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문화공연과 여름캠프 등에 명상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응용되는 추세다. 그 중에서도 좌선 등의 정적인 명상보다는 움직임이 뒤따르는 동적인 명상, 특히 ‘춤명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요가수련회, 예술제 등은 물론이고 일반 학회나 대학교 강좌에까지 춤명상 프로그램이 그 발판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춤과 명상이 어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자간에는 어떤 접합점이 있으며, 춤명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또 무엇일까. 춤과 명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대가인 홍신자(65)·이선옥(59)·박태이 (45)씨에게 춤명상에 대한 얘기들을 들어본다.
이뭐꼬(이것이 무엇인고?). 이는 참선의 근본적인 화두로, “지금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고 듣는 이 주인공은 무엇인고?”라는 물음이다. 그 답을 위해 하나 둘 근본으로 소급해가다 보면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의심이 꽉 들어찬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이자 생각 이전의 자리다. 그 자리가 ‘이뭐꼬’다.
이뭐꼬가 살아있는 움직임이 바로 ‘선무(禪舞)’다. 이선옥 포천중문의대 교수가 72년 창안한 대표적인 춤명상 기법. 그는 송담 스님, 숭산 스님 등에게 참선지도를 받은 이후 ‘행선(行禪)’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선무를 고안해 냈다.
“선무의 모든 동작은 단전부위에 이뭐꼬를 집관한 상태에서 이뤄집니다. 동작 중 잡념이 일어나도 생각을 따라가지 않고 그 자리를 이뭐꼬로 대치시킵니다.”
이 교수는 “선무는 기와 이뭐꼬, 그리고 동작이 하나가 되는 명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곧 움직이는 禪이요, 동작으로 풀어가는 화두이다.
“춤을 통해서 깨달음으로 가라, 춤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라. 그것이 너의 길이다.”
오쇼 라즈니쉬는 첫 번째 한국인 제자인 홍신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계 무용사를 만든 18인’에 꼽히는 걸출한 무용가인 홍 씨는 ‘동양 전통미학에 뿌리를 둔 서양 전위무용의 꽃’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몸짓은 명상에서 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즈니쉬를 만나기 전에는 춤과 명상이 별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후 명상수행에 몰입하며 춤추는 상태가 곧 명상임을 깨닫게 됐죠. 춤과 명상이 일체를 이루게 되면 ‘춤추는 자는 없고 오직 춤 그 자체만 있을 뿐입니다.”
일각에서는 움직임에 몰입하는 춤명상의 기법이 심신의 정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홍 씨는 춤명상은 정적인 명상 과정에서 겪게 되는 잡념의 개입 등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하고 에고(ego)를 털어낸 동작에 몰입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깨달음의 길이 멀지 않다. 춤명상은 ‘점수(漸修)’로서 구도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04년 명상·예술계에 ‘춤명상’의 화두를 내던진 박태이 씨. 무용전공자도 아니고 배움을 얻은 스승도 없지만, 인도 뿌나의 명상가들은 그녀를 두고 “미라(힌두교 춤의 여신)의 화신같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인도에서 명상을 배우며 ‘춤을 터트렸고’ 이후 하루 13시간이 넘도록 춤을 추기도 했다.
“내 안의 춤을 일깨워가는 과정이 곧 명상이었어요. ‘춤추는 나를 잊은’ 춤을 추면서 막혀 있던 생체에너지가 흘러나왔고, 춤의 흐름으로 존재하는 나를 발견하게 됐지요. 그 때 에고를 걷어낸 ‘본래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나더군요.
그가 말하는 춤명상에는 특별한 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몸 감각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살피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온몸을 미친 듯이 내던지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모든 것을 깨울 수 있을 때 춤명상의 경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박 씨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