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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장은 왜 출퇴근 시간에 수행을 하고 있을까. 대답은 간단했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잘 점검해야만 그 수행력이 다음날에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대답. 일터에서 ‘일삼매’에 들어가기 전이나 후 출퇴근 시간은 하루를 준비하고 마감하는 중요한 시간으로 이 시간을 수행에 쏟음으로써 짬짬이 수행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수행에 탄력이 붙는다는 설명이다.
“바쁜 업무에 쫓기다보면 마음공부 하기가 힘든데, 출퇴근 시간이 바로 수행하기 좋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핑계거리에 불과합니다. 자투리 시간쯤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수행의 적기(適期)’라 생각하고 활용해보세요.”
감사원 불자회원 고춘화 감사관(58·각선)도 ‘출퇴근 수행’ 예찬론자다. 출퇴근 시간이 일일 수행을 차근차근 쌓아 놓을 수 있는 ‘일터수행의 금고’라 생각한다. 서울 개포동 집에서 삼청동 감사원까지 오는 50분 동안 <금강경>을 독경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 감사관이 출퇴근 수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4년 전 수첩용 <금강경> 법보시 책자를 우연히 집어 들게 되면서부터. 감사원 업무 특성상 잦은 장거리 출장 때마다 <금강경>은 ‘마음길’ 닦는 지침서였다.
“심적으로 든든해요. 두려움과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동료 공무원들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업무 특성상, 늘 자기 자신을 점검하는 ‘참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출퇴근 때 <금강경>을 꼭 읽고 있습니다.”
그럼, 일터불자들은 왜 출퇴근 시간에도 수행의 고삐를 놓지 않는 걸까? 24시간 늘 깨어있는 수행을 하기 위해서다. 아침·저녁으로 ‘처음과 끝’을 잘 갈무리해야 그 수행이 하루, 한달, 일년, 평생 동안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의 발원이 평생을 간다’는 셈이다. 또 출퇴근 시간 수행은 가정과 일터에서도 ‘수행의 생활화’를 실천할 수 있는 단초가 되며, ‘일과 수행’ 모두 즐겁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아침·저녁 출퇴근길이 아주 ‘특별한’ 일터불자도 있다. 서울철도차량정비창 다보회원 이일승 기사(60·성우)가 바로 그 주인공. 이 기사는 새벽 5시면 서울행 첫 좌석버스를 탄다. 출근은 오전 9시이지만, 4년째 첫차에 몸을 싣고 있다. 경기도 일산 행심동 집에서 서울 용산역까지 오는 1시간 남짓. 이 기사는 마치 새벽 예불을 위해 대웅전을 향하는 수행자처럼 ‘관음정근’을 하면서 출근길에 나선다.
“저는 직장을 ‘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실에 오자마자 빗자루부터 잡고 구석구석 쓸고 닦아요. 또 사내 법당인 ‘다보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기 위해 일찍 나옵니다.”
그의 철도인생 25년에 고스란히 스며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이다. 이 기사는 일터를 오가는 길을 바로 ‘마음 닦는 길’로 여기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차안에서 ‘조석예불’을 봉행하는 충남지방경찰청 불교회원 청문감사담당관실 엄기용 경사(44·선각). 엄 경사는 10년 넘게 매일 오전 7시 20분에 예불문, <천수경>, ‘충남지방청 불교회 발전 기원문’ 등을 승용차 안에서 40분간 올린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절을 자주 찾지 못하는 대신, 엄 경사는 ‘혼자만의 예불’을 봉행하는 셈이다. 특히 엄 경사는, <천수경>은 불교교리핵심, 예불문, 발원, 주문, 진언 등을 총망라한 불자들의 ‘종합수행서’라며 일터불자들이 출퇴근 시간에 반드시 읽어야할 경전이라고 조언한다. 엄기용 경사는 “아침 예불을 올리고 나면 매번 새롭게 각오가 다져진다”며 ‘오늘은 어떤 부처님을 만날까’ 일터로 가는 마음이 설렌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