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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직사각형으로 천 조각을 조각조각(條) 이어 만든 대형 타월과도 같다. 수행자 옷이기에 겉으로 보기에 단순하기 이를데 없다. 그러나 가사가 만들어지기 까지에는 복잡함과 수작업 때문에 일반인은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스님들 간에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그러한 전통 가사불사가 담양 용화사(주지 수진)에서 6월 말부터 7월 18일까지 21일간 펼쳐졌다.
18일 용화사에서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 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 등 스님들과 신도 300여명이 참석해 가사불사의 원만 회향을 증명했다.
태고종 종정 혜초 스님은 21일간 진행된 가사불사 회향 점안식을 증명하고 수가사를 수진 스님에게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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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전 해동율맥을 이어온 묵담 스님이 전통 홍(紅)가사에 자수(刺繡)를 넣어 자수가사를 제작했습니다. 이 가사는 우주 삼라만상을 자수로 표현한 세계에 하나뿐인 가사인데 그 가사를 본으로 하여 이번에 재현했습니다”
가사불사를 진두지휘한 수진 스님은 “이번 불사는 전통 자수가사뿐 아니라 홍가사 81령(領:가사 숫자 세는 단위)을 제작하는 가사불사 가운데 가장 큰 대고품 불사다”고 설명한다.
가사불사에서는 가사 9벌을 만드는 것이 소고품, 27벌을 만드는 것이 중고품, 81벌을 만드는 것이 대고품으로 가장 많이 만드는 대작불사인데 이번에 용화사에서 만든 것은 대고품인 81벌에다, 묵담 스님의 자수가사를 그대로 재현한 자수가사, 그리고 내년 용화사에 조성되는 미륵불 복장에 들어갈 가로 25m 세로 15m 크기의 미륵불 가사도 함께 제작한 것이다.
가사불사를 시작하고 용화사는 한지로 금(禁)줄 두르듯 써놓은 증명당(가사불사 증명하는 처소), 가사당(袈裟幢:가사 짓는 곳), 금란소(禁亂所:정숙히 하는 곳), 한주실(閑住室:휴식장), 정재소(공양간) 등의 글귀를 써서 붙였다. 가사불사가 사직되자 경내에 들어서는 이들 모두 다시한번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게 되었다.
가사를 짓는 가사당은 조사당에 마련됐다. 오전 작업에 앞서 주지 수진 스님과 편수(가사불사 총괄감독) 무봉 스님, 양공(바느질 담당) 정오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과 가사불사를 보조하는 재가신도들이 모여 가사당 예불을 올린다. 예불은 가사당 세계를 주관하는 스물한분의 부처님 전에 ‘가사불사가 원만하게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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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이번 불사에 참석한 극락행 보살(74)은 “가사불사는 살아생전 만나기 어려운 불사로 용화사에서만 세 번 열린 불사에 모두 동참하게 되어 기쁘다”며 촌음을 아껴가며 바느질에 여념이 없다.
예로부터 가사는 스님들이 한땀 한땀 손수 바느질하며 지었다. 신도들은 가사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옆에서 보조역할만 담당했다. 극락행 보살은 “가사당에서 직접 바느질하는 공덕을 생각하면 이 또한 좋은 인연이다”고 하면서도 “스님들 간에 전수되는 가사작법이 참여하는 스님이 적어 행여 그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사의 기원은 부처님 재세시부터이다. 경전에 따르면 “부처님이 길을 가다가 밭이랑이 반듯한 것을 보고 '이는 세간의 복전(福田)이니 출세간(出世間)의 복전인 수행자의 법의(法衣)도 이와 같이 만들라'고 아난에게 설했다”<사분율(四分律)>.
“가사는 복전으로, 각각의 조(條)가 바로 논 밭입니다. 따라서 곡식이 잘 자라도록 물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를 통문불(通門佛)이라 하는데 전통가사는 통문불이 있어야 합니다. 행여 통문불없이 가사를 지으면 눈먼 과보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생각없이 바느질 하다보면 통문불을 남겨놓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바느질 할 때는 염불로 정신통일을 합니다. 가사불사는 단순히 옷을 짓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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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문불은 천조각을 기와 잇듯 이으면서 1cm가량은 겉면만 바느질을 해 생기는 구멍을 뜻한다. 실제 가사는 조각마다 위와 옆에 빈바느질(허공침)로 구멍이 나 있어 모든 조각이 서로 통하게끔 되어있다. 논이랑에 물꼬가 있어 넓은 논에 물이 골고루 흘러가는 이치이다. 재봉질로는 이러한 통문불을 만들 수 없어 손바느질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사불사는 재단과 마름질을 마치고 바느질에 들어서면서 절정에 이른다. 이때는 모두가 정신을 곤두세운다. 눈은 침침하고 손바느질 해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데 부처님 전에 공양올려야 하니 더욱 그러하다. 바느질 한땀에 불보살 명호가 저절로 나온다. 그래야 잡념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
바느질은 먼저 천조각이 움직이지 않도록 시침을 한다. 바느질 모양은 고양이 눈모양으로 둥글둥글 정침으로 떠야한다. 남침(크게 뜬 것)이나 음침(작게 뜬 것)을 뜨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이렇다보니 아무리 솜씨있는 양공이라도 25조 상품 가사를 바느질하는 데만 꼬박 열흘이 걸린다.
바느질이 끝나면 한국 가사에만 있는 일월광(日月光)을 단다. 이번에 제작한 가사 가운데 수가사는 전통자수가 보성화보살(45)이 3개월에 거쳐 수를 놓았다.
가사는 점안으로 생명을 얻게 된다. 7월 18일, 가사점안 하던 날. 가사불사 동참대중들은 불사가 원만히 마치게 됨을 부처님 전에 감사드렸다.
<묵담 스님 전통 자수가사>
묵담 스님(默潭, 1896∼1981)은 1906년 장성 백양사에서 순오 선사를 은사로 출가득도 후 백양사 불교 전문강좌를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70여 안거를 성만하며 근세불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해동율맥 제9대 율사로 조계종 제5, 6, 7대 종정과 태고종 제3, 4대 종정을 지냈다.
스님은 81년 담양 용화사에서 세수 86세 법랍 75년으로 입적했는데 최근 용화사 주지 수진 스님이 법홍 스님에 이어 해동율맥을 이었다.
한국의 전통가사는 통문불이 있는 홍(紅)가사를 가리킨다. 가사는 9조에서 25조까지 홀수로 구분된다. 25조는 대종사가 입는 최고의 가사로 25유중생을 뜻한다.
묵담 스님이 제작한 전통자수가사는 25조 승가리 홍가사에 10바라밀, 해인도, 불보살 명호, 용 문양, 사천왕을 손자수로 새겨놓은 것으로 화려함은 물론 그 정성에 감동해 경배의 합장을 하게한다.
크기는 황금비율인 5대3(가로 2m 세로 1m20cm)으로 125개의 천조각이 4장1단으로 배열되어있다.
수진 스님은 “이 자수가사에는 불제자를 호위하고 모든 중생이 다같이 성불토록 하는 불교의 우주관이 들어있다”고 소개한다. 스님은 또한 “가사는 헤졌다고 수선하거나, 더러워졌다해서 세탁하면 안되고 소각해야 한다”며 “불,보살이 아니면 웃어른이라 할지라도 가사를 수하고 절해서는 안된다”는 가사에 대한 예절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