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뜻 깊은 날이잖어, 스님 제사가 있는데."
9월 6일 오전 청주 중앙공원. 말끔하게 차려입은 이철호 할아버지(85·청주시 분평동)가 행사장 연단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이날은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을 탈환한 날을 기념하는 412주년 추모대제가 열리는 날. 이 추모대제는 의병장 영규대사, 의병장 조헌 장군과 박춘무 장군, 그리고 무명의 의승병과 의병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해 청주불교실업인회(회장 윤기봉)가 매년 치러 온 행사다.
행사가 시작되고 범추 스님(풍주선원 원장), 일송 스님(태고종 충북종무부원장), 연영석 청주시 부시장, 유기영 청주시의회 의장 등의 헌화에 이어 추모사와 평화사 합창단 추도의 노래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인원은 모두 900여 명. 이 중 어르신이 700여 명. 원래 중앙공원이 어르신들의 쉼터이기도 하지만 추모제 뒤에 경로잔치가 이어지기 때문에 평상시 보다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했다. 사실 이날 행사의 포인트는 바로 경로잔치.
추모제가 끝나자 이날 점심공양을 책임진 광덕사(주지 일봉) 관음회 회원들의 손길이 바빠졌고, 국수와 떡을 먹기 위해 어르신들의 긴 행렬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고맙지 뭐. 이렇게 노인들 대접하느라고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지."
가톨릭 신자라는 김종완 할아버지(70·청원군 남이면)는 절에서 점심까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며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 옆에 있던 기독교 신자라는 김용희 할머니(78·청주시 탑동) 역시 "불교신자들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니 복 받을 거여"라며 국수를 휘휘 젖는다.
진천 대흥사 신도라는 임택심화 보살(77·청주시 탑동)은 "친구들이랑 오늘 처음 왔어, 절에서 점심도 주고, 노래도 한다고 해서…, 불교신자들이 좋은 일 많이 하니까 기분이 좋아요"하며 같이 온 친구들에게 자랑한다.
국수와 떡, 과일과 음료. 차린 것은 이것이 전부지만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진수성찬인 모양이다. 아마도 어르신들을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인 듯했다.
"어떤 분들은 왜 밥을 안주고 국수를 주느냐고 불평을 하세요. 더 많이 드리고 싶은데 못 드리니 안타깝죠."
광덕사 관음회 회장 양대자행 보살(62·청주시 금천동)은 6년 째 이렇게 자원봉사를 해왔으면서도 늘 죄스런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점심공양이 끝나갈 무렵 청주 민속공연단인 '우리가락 좋을씨구'의 공연이 이어지고 몇몇 어르신들이 흥에 겨운 듯 무대 앞으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춘다.
행사를 주관한 청주불교실업인회의 이대성 사무국장은 제를 지내고 남은 음식을 어르신들에게 싸 드리느라 와이셔츠가 다 젖었다.
"할머니, 너무 욕심 내시면 안돼요, 다른 분들도 드셔야죠." 빙그레 웃으며 건네는 한마디에 몇몇 어르신들이 멋쩍어 한다. 하지만 이내 손을 맞잡고 "건강하세요" "고생했지"라며 인사를 나눈다.
간단한 행사였지만 스님과 불자들 그리고 시민과 어르신들은 잠시나마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가졌다. 중앙공원의 하루는 그렇게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