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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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락키타 스님과 함께한 걷기명상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잣나무 사이로 장대비가 내리 꽂는다. 번개가 ‘번쩍’ 하며 하늘을 가르고 불어난 빗물 위를 내딛는 발길이 연신 미끄러진다. 과연 예정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을까. 7월 25일 남양주 봉선사로 향하는 길에 근심이 가득하다.

이날은 봉선사(주지 철안)에서 ‘웰빙 걷기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날. 남방불교 수행법을 지도하는 붓다락키타 스님(보리수선원장)이 재가자들과 함께 나무가 가득한 숲길을 함께 걷겠노라 했다. 재가자들에게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故 박정희 대통령이 가끔 말을 타던 그 길이라던가. 뭔지 모를 호기심이 인다. 그런데, 이 비는 대체 언제 그치려나. 어제는 맑기만 하더니 마른하늘에 웬 장대비인가.

“궂은 날씨로 인해 하루 만에 좋다-싫다는 감정이 계속됩니다. 어제 밤에 설레던 기분이 하루아침에 짜증으로 바뀌게 됐잖습니까. 과연 걷기명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겠죠.”

70여 참가자들 입에서 웃음보가 터지는 것을 보니 그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붓다락키타 스님은 그처럼 '변화하는 감정에 끄달리는 나'를 ‘바로 보기’ 위해 수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변화하는 대상을 붙잡고 그것에 집착하면 괴로움이 생기기 마련이다. 스님은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동시에 그 대상을 바르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과정이 곧 수행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걷기명상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바르게 보기 위해서 우리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첫째는 몸입니다. 불교에서의 몸은 ‘내가 나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도구’입니다. 둘째는 마음입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어떤 상태를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마음입니다. 걷기명상은 몸과 마음을 활용해서 ‘나를 바로 보는 법’을 배우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스님의 말을 곱씹으며 걷기명상을 시작한다. 정오를 넘기면서 빗줄기를 거둔 하늘이 고맙다. 물을 먹은 대지를 딛는 기분이 좋아 신발과 양말을 벗어던진다. 발이 바닥에 닿았을 때의 느낌을 아는 것, 그 같은 발의 감각을 알아차리면서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스님이 살짝 귀띔한다.

스님을 앞세워 한 발 두 발 조심스레 내딛는다. 마음을 발의 감각에 집중하라고 했건만 몇 발자국을 떼기가 무섭게 잡념이 인다. ‘땅은 왜 이렇게 질퍽할까’ ‘이렇게 느리게 걷다가 언제쯤 끝나려나’ ‘걷기명상이 아니라 산행명상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잠시 쉬어가는 틈을 타서 백발의 한 거사가 스님께 질문을 한다.

“발에서 마음을 떼지 말라고 하셨지만 발이 너무 아파서 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픈 생각을 떨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발이 아프다는 느낌은 가져가되 ‘발이 아파서 짜증난다’라는 감정 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현재에 끄집어 내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음을 현재에 두라? 찰라 생멸하는 세계에 과연 ‘현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러나 스님은 비가 와서 맑은 물에 흙탕물이 이는 지금, 비가 개어 흙탕물이 다시 맑아지는 지금이 ‘현재’라 했다. 지금 이 순간, 온몸의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모든 것들은 마음의 대상이요, 수행의 대상이다. 마음이 현재를 벗어나 과거와 미래를 오가기 시작할 때 집착과 괴로움은 시작된다. 현재의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실어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발로 걷고 오직 발로 느낀 두 시간. 새까매진 발톱, 진흙으로 범벅된 발바닥이 거칠기만 하지만 ‘지금’을 온전하게 살았기에 그저 행복할 뿐이다. 대지의 기운을 오롯이 받은 발이 한없이 편안하다. 청량한 숲내음은 폐 깊은 곳으로 스며든다. '웰빙 걷기명상'에서 붓다락키타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웰빙이 이런 것이었던가.

“걷기명상과 함께 하는 웰빙은 ‘죽고 사는(生死) 것을 건질 수 있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4-07-28 오전 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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