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한 번 나를 죽인다(大死我一番)’. 7일 안에 깨우치라며 ‘집중수행’을 강조했던 선지식 해안(1901∽1974) 스님이 불자들에게 던진 법어다. 죽기로써 대드는 용맹심이 있어야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린다는 의미다. ‘짧고 굵은’ 수행을 해야 마음공부의 진전을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에 일과 시간에 쫓겨 사는 일터불자들에겐 ‘집중수행’이 더욱 필요하다. 정기적으로 ‘나를 죽이는’ 수행을 하는 일터불자들에게 그 효과를 들었다. 이들이 공개하는 집중수행법, 구체적인 수행담 등을 소개한다.
#자기변화의 과정을 스스로 확인한다.
삼흥컨설팅 김성부 회장(63ㆍ은암). 지난 3년간 서울 안국선원에서 6번의 안거수행을 마쳤다. 스님들이 여름과 겨울에 3개월간 들어가는 안거 기간에 맞춰 화두를 집중적으로 들었다. 새벽 5시와 저녁 7시면 시민선방에서 2시간씩 화두정진을 했다. 회사 일로 바쁜 그였지만, 안거기간만큼은 언제나 안국선원 시민선방을 지켰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행의 고삐’를 확실히 다잡기 위해서였다. 느슨해진 마음자리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화두공부의 진척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또 직장업무로 제대로 풀지 못했던 마음속의 의심덩어리를 뿌리 채 거둬낼 생각도 있었다.
집중수행은 김 회장에게 즉각적인 자기변화를 일으켰다. 일에 치여 혼미한 자신을 ‘깨어있는’ 모습으로 탈바꿈시켰고, 치우친 마음자리를 평상심으로 돌려놓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고맙게 생각해야 할 일도 당연하게 여겼던 무딘 감정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또 일방적인 업무 지시에 익숙했던 30년차 금융계 CEO의 마음도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는 ‘열린 마음’으로 바꿔놓았다.
“안거기간의 집중수행은 변하는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화두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를 조목조목 점검하고 반성도 할 수 있게 해 소중한 시간이지요. 마음자리가 부쩍 커지는 것을 스스로 관찰하는 경험은 집중수행에서만 가질 수 있는 엄청난 힘입니다.”
3년간 불교대학에서 공부를 해온 전남지방경찰청 불교회 총무 김영균 경사(49ㆍ진산)도 집중수행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7시면 광주 원각사에서 3시간씩 염불집중수행을 하면서 한 주간의 마음흐름을 점검한다. 3교대 근무로 치안현장에서 거의 사는 김 경사는 일에 쫓기다보면, 순간순간 마음가짐을 똑바로 챙길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로 집중수행. 짧은 시간동안 수행력을 집중하면서 마음자리의 변화를 관찰했다. 울컥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고, 나태했던 마음 끈을 단단히 조였다. 덕분에 김 경사는 피의자를 신문할 때도 절대로 큰 소리를 내지 않을 정도로 감정조절을 하게 됐고, 일에 집중력도 생겨 업무능률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집중수행’, 왜 필요한가
기존 일터불자들에게는 ‘재발심’의 계기를, 불교에 갓 입문한 직장불자들에게는 ‘환희심’을 일으켜 주는데 있다. 달리 말하면, 수행의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일터불심을 그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다. 집중수행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삼흥컨설팅 김 회장은 특히 일터에서의 일상적인 마음공부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가게 하는 데에 집중수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집중수행은 늘 깨어있는 생활을 유지하고 심화시키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철도청 성북승무소 법우회 정찬연 기관사(48ㆍ현봉)도 1년에 두 번 서울 월계동 기원사에서 3천배 철야정진을 한다. 정 기관사는 직장인 불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어느 정도 수행의 긴장감을 가져야 일이나 마음공부에 향상이 있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집중수행은 ‘자발적인 고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간절함과 치열함이 있을 때 내 마음이 부쩍 커지고 일도 잘 됩니다. 특히 참회가 담긴 발원을 해야 합니다. 3천배 철야정진을 통한 집중수행은 뼈를 깎는 자기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서원을 세우는데 원동력이 돼줍니다.”
#‘집중수행’ 어떻게 하나
위빠사나 수행을 10년 넘게 해온 우리회계법인 고영일 대표이사(53ㆍ법광)는 우선 ‘수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집중수행이 일터불자 스스로 눈에 띄는 변화를 맛볼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평소 해온 수행력이 집중수행을 통해 결실을 맺게 되고, 자기 변화를 촉발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집중수행은 일터불자 자신이 수행의 정도를 한 단계 한 단계 올리는 것입니다. 마음공부에 진전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재미를 맛봐야 효과도 크고 지속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럼, 집중수행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특별한 방법은 없다. 단지 ‘수행 리듬’에 있다. 자기 수행의 패턴부터 파악해 언제 어떻게 누구와 할 것인지를 정하면 된다.
고 대표이사는 이를 위해 ‘집중수행 계획표’를 만들어 볼 것을 주문했다. 먼저 수행 일정, 정진 시간, 수행처, 점검지도법사 친견여부 등을 기입한 뒤, 집중수행에 들어갈 것을 당부했다. 작성 기준도 제시했다. 수행 일정은 △기존 집중수행 프로그램에 동참할지 △자기 수행 리듬에 따라 개별적으로 마련할지 등이며, 정진 시간은 △수행일정을 제대로 소화시킬 정도로 근기가 되는지 △마음공부의 진척이 얼마나 됐는지 등으로 진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수행처와 점검지도법사 친견여부 등은 △단계별 집중수행 프로그램이 있는지 △수행 진척을 점검받을 수 있는지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밖에 고 대표이사는 자신의 집중수행목표와 관련된 정보들을 스크랩할 것을 강조했다. 불교계 신문, 잡지 등의 수행관련 기사를 틈틈이 읽고 오려두면 든든한 수행지식이 된다는 것이다.
# 주의할 점은
고 대표이사는 우선 집중수행을 하기 전에 ‘왜’라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목적의식이 선명해져 그 수행력과 추진력이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직장불자들의 근무여건, 수행정도 등에 따라 탄력 있게 집중수행에 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히 고 대표이사는 정기적인 법회 참석, 선지식 친견, 사찰 순례 등을 통해 자기 수행의 방향이 올바른 지를 수시로 점검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고 대표이사는 “집중수행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평소에 수행력을 착실히 쌓아 밑바탕을 튼튼히 만들어 놓아야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