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를 다 찧었는냐?”
“다 찧은 지 이미 오래입니다. 키질만 하면 됩니다.”
그날 밤 늦게 오조홍인 대사는 혜능 행자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여 아무도 모르게 <금강경>을 강의했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應無所住而生其心).”
혜능은 이 구절에 이르러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이날 밤 홍인 대사는 혜능을 선종의 제6조로 정하고 전법의 징표로 가사와 바루를 물려준다. <육조단경>에 나오는 육조혜능 스님과 <금강경>과의 기연이다.
“본종의 소의경전은 <금강경>과 전등법어로 한다”는 조계종헌의 규정에서 보듯〈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경전 중의 하나이다.
올초부터 불어닥친 간화선 수행붐을 타고 최근 <금강경>을 통해 선(禪)을 공부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 선교쌍수(禪敎雙修)의 바람직한 신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02-765-9602) 원장 지관 스님이 9월 24일부터 2년여간 매주 금요일 오후 7시~8시30분 ‘금강경 오가해(五家解)’ 강좌를 개설하는 것을 비롯해 서울 보문사와 공생선원도 ‘금강경 선해(禪解)’ 강좌를 잇달아 연다. 보문사(02-823-7443)에서는 9월 14~20일 오전 11시 직지사 강주를 10년동안 역임하고 봉암사 해인사 동화사 백담사를 거쳐 백장암선원에서 정진중인 대진 스님이 〈금강경>을 강의한다.! 공생선원(02-900-2448)에서는 선원장 무각 스님이 직접 9월 7일부터 3개월간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 오후 7시 30분에 ‘선으로 푼 <금강경> 강좌’를 연다. 지난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9시 불국사 문화회관(054-746-2211)에서 5개월동안 열리고 있는 덕민 스님(불국사 승가대학장)의 ‘<금강경> 대강좌’도 불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마음 닦는 방편으로 <금강경>을 하루 7독송을 하고 있는 금강경독송회(02-742-0172)의 법회 등 신행단체와 고양 흥덕사(02-381-7970) 등 각 사찰의 교양대학 강좌를 포함하면 ‘금강경 강좌’ 는 더욱 늘어될 전망이다.
일체의 고정관념과 분별심을 버리고 무주상보시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금강경>이 선 수행자들에게 각광받는 이유와 경문에 나타난 핵심 수행법에 대해 알아본다.
■선종의 소의경전이 된 까닭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이〈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택한 것은 “한 곳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고, 항상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일으키고, 모양으로 부처를 찾거나 보지 말 것을 강조한 정신” 때문이다. 또 인욕,보시바라밀 등을 강조한〈금강경〉실천행 역시 소의경전으로 만든 이유 중 하나에 포함된다. 중국 선종의 실질적인 개조인 육조혜능 스님이 우연히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문득 마음이 밝아졌고, 그 인연으로 오조홍인 대사로부터 <금강경> 해설을 듣고 다시 크게 깨달아 진여본성(眞如本性)을 본 기연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무념행(無念行)의 실천
그렇다면 혜능 스님이 <금강경> 해설을 듣고 견성하여 체득한 ‘반야삼매(般若三昧)’란 무엇일까. 혜능 스님에 따르면, 반야삼매란 자재해탈(自在解脫) 또는 무념행(無念行)이라고도 하는데, 만법을 대하되 그 만법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청정한 성품을 유지하며 육근(六根)을 걸림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이다. 즉 반야삼매는 만법 속에서 만법에 걸리지 않고 청정한 자성을 유지하는 무념행이자 자재해탈이라고 할 수 있다. 무심선원 김태완 원장은 “반야 즉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인데,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선지식의 가르침을 받아 자성을 깨닫게 되면 곧 지혜가 나타난다”고 풀이한다.
■무상, 무주, 묘유의 실천
혜능 스님은 <금강경해의>의 머리말에서 <금강경>의 핵심이 무상(無相), 무주(無住), 묘유(妙有)에 있음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금강경>은 무상으로 종을 삼으며, 무주로 체를 삼고, 묘행으로 작용을 삼는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래 이 경전의 뜻을 전하게 되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이치를 깨닫게 하고 성품을 보게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무상, 무주, 묘유 중에서 더욱 근본적인 것은 무상이라 할 수 있다. 무주는 상에 머물지 않음을 말하고, 묘유는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무상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상을 떠나라(離相)’는 의미인 무상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떠나는 것이다. 무상은 이러한 네가지 개념을 떠남으로써 모든 아집을 깨뜨리고 참된 보시바라밀의 묘행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국대 김호성 교수(불교학)는 “<금강경>은 무상으로 종을 삼는다. 금강경에서는 무아에 이르는 방편으로 반야바라밀을 중심으로 보시바라밀, 인욕바라밀 등 육바라밀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머무는 바 없이 마음 내기
금강경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소박하게는 대립, 분별, 집착을 버린 참 마음을 가짐으로써 너와 나,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보시를 행할 것을 말한다. 이 ‘머무는 바 없는 행’에 대해 조주 스님은 “부처님이 계신 곳은 머물지 말고 급히 지나가라”했고, 임제 스님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말까지 했다. 대주 스님은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부처의 마음(佛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선악, 유무, 내외, 중간에 머물지 아니하며, 종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공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하묘, 선정에도 머물지 아니하며, 선정 아님에도 머물지 아니함이 일체처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무주상 보시
<금강경>에서 ‘마땅히 상이 없는 마음(無相心)으로 보시한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구체적인 보살수행으로 꼽힌다. 밀양선원장 고목 스님은 무주상보시를 “주체로서의 마음도 없고 보시하는 객체로서의 물건도 보지 않으며, 보시를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음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집착과 상에 얽매이는 것을 방어하여 철저한 공사상에 입각, 번뇌와 분별하는 마음을 끊었을 때 중생을 구제할 수 있으며, 반야지혜를 얻어 대각을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보시를 행하더라도 보시를 했다는 생각과, 한 도과(道果)를 얻었더라도 얻었다는 생각이 없이 무념(無念) 무상(無想)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머무름이 없는 보시’는 반야의 지혜로 일체법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는 데 있다.
■스스로의 마음 항복받기
<금강경>에서는 ‘스스로의 마음을 항복 받는(降伏其心)’ 문제를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다. 밝고 맑은 본성에 물든 잘못된 판단을 자기 부정으로 극복하는 논리다. 보살은 모든 것을 (인욕한다는 생각도 없이) 인욕으로 참으며, 모든 사물에 탐욕심과 분별심을 내지 않으므로 참된 보시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강경독송회 김재웅 지도법사는 이에 대해 “수행에는 항상 지성심으로 몸으로는 불보살님께 예경하고 입으로는 부처님과 보살님을 찬탄하며 생각으로는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부처님 말씀 되새김을 연습함이니 이것이 닦는 사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고 말한다. 김 법사는 “아침 저녁 금강경을 읽으시되 직접 부처님 앞에서 마음 닦는 법을 강의(법문) 듣는 마음으로 믿고, 배우고, 실천하여 증득하는 습관이 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늘 ‘지금 여기’에 살기
<금강경>에 나오는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삼세심) 불가득’이란 말은 시간과 공간을 비롯한 일체가 둘이 아닌 까닭에 ‘불가득’이라고 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세 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 즉 절대적 현재에서 파악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운문 스님의 ‘하루 하루가 좋은 날이다’(日日是好日)는 말은 영원이 현재에 응축되어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선종에서는 늘 ‘지금 이 자리’에서 일체의 분별심을 버리고 무심(無心)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무심은 마음이 텅 비어버려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무심은 곧 일심(一心)이며, 이 일심이야말로 정심(正心)이다.
■금강경 공관법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모든 있는 바의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라.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유마선원 이제열 원장은 금강경 사구게를 중심으로 공관법(空觀法)을 닦을 것을 권한다. “분별 망상에 의해 나타난 일체의 법은 일시적인 꿈이요, 환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아침 이슬이요 번갯불이다. 실체가 없는 몸과 마음, 허깨비 같은 우주의 모습, 이 이치를 보고 자각하라”는 것이다. 즉 금강경공관법이란 ‘금강경 사구게를 통해서 일체법이 공한 도리를 깨닫게 하는 관법에 의한 선정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