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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불심 화두10]9 불서로 풍요로운 인생
한국은행 불자회 간사장 하용이 국장이 은행 정보 자료실에서 <초발심자경문>을 공부하고 있다. 사진=김철우 기자
‘새벽 출근, 한밤 퇴근.’ 직장인들이 지쳐간다. 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몸과 마음은 늘 쫓기며 산다. 잠시 틈이라도 나면 쉬기도 바쁘다. 여유롭게 책장 넘기는 것, 아무래도 힘들다. 직장에서는 주위로부터 꽂히는 ‘눈총’이 만만치 않고, 집에서는 책에 손 가기까지 마음 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 일터불자들은 어떨까? 쫓기며 살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불서를 읽는다는 점이다. 출ㆍ퇴근과 점심시간, 잠자리 들기 전 등 틈만 나면 불서를 집어 드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매일 매일 ‘종이거울’에서 마음을 본다는 일터불자들. 이들의 ‘불서 읽기’ 애정과 그 구체적인 책 읽기 노하우 등을 공개한다.

▼‘날카로운 첫 키스에 눈이 멀다(?)’
한국은행 불교회 간사장 하용이 국장(52ㆍ자운). 금융계 투신 29년간 <금강경>을 늘 끼고 생활했다. 1968년 고등학생 시절 처음 접한 <금강경>.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는 사구게 처음 구절은, 만해 스님이 남긴 ‘님의 침묵’의 한 구절처럼 잊지 못할 불교의 첫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하 국장을 ‘불서 독서광’으로 만들었다. <천수경>, <법화경>, <초발심자경문> 등의 경론은 기본, 일주일에 한번은 불교전문서점 ‘여시아문’에서 신간 서적을 구입해 족족 다 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다. 부처님의 생생한 원음을 경전에서 듣고, 세상 보는 눈을 넓히고 싶어서다. 또 일터에서 불교식 처세술을 찾기 위해 불서를 탐독했다.

틈틈이 읽은 불서는 하 국장에게 든든한 ‘지혜창고’가 돼 주었다. 특히 ‘스님의 설법이 어렵다고 생각(懸崖想)을 내어 물러나는 마음을 내거나, 자주 들었다는 생각(慣聞想)을 지어 가볍게 여기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초발심자경문> 경구는 직장인으로서 생활하는데 훌륭한 지침이 됐다. ‘지레짐작 일을 두려워하거나 하지도 않고 안 된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리게 했다. 덕분에 하 국장은 직장 선ㆍ후배는 물론, 동료간 화합을 이끄는 리더십을 얻게 됐다. 80년부터 4년간 잇따라 3명의 한국은행총재비서를 맡을 때 신임을 받았던 것도, 92년 급여과장 시절 한국은행 강성노조와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유지시킨 것도, 국장이 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게 된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불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순간, 돈을 꺼내어 쓸 수 있는 지혜의 금고입니다. 일이든 수행이든 문제가 생겨도 틈틈이 읽어놓은 불서는 언제나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었으니까요.”

성철 스님의 <영원한 자유의 길>을 요즘 읽고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과 작전계 신종기 경위(41ㆍ대광)도 불서는 자기반성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바쁜 일터불자들에게 불서는 법당도 스승도 된다는 것이다. 신 경위가 매일 1시간 일찍 출근해 ‘불서의 세계’로 빠져드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렇게 불서 읽기를 틈틈이 해온 결과, 신 경위는 최근 1주일간 진행된 민ㆍ관ㆍ군 합동 을지훈련연습을 성공적으로 마치는데 큰 힘을 얻었다. 빡빡한 훈련 일정으로 집에는 못 들어가고 일선 파출소에서는 수십 통씩 문의전화가 걸려올 때면, 짜증과 피곤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그 순간, ‘웃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라는 <법구경>의 경구가 머리를 번개같이 스쳐갔다. 그리고 반성이 들었다. ‘오죽 답답했으면, 내게 전화해서 물어보겠냐’ 싶었다.

“소중한 경구나 구절을 차근차근 마음에 담아두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다보니 일상생활 속에서 겪게 되는 갖가지 일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더군요.”

춘천시청 도반회 회원들이 퇴근 후 불서를 함께 읽고 있다.
▼‘읽어서 남 주자’
공무원 생활 36년째인 춘천시청 도반회장 정상현 지적과장(55ㆍ혜수). 정 과장은 지적과 직원 40명의 생일에는 언제나 불서를 선물로 준다. 이번 달에는 최근 발간된 법정 스님의 책 <홀로 사는 즐거움>을 네 권 사놓았다. 종교가 다른 직원들이 불서 받기를 꺼려할 만도 하지만, 정 과장이 10년 넘게 불서로 선물을 해오다보니 지금은 누구나 기쁘게 선물을 받아 든다. 종교와 상관없이 나누는 따뜻한 마음에 이제는 직원들이 정 과장에 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다.

정 과장은 이렇게 직원들에게 불서를 선물하기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 직원들이 원하는 불서를 고르기 위해 불교계 신문에서 정보를 얻는다. 신간 기사를 꼼꼼히 읽고, 어떤 책인지 정보를 메모한다. 그리고 선물할 책과 관련 기사를 함께 직원에게 준다. 좀더 불서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기 위해서다.

정 과장이 이렇게 법보시를 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알면 알수록 유익한 내용을 혼자만 갖기에는 너무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또 아끼는 이의 인생에 새로운 취미를 하나 더 보태는 계기도 됐기에 지금껏 불서 선물을 주고 있다.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도 있지요. 저는 ‘읽어서 남 주자’를 실천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불교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꺼내면 직원들이 부담스러워 하더군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책으로 주는 거였습니다. 자연스럽게 포교도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인 셈이지요.”

▼불서 읽는 습관이 중요하다
정 과장은 불서를 읽는 것은 마치 ‘밥 먹는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하루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 손닿는 곳에 읽을 책을 가져다 놓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화장실이든 침대 위든 사무실 책상이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 읽을 여건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시간 없다, 여유 없다’는 변명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불서 읽는 것을 수행으로 생각해 해요. 수행이 생활화되면 수행력에 탄력이 붙듯이 독서도 매한가지입니다.”

신종기 경위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틈만 나면 불서를 읽으라는 것이다. 대신 신 경위는 ‘얇고 쉬운 불서’부터 읽으라고 말한다. 지루하고 어려운 내용의 불서는 오히려 독서 의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신 경위는 불서에 흥미를 갖기 위해 불교기본교리 또는 입문 관련 책부터 정독할 것을 주문한다. 불교기초지식이 바탕이 돼야 다양한 불서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 후, 경전을 읽으면 각자에게 불교의 세계가 스스로 열리게 된다는 것이다.

경전류로는 우선, 부처님의 설법을 이야기식으로 재밌게 서술해 놓은 <잡아함경>을 읽고, 그 다음으로 쉬운 경구나 잠언 형식으로 돼 있는 <수타니파타> <법구경>, 초기대승경전인 <금강경> <유마경> <법화경> 등의 순서로 읽어나갈 것을 주문한다.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
2004-09-08 오후 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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