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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 617~686) 스님이 45세에 무덤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친 후 읊은 노래다. 불자들은 원효 스님의 이런 깨침의 기연과 유명한 화쟁(和諍)사상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지만, 정작 그의 수행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양산 정토원(cafe.daum.net/amitapa) 원장 정목 스님이 최근 펴낸 <윤회는 없다>(다솜출판사)를 비롯 <한국의 염불수행><원효의 새벽이 온다><도로아마티불><염불신행의 원리와 비결> <정토에 태어나 성불합시다> 등 7권의 저서를 잇달아 발간하면서 원효 스님의 염불선을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정목 스님이 원효 스님의 염불수행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뭘까.
“정토문의 발전사 가운데 그 교학과 수행체계를 가장 간단 명료하게 밝힌 조사는 한국의 원효입니다. 원효는 <무량수경종요>와 <아미타경소>를 통해 일심정토(一心淨土)를 열어 서방정토와 유심정토를 모두 수용하여 범부와 현성이 다 함께 일심의 바다에 나아가 중생을 이익되게 하도록 인도했습니다.”
정목 스님은 “원효의 일심정토 염불법은 독창적 정토사상이요 순수한 한국불교이며, 일체중생을 구제하는 가장 대중적인 수행법“이라며 이를 선양하는 것은 한국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원효의 염불선은 어떤 장점을 갖고 있기에 그가 그토록 혼신의 열정을 다해 선양하려는 것일까.
“원효의 칭명염불(稱名念佛)은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이요 안심법(安心法)이며, 관상염불(觀相念佛)은 보신(報身)의 경계를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하고 보살도를 실천하여 일심(一心)의 바다에 나아가는 염불선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염불수행을 통해 안심을 얻고,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도록 그 신행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칭명염불을 통해 왕생하게 된다는 ‘서방의 정토(극락)’와 ‘마음의 정토(유심정토)’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정목 스님의 설명이다.
“본원의 힘을 믿고 행해서 정토에 왕생하면, 대상으로 마주하던 아미타불과 정토는 신해(信解)가 깊어지면서 ‘마음의 부처’, ‘마음의 정토’로 환원됩니다. 정토에 왕생함으로써 보신의 덕상과 화신의 자비에 감화되어 일심의 경지를 증득하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입니다. 일심은 신앙의 빛이 궁극에 이르러 시공에 충만한 경지입니다.”
<윤회는 없다>에 따르면 원효 스님은 염불 수행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나무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칭명염불’과 일심정토의 경계를 관하는 ‘관상염불’을 제시하고 있다. 일반적인 염불법인 칭명염불과는 구별되는 ‘관상염불’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닦아야 할까.
“관상염불은 지관(止觀)의 수행입니다. 이를 통해 정토의 경계에 대한 믿음이 깊어지면 이 땅에서도 깨달음의 경지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비광명 안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관상염불은 청정한 자연과 인간, 일체 생명으로 나타나는 천백억 화신 즉 무량한 ‘자비광명’을 관하는 것입니다. 일심의 경지에서 바라본 정토는 광대무변하되 덕상으로 가득하고 광명이 교차하는 한마음의 세계입니다. 한마음의 세계에서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은 생명으로 약동하는 광명의 물결입니다.”
정목 스님에 따르면 원효는 모든 수행문이 ‘상홍불도(上弘佛道) 하화중생(下化衆生)’을 구현할 수 있는 통일적인 수행체계를 확립하고자 했다.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면 자연히 동체대비심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목 스님은 “일체 중생이 부처요, 한생명임을 깨달아 보살의 광대한 원행(願行)을 구현하는 것이 수행의 완성인 일심광명(一心光明)”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원효 스님의 수행법은 ‘일심’이란 화두를 깨닫고 증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효 스님에 따르면 ‘일심은 믿음의 대상인 동시에 마침내 성취해야 할 법’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