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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1시 경 과천 연주암. 오전 연주암을 오른 30대 초반 남성이 점심식사를 하고 시원한 그늘을 찾았다. 잠시 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신문지 한 장을 바닥에 깔고 널브러지듯 바닥에 몸을 놓는다. 그리곤 이내 잠들어버린다.
서울 은평구 진관사 인근 작은 산책로는 최근 갑자기 늘어난 등산 인파로 마치 도로가 난 것처럼 변했다. 11일 진관사 한 관계자는 “평일에도 50여명 이상 점심 식사를 할 뿐 아니라 이 가운데 젊은 남성들도 눈에 띈다”며 달라진 모습을 설명했다.
평일 점심시간 무렵, 도심 사찰을 찾는 젊은 남성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지역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부산 범어사 금정불교대학이 매주 목요일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최근 이곳을 찾는 인원이 700명에서 1000명으로 대폭 늘었다. 특히 젊은층 증가가 이를 주도하고 있다.
기도처로 유명한 대구 선본사(일명 갓바위)에서 만난 부산지역 불자는 “갓바위에서 기도하는 불자들을 나르기 위해 부산에서 버스 3대가 운행하고 있다. 이전에는 기도도량을 찾는 불자들로 제법 가득 찼지만, 요즘은 버스 3대 합쳐도 한대 인원인 45명이 채 안된다”고 말해 경기침체 현실을 극명하게 나타냈다.
사찰수련회 역시 경제 한파의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공주 갑사 한 종무원은 “수련회 참석자 중 40~50대가 70% 정도 된다”고 말해 경제적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이 수련회 등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경기침체 장기화로 청년실업자, 명예퇴직자들이 평일 낮에도 사찰로 향하지만 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무료급식’ 뿐. 경기침체 그늘에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불교는 어떤 ‘희망’을 줄 수 있을까?
봉은사에서 만난 청년실업자는 “공양간 근처에 불경 등 서적을 비치하면 무료급식 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즉 평일 낮 딱히 할일도 없는 무직자나 실직자들이 사찰에서 점심식사 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점심도 해결하고 마음의 안정도 찾을 수 있으며 내일을 준비할 수도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도심사찰의 경우 지역공동체와 연계해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자 및 실직자를 위한 법회나 실직자 쉼터, 각종 수련프로그램 등을 통해 상처받은 이들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회’를 개최한 적이 있는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먹을거리나 일자리 마련은 국가나 사회의 책임이 크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사찰에서도 일정부분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며 “무직자나 실직자들에게 사찰을 적극 개방해 정신적 재무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 일관 스님은 “경제 한파로 이전에 비해 사찰을 찾는 사람이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사찰차원에서 지원방안을 마련하기엔 무리가 있다”며 “종단차원에서의 예산 편성 방안을 심각하게 논의해 볼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취재팀(천미희, 감유신, 남동우, 조용수, 김은경, 배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