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단지봉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불령산 자락에 우리나라 대표적 비구니 교육도량 청암사 강원(강주 지형)이 있다. 7월 말 청암사를 찾았을 때 사중은 얼마 전 끝난 ‘어린이 여름 불교학교’를 마무리 하고 ‘법화경 산림 7일주야기도’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청암사는 매년 여름 방학전 8월 첫째주에 학인들의 신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7일간 <묘법연화경>을 24시간 동안 끊임없이 기도하는 전통을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강원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던 어려운 시기에 불사를 앞두고 학인 대중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 요즘은 일반 재가불자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동참할 정도로 유명해 졌다. 청암사는 산중사찰이라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제 양성은 물론 인근 지역 포교사업에도 열심이다.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 도선 국사가 건립한 천년고찰로 조선시대 화엄학의 대가인 회암정혜(晦庵定慧)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불교강원의 맥이 근래 고봉, 우룡, 고산 스님으로 이어진 곳이다. 일제 때는 대운 화상의 중창불사로 불교 강원이 유명했으며, 해방 후에는 대강백 한영 스님이 이곳에서 학인들을 가르쳤다. 1987년 지형 스님과 상덕 스님이 학인 16명과 함께 비구니 강원을 설립하면서 70년대 이후 끊어졌던 강원의 맥을 다시 이었다.
현재 청암사는 130명의 학인들이 학장 지형, 강사 상덕, 중강 길장 스님으로부터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 받아 계율을 지키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매일 예불과 기도, 간경과 독송이 끊이지 않는 강원생활에 대한 학인들의 자부심도 남다르다. 또한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급자족의 원칙을을 지키며 울력을 통한 일상속의 실천수행을 다지고 있다.
계, 정, 혜 삼학의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면면히 이어온 청암사의 교육은 전통강원으로서의 내전교육에도 충실할 뿐만 아니라, 매일 간경과 좌선을 통해 선교겸수를 추구하고 있다. 사미니 강원 가운데 비교적 젊은 강주인 지형(58) 스님은 학인들에게 영어, 컴퓨터, 꽃꽂이, 염불, 사경, 다도, 태극권, 선학, 논어, 등 다양한 외전수업을 통해 현대적인 감각을 심어주는데도 소홀하지 않는다.
청암사 강원은 다른 사미니 강원에 비해 학인 한사람 한사람의 자율성을 중시하며, 동아리 운영, 홈페이지 관리, 회보 발간, 어린이 여름 불교학교 운영 등 거의 모든 행사 방침과 규정을 학인스님들이 대중공사를 통해 스스로 결정한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것이 작은 지식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고 대중과 화합(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강주스님의 가르침 때문이다. 지금도 학인들이 세운 규칙이지만 합당한 것은 강사스님들까지 지키고 따르는 것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실현을 교훈으로 삼는 청암사가 중시하는 또 한 가지는 일체 중생을 향한 동체대비심의 실현이다. 따라서 청암사는 매월 첫째일요일 일반 재가 신도들을 위한 법회와, 매주 어린이, 학생법회를 통한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92년부터는 학인들이 ‘금강회’를 만들어 매년 추석 명절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공양미를 보시하고, 불우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구미 순천향 대학병원과 자매결연을 맺어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학인스님들이 4년마다 손꼽아 기다리는 또 하나의 전통은 올림픽이 열리는 해마다 이어지는 청암사에서 해인사까지의 산행이다. 무려 10시간이 걸리는 산행은 청암사의 올림픽인 셈. 매번 길을 잃는 소동을 겪어 많은 에피소드를 남겼지만 길을 걸으며 체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수행의 장이며, 대중화합의 장이 되고 있다.
청암사 강원이 배출한 스님들
청암사 강원은 지금까지 18회 2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다른 사미니 강원 만큼의 역사나 동문은 아니지만 졸업생스님들 가운데에는 3년결사를 통해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지역에서 사찰 주지나 유치원 원장, 교법사 등으로 포교일선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울산 법왕사 주지 혜경 스님(4회)이 회장을 맡고 있는 동문회는 화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사업을 펼치고 있다. 주요 동문으로는 유화(의정부 연꽃어린이집 원장), 재화(포천 마태사 주지), 성원(중국 남경대 박사ㆍ부산 홍법사 주지), 혜정(광동중 교법사), 성주(동국대 복지학과 강사), 정석(수원 행복한집 원장), 여현(동국대 불교학과 박사과정), 자목(스리랑카 칼라니아대 석사) 스님 등이 있다
학장 지형 스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언제 어디에 처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수행자의 참다운 면모다.”
청암사 강주 지형 스님이 학인들에게 항상 이르는 당부의 말이며, 그렇기에 스님은 “청암사를 졸업한 스님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소임을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가장 기쁘다.
지형 스님은 1966년 출가, 71년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받았다. 87년 3월, 비구니 강원을 세우겠다는 발원 하나로 상덕 스님과 폐사 직전인 청암사로 들어와 진영각과 육화료를 보수하고 중현당, 선열당, 극락전을 중수했으며, 백화당과 범종각을 세우는 등 허물어져 가는 가람을 하나하나 일으켜 오늘날 한국의 대표적 비구니 강원중 하나로 만들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변변한 세면장 하나 없어 새벽 3시부터 9시까지 순번을 정해 한번씩만 세면장을 썼을 정도”라고 지형 스님은 당시를 회고 했다. 지금 청암사는 2년 전 태풍 ‘루사’의 피해 복구와 육화료 중수, 184평의 규모의 교육관 불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내년 대웅전 보수를 마치면 완전한 교육도량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지형 스님은 “강원의 교훈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인 만큼 주지 상덕 스님의 뜻처럼 교육도량으로서의 폭을 넓혀 재가자를 위한 포교를 병행하는 열린 강원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