참실오를 통한 일초직입(一超直入)의 선수행자로선 공안 화두를 통한 안목의 간택(揀擇) 이외에는 모두가 부질없는 한담(閑談) 임을 더욱 절감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동화사 교무 현천 스님은 홈페이지에 올린 답신을 통해 “이번 담선법회의 취지는 간화선의 효용과 가치를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해 보고자 마련한 것”이라며 “한 번 더 숙고해 적극적으로 견해를 피력, 간화선의 종지를 세우는데 앞장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철인 스님과 현천 스님의 편지글 전문이다.
철인 스님이 밝힌 담선법회 불참 이유
"교무 스님 法下, 개인적으로 스님께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公的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저의 처지를 신중하게 다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談禪法會의 불사 취지는 동화사 스님들께서 이루어낸 더할 수 없는 원력의 소산임을 동감하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법회에 참여하여 현장 경험을 하여보니 많은 문제점들을 느끼며 알게 되었고, 차라리 법회에 참석하지 않는 강력한 의지를 통하여 저의 평소 소신을 나타내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鏡虛스님 이후 명실상부하게 한국 불교의 禪脈을 잇고 祖師禪(看話禪)을 提唱하신 香谷스님의 법제자임을 만천하에 자부한 眞際스님이 祖室로 주석하고 있는 동화사에서 조실스님의 法(宗旨)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法師의 강의가 과연 옳은 일인가?
이것은 동화사만의 일이 아니며 禪宗을 標榜하는 曹溪宗의 종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일로써 祖師禪을 實參하는 한 宗徒로서는 깊은 모멸감과 자괴심을 동시에 느낄 뿐만 아니라, 크나 큰 우려의 심정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이 시대에 선에 대한 개방적인 자세로 무슨 의견이든지 터놓고 논의해 보자는 담선의 의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保守的인 자세로 저의 살아온 삶의 궤적을 지키고 합리화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몸부림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중요한 점은 선을 논하는 데는 기본적인 룰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것은 인문학이나 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禪은 宗旨에 대한 기본적인 眼目이 있어야 하는데 안목이 갖추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이론적인 穿鑿만으로 선을 논하다보니 화려한 논변 속에 근본적으로 誤謬를 범한 본질적인 문제는 감추어지고 묻혀 버려서 결과적으로는 선종전체를 誤導하고 파괴시키는 행위를 초래하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함께 참여한 수좌들까지 그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정당화시켜주는 조연 역할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주연, 조연을 떠나서 바른 선지를 선양하는 것이 衲子의 소임이 아니겠는가? 또한 법회에 참여한 의의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스님도 참여하여 보셨지만 祖師禪, 如來禪, 殺人刀, 活人劍, 看話 등에 대한 문제는 납자의 처지에서는 한 문제만 거론해도 선의 모든 핵심을 금방알 수 있는 것이지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일천천각이라고 한 꿰미로 꿰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이해의 바탕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데 선사상을 논해 본들 화려한 언변만이 난무하여 선의 종지는 사라져버리고 없습니다. 南北頓漸, 神秀, 神會스님 등의 역사적 문제도 종지의 안목이 갖추어 있어야 본질적인 내용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지말적인 문제에 집착하여 그 시대 정치, 경제, 권력, 종권 다툼으로 풀어가려고 하다보니 항상 주관적인 해석을 벗어나지 못하고 맙니다. 이것은 역사를 보는 하나의 관점은 될망정 그 동안 천 몇 백년이 흘러오면서 총림의 종사들의 안목을 거쳐 일관되게 평가작업이 완료된 핵심적인 종지는 항상 놓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 선의 종지에 대한 바른 안목을 탁마하자는 것이 담선일진데 語錄을 읽고 思惟하는 것이 看話禪이라고 강변하는 논리의 바탕 위에서 實參修行하는 衲子는 설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슨 談禪이며 무슨 禪思想을 운위할 수 있겠습니까?
옷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두가 맞지 않는 것인데 잘못된 지말에 천착하여 횡설수설해 본들 화려한 言辯의 合理化에 다름 아닙니다. 그 가운데서 바른 禪旨를 宣揚한다는 것이 마치 산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심정은 나의 공부 부족과도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써 결코 상대의 잘못된 견해만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禪敎一致論이 팽배하여 敎의 思惟心으로 간화선을 삼아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여기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며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荒木見悟 같은 분도 '교선일치론은 이른바 교종과 선종의 혼혈아로서 탄생한 절충적 입장일 뿐이다. 그것은 교학의식의 연장 발전, 자기 보존으로써 선을 포섭하고 자 한 것이기에 자칫하면 선자체의 생명을 말살하게 될 우려마져 안고 있다. 실제로 선의 주장과 행도에 圭峰 宗密이 우려한 폐해가 있었다하 더라도 그는 선에다 경을 첨가함으로써 구제의 방법을 모색할 것이 아 니라 선자체의 내부적, 자주적 조정력을 신뢰해야만 했던 것이다. 선의 전등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불교전통의 바깥에 존재한다. 따라서 선이 불교 이외의 학파나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선은 시대의 철학이 아니라 초시대적 깨달음이며 교학의 역사를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교학이전의 인간의 본분에 곧바로 參詣하고자 하는 것이다.'
선에 대한 바른 이해를 하고 있는 선학자도 이러한 명쾌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實參實悟를 통한 一超直入의 禪修行子로선 公案 話頭를 통한 眼目의 揀擇 이외에는 모두가 부질없는 閑談 임을 더욱 절감합니다. 우리의 가풍인 對處와 良久도 천둥소리보다 더한 또 하나의 答이니 본 뜻은 여기에 있으나 말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건강하시고 禪房에서 다시 만납시다.
吹毛庵 哲忍 "
동화사 교무 현천 스님의 답신
"수행 정진에만 매진하시는 스님을 세간에 불러내어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스님의 글을 보고 담당자로서 이번 담선대법회의 취지와 목적을 한번 더 밝혀야 될 입장이 되었습니다.
도의국사께서 남종선의 정안을 얻으시고 이땅에 조계의 종당을 게양하신 이래 구산선문이 차례로 문을 열어 마침내 1200여 년 동안 한국 불교를 향도해 왔던 선불교가 작금에 이르러 그 활발발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교단 내부에서조차 위빠사나 남방선, 아바타, 동사섭등 제 3 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가고, 일부에서는 마하리쉬등 힌두교 수행자들의 가르침에 경도되고 있는 현실은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주머니 속에 지고(至高)하고 무상한 보배가 들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처럼, 간화선의 효용과 가치를 분명히 인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나타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근대 교단 내부에서 간화선풍을 어떻게 진작할 것인가 하는 번다한 논의가 시도되어 왔으나 일회적인 논의로 그치거나 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큰 스님 법문으로 듣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면, 또 안거철에 논의를 진행함으로써 실질적인 주체가 되어야 할 선방 수좌가 참여하지 못하고 교가(敎家)의 의견만 분분한 자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에 동화사에서는 지난 오류를 반면교사로 삼아 불기 2548(2004)년 하안거를 해제한 직후 9月 4日(토)부터 '참선(간화선)수행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담선 대법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처음 이 법회를 기획할 때는 최소한 논주스님들은 모두 선원장 스님들로 모실려고 했으나 많은 분들이 사양해서 부득불 선학자 들도 참여하게 되었음을 밝혀 둡니다.
문제는 지난 9月 25日(토) 제 4회 법회(논제:조사선의 성립과 수행체계, 논주:성본스님 논사: 철인스님, 혜원스님, 정각스님)때 논사였던 철인스님과 논주 성본스님과의 많은 이견(異見)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스님께서도 지난번에는 논사로 나오셔서 할 말을 다 못하셨겠지만 다음 제6회 법회때는 스님이 논주로 나오시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스님의 견해를 피력할 수 있고 간화선의 종지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한번 더 숙고하셔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나다.
참고로 제5회 법회때 논주로 나오셨던 정광스님(봉암사 선원장)은 스님의 분상에서 법문을 해 주셔서 대중들로부터 많은 호응과 박수를 받았습니다.
아무쪼록 스님께 부처님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현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