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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니, 언제 떠날거니?"
"19살이었던 어느날, 저는 막 직장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했지요. 늙으신 어머니는 홀로 남을 자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은 체, 딸의 행복을 위해 주저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것이 바로 집착과 소유 없는 사랑이 아닐까요?"
서양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티베트 스님이 되어 33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히말라야 설산 동굴에서 12년간 수행해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비구니. 우리에게는 지난해 소개된 책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를 통해 잘 알려진 텐진 팔모 스님이 전한 메시지는 출가와 재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분별을 떠나 늘 '집착 없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었다.
7월 13일 오후 전국비구니회관에는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前 회장인 광우 스님과 현 회장인 명성 스님, 총무원 문화부장 성정 스님, 조계종 불교여성개발원 이인자 원장 등 여성 불자 300여명이 참석해 텐진 팔모 스님의 법문에 이목을 집중했다. 불교여성개발원(원장 이인자)이 주최한 이날 행사의 주제는 ‘깨달음을 향한 여성의 삶과 수행’. 팔모 스님은 '여성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은 경전을 통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거듭 역설하며, 일상 속에서 보살행과 지혜를 닦아 나와 남이 모두 행복해 지는 삶을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대승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중생에게 불법을 전해서 함께 열반의 세계에 드는 것이고, 소승불교는 자기 자신의 해탈을 위한 깨달음의 수행입니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살행을 행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하지만 양자의 공통점이 완전한 행복의 추구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이날 팔모 스님은 '모든 존재는 행복을 추구한다'는 전제아래 불자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해야 될 보살행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법했다. 특히, 스님은 이날 법문 중 상생의 보살행과 관련, ‘웃음의 보시’라는 예를 들어 불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모든 존재는 고통과 두려움을 싫어하고 행복과 안전을 추구합니다. 수행의 목적도 나와 타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에 지혜 수행과 보살행이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웃음'이란 방편을 즐겨 사용해야 합니다. 미소 속에는 자비와 행복도 묻어나오며, 웃으면 나와 남도 행복해집니다. 웃는 데는 돈도 안 들고, 대단한 노력과 수행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 웃음의 보시로 상대방의 마음도 바꿀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십시요."
스님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수행한다면 결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음을 강조했다. 늘 생활 속에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행을 겸해야만 바른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생활 속의 수행'을 통해 온전히 실현되는 것이기도 하다.
"머리를 깍고 산문에 들어서야만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맺고 있는 인연에 따라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간다면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고 깨달음의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보고 마음을 비우는 수행을 병행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늘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깨어있는 자세를 가지라고 말했다.
"성내고, 욕심내고, 시기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의 일부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수행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행은 자신의 마음을 보고 나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보고 들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야만 진정한 보살행도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늘 스스로를 점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수행입니다."
팔모 스님은 스스로 지혜를 닦고 보살정신으로 남과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하며 환한 미소로 법문을 마무리 했다.
"언제나 모든 생명체가 고통을 벗어나 행복해 지기를 기도하세요. 우리의 간절한 기도와 행복한 미소로 온 세상 모든 존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늘 미소를 지으세요."
이날 법회 후 불교여성개발원은 인도 타쉬종에 여성수행자교육원 설립에 필요한 기금을 팔모 스님에게 전달했다. 현재 인도 북부 타시종 인근에 여성 승원인 '둥규 가칠랑'을 개설해 여 수행자 20여명을 지도하고 있는 텐진 팔모 스님은 인도-네팔 지역의 가난한 여성 80여명을 교육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모금 활동도 벌이고 있다. 다음은 설법이 끝난 후 가진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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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 부처님께서 완전한 자비를 행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통해 지혜를 함양하면 누구든 그와 같은 자비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2 : 주어진 삶이 너무 짧아 사랑만 하고 살 것인지, 아니면 깨달음을 향해 닦아나갈 것인지 자신이 없습니다.
답 : 자신만을 위해 살 때 공허함을 느낍니다. 우리 자신의 지혜를 활용해 타인을 위해 살면 모두 행복해 집니다. 자아 성취와 타인의 행복이 둘이 아닙니다.
문3 :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만이 진리로 들어가는 길인가요? 진리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 이타행만이 성불의 길은 아닙니다. 타인에 대한 자비행과 동시에 끊임없는 지혜의 게발이 불도를 성취하는 길입니다. 자신의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벗어나 타인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처음 수행할 때는 자기 정화와 집중이 필요한데, 이것은 이기적인 일이 아닙니다. 환자들이 둘러쌓여 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의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보살정신만 있고 지혜가 없으면 청진기와 약이 아무리 많아도 의술을 베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수행을 통해 지혜를 얻은 다음 중생을 교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습니다.
문4: 20대 초반에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스님의 책을 읽고 여자인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환희심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경전에서도 증명되는 것인가요?
답 : 부처님께서 성도 후 6년이 지난 후, 아난다에게 "여성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 하고 질문한 뒤 스스로 "성불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마 독신 비구들은 여성의 존재 그 자체가 파계의 위협이 되었기에 '여성은 깨달을 수 없다'는 말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경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습니다.
문5 : 집안 대대로 기독교를 믿고 있는 저는 신학대학에서 목사가 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폭력성에 회의를 느껴 목사의 길을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살정신과 지혜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스님의 말씀에 힘을 얻었지만, 기독교가 너무 권위적이어서 제 자신의 앞길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답 : 오늘날 아이러닉하게도 사랑과 자비의 종교가 오히려 폭력과 살생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목사가 되는 일은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이지만, 부디 목사와 기독교라는 이름을 정치적으로 사용하지 않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말씀한 사랑에 대해서만 귀기울이세요. 당신의 지도자는 예수님이지, 기독교의 성직자들이 아님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