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6 (음)
> 신행 > 신행
“살기 어려워요. 그래서 더욱 발원을….”
팔공산 갓바위에서 만난 사람들
불경기다 뭐다 해서 요즘 어디 가나 다들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실직이 늘고 물가는 오르고 장래는 불투명하고, 불안과 초조가 안개처럼 스며드는 이런 때일수록 큰 의지처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전국의 불자들이 모이는 우리나라 대표적 기도처 대구 팔공사 갓바위. 무더웠던 8월 어느날 갓바위에 올라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선본사에서 갓바위까지 이르는 길 곳곳에 유리광전 삼천불 봉안불사라는 안내문구가 걸려있어 성역화사업의 시작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갓바위 중단에 위치한 법당도 새로 불사되어 깨끗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갓바위 노천 법당밑에 유리광전을 꾸며 개방했다.
유리광전에는 한쪽에 백중 영가를 위한 영단이 차려져 있고 중앙에는 대형 갓바위 부처님 사진이 걸려있었으며, 경산 선본사쪽으로는 화엄성중이 모셔져 있다.

갓바위는 매월 음력 그믐부터 초이레까지 철야기도를 하러 많이 오며, 초이레 밤에 많은 불자들이 와서 철야기도후 초여드레 약사재일을 맞는다고 한다.
불국토 보살은 대략 추석 이후 양력 10월 11월 경 처사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때가 사업상 경기가 가장 안 좋은 때라 그런 것 같다고 말한다. 대체로 돈 많이 벌고 잘 살수 있는 방법은 없겠느냐는 문의가 많다는 것.

갓바위는 우리나라 제1의 기도처다보니 무슨 발원이든 한가지씩은 성취한다는 말이 전해오고 이러한 이유때문에 참배객들이 많다.
갓바위부처님과 연결된 바위자락 벽에 동전을 붙여 발원을 하는 모양이 특이했다. 일종의 기복신앙과 접목되어 내려온 풍습인 듯 하다. 한때 스님들이 동전을 붙이지 못하도록 막은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갓바위를 찾는 이들의 반발이 대단해 그냥 묵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갓바위를 자주 찾는 이들은 수시로 이 바위벽에 동전을 붙여두고 바위를 끌어안거나 기대 발원을 한다. 힘들고 지친 마음을 부처님전에 맡기는 듯 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간절하여 오히려 성스럽게조차 보인다.
이렇게라도 기대야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갓바위를 찾는 이들은 이 바위벽을 ‘부처님 발’이라고 부른다.

찾는 불자들이 줄었다고는 하나 오전 9시경 60-70여명의 불자들이 무더위도 잊은 채 노천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를 하고 있었다. 10시 예불시간이 다가오자 더 많은 이들이 올라왔다.
한눈에 누가 자주 올라오는 사람인지 구별이 됐다. 자주 오는 보살들 대부분은 복장이며 장비가 딱 갖추어져 있었다. 절을 하기 위해 수건과 108염주, 경전도 준비돼 있었다.

하늘과 가까이 맞닿은 곳, 유독 볕이 뜨거웠다. 오래 다닌 보살들은 머리에 수건도 두르고 팔에는 자외선을 방지하기위해 토시(?)도 꼈다.
한 여름 이곳까지 오르려면 대구에서 오르는 길로는 1시간, 경산쪽에서 오르면 30분은 족히 산으로 걸어올라와야 한다.
모두 헉헉거리며 무더위속 땀을 흘리며 이곳에 올라온다. 손과 배낭에는 초와 공양미, 향을 공손히 들고서... 무엇을 저리도 발원하는 것일까?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자녀 둘을 두었다는 김춘자(대구시 동구 입석동, 38)보살은 운동도 되고 가정의 평안을 발원하러 왔다고 했다. 묻자 맞벌이를 하고 있어 좀 낫지만 주위에서들 모두들 어렵다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산다고 얘기를 들려주었다.

고 3수험생을 둔 김종희(대구,45)씨는 불자도 아니고 불법도 잘 모르지만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해서 자주 온다고 말했다. 역시 수험생을 둔 부모로서 수험생 입시발원이 목적인 듯 보였다.

구미에서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박사용(구미 원평동, 56)씨는 둘째 딸이 수험생이라 왔다고 한다. 지난해 첫째 아이 때는 정성이 부족(?)했는지, 첫째애가 대학에 들어가긴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대로 가진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했다. 그래서 올해는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고 했다. 구미공단에서 장사를 하는 박 씨는 구미는 공단지역인데 너무 어렵다고 한다.
어려운 대구 상인들이 들어와서 아파트 별로 단지별로 고객을 확보해 나가고 있어 대구상인들에게 고객을 모두 뺏기는 형편이라 더 어렵다는 것이다.

가정주부인 양외둘(경산 옥산, 49)보살도 운동삼아 남편과 함께 올라왔다. 남편은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라 어려운 경기지만 매월 일정한 소득이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주위 친구들은 힘들다는 말을 다반사로 하고 있어 모임 같은 데 가서도 함부로 말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라고 했다. 주위가 이렇게 경직되어 있으니 당연히 모두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관욱(부산 서구 남부민2동, 41)씨는 얼마전 부인을 사별하고 부인을 위한 정성으로 이틀에 한번 꼴로 갓바위를 참배하고 있는 애틋한 지아비였다. 49재까지는 갓바위에 오를 예정이라고 했다. 병으로 부인을 사별하면서 직장도 잃었다. 무엇보다도 반려자를 잃은 아픔이 커 부처님께 허전한 마음을 위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직장도 잃어 어떻게 살지 막막하지만 그래도 49재 후 직장을 새로 찾아볼 예정이다. 요새 어려움 없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모두 처지가 같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김씨는 하루 빨리 경제가 안정되어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기를 부처님전에 기도했다.

역시 학부모인 위복순(대구 수성구 시지동, 51)씨는 둘째가 재수를 하는데 이번에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길 발원하기 위해 왔다. 남편은 개인택시를 모는데 예전만큼 손님이 없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집에 있으면 잡생각만 나지만 갓바위를 다녀가면 기분이 좋아져 친구들과 함께 올라왔다고 했다.

심계화(부산 다대포, 43)씨 역시 고등학교 3학년, 중학교 1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다. 수양삼아 직장 생활하는 남편과 휴가를 내서 찾아온 부부참배객.

갓바위에서 지극하게 기도를 하고 있는 한 젊은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노동일을 한다는 김용철(대구 남구 대명동, 34)씨. 일하면서 사고 안나길, 나라 경제가 잘 운영되어 모든 국민이 잘 살 수 있기를 발원했다고 한다.
사실 그것 말고도 뭔가 다른 발원이 있는 듯 했다. 자꾸 묻자 겸연쩍어하면서도 먼 미래 서민의 첫 대통령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고 했다.
지극한 정성과 큰 마음이면 어디에서건 어떤 일을 하건 다 소중하고 큰 일이 아닐까.

울산에서 온 황숙희(울산시 남구 달동, 51)씨는 친구따라 처음 왔다고 한다. 남편은 운수업을 하고 있는데 직장인들은 꾸준히 들어오는 고정수입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월급쟁이가 부럽다고 했다. 일이 안풀릴 때는 무척 불안하다고 한다.

숙희 씨의 친구 현정순(울산 중구 반구동, 52)씨도 울산 조선업계가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제 그 여파로 어렵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가정이나 기업체가 불경기 라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절에도 불경기라는 말은 못들었는데 요즘은 들르는 사찰마다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다. 사찰도 불경기를 겪는 모양이라고 놀라듯이 말했다.

백연수(부산, 50) 보살은 아들만 둘을 둔 어머니다. 작은 아들은 대학생이고 큰아들은 전문대학을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 취업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고 키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고 답답할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요즘 둘 중 하나가 백수라는 젊은이들의 취업난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큰 아들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여기저기 학원을 다니는 모양이다. 백 보살은 큰 아들이 성품이 다부지지 못해서 걱정이라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언제부터 다부지고 모난 사람만 살아갈 수 있는 각박한 세상이 되었을까? 그러다보니 경쟁의식과 비교의식, 개인주의, 이기주의 팽배로 각종 사회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오늘 이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끌어안으며 이 마음을 부처님전에 모두 맡겼다. 부모로서 일을 못 찾고 방황하는 아들을 향한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머금고 산을 내려가는 어머니를 그냥 보낼 수 없어 마침 가져간 신문을 건네주었다. 신문속에서 어머니를 도와줄 지혜의 말씀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백 보살은 너무 고맙다며 꼬깃꼬깃 접어둔 천원짜리 두 장을 건네준다. 맛있는 것 먹으라는 말과 함께.... 그 정성을 차마 거절치 못하여 받은 소중한 2천원, 그것은 그냥 돈이 아니었다. 그대로 부처님전에 그 어머님의 마음과 함께 불전함에 넣었다.

부산 당감동에서 왔다는,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한 보살은 친구 4명과 함께 부산에서 버스로 갓바위에 왔다고 한다. 아는 처사가 부산에서 갓바위까지 운행하는 관광버스 운전기사인데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너무 힘들어 해서 처사도 돕고 기도도 할 겸 겸사겸사 이렇게 왔다고 한다.

부산에서 갓바위까지 버스가 3군데서 각각 한대씩 총 3대가 운행된다고 한다. 예전에는 기도도량을 찾는 불자들로 제법 가득 찼으나 요즘은 버스 3대 다 합쳐도 45명이 안 된다고 한다.

보살은 요즘 경기가 나빠 살기 어려워지니 불자들도 움직이는 것을 꺼려 집에만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했다. 움직이면 돈을 쓰게 되니 자연히 갓바위를 찾는 불자들의 발길도 줄어든 것이라고....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침체가 심각했다. 서민들의 삶 속에서 느껴지는 생활의 어려움은 더한 것 같다.
그저 열심히 뛰어서 밥먹고 살 수 있으면 감사하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누구나 태어난 이상 이 세상에서 할일이 꼭 있을 터인데 할 일을 못 찾는 서러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싶은데 그 기회마저 박탈당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상실감과 불안을 갓바위 부처님은 다 아시고 힘을 주실거야.

누구든 자신에 맞는 천직을 찾아 세상사람들에게 그 이익을 회향할 수 있고 그 일로 행복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다시한번 갓바위 부처님을 올려다 보았다.
이곳에 올라오는 모든 이에게서 우울한 이야기만 들으셨을 텐데 갓바위 부처님의 얼굴은 더욱 맑았고 더욱 자비스러웠다.

현실을 그저 고통으로만 받아들이지 말라고 힘을 주시는 듯 했다. 모든 것은 무상하니 해법을 찾는 것도 너 자신이야 하시는 것 같았다.
배지선 기자 | jjsun@buddhapia.com
2004-08-16 오후 4:37: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6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