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 모양과 같다고 해서 문필봉(文筆峯)이라 불리는 계룡산 자락,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동학사(주지 요명)는 수많은 대학자의 산실인 강원(승가대학)이 있어 더욱 유명하다. 도량 곳곳의 정갈함과 말쑥함은 많은 이들의 발길을 잡는다.
1864년 보선(普善) 스님이 비구·비구니 교육을 위해 처음 문을 연 동학사 강원. 1954년부터 사미니 전문강원으로 전환해, 사미니 강원으로는 가장 오랜 50년의 역사를 지녔다. 현재 강주 일초 스님을 비롯해 중강 행오 스님, 수정 스님, 명선 스님이 140여 학인들의 교육을 맡고 있다.
동학사 강원은 설립 초기부터 공부를 제일로 삼는 전통을 이어왔다. 강의시간에는 사찰 울력을 할 수 없고, 강주 스님과 강사 스님들은 학인들의 강의를 가장 우선시한다. 수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다른 시간을 나누어 보충강의가 이뤄진다. 사찰에서는 도서관과 서예실, 컴퓨터실 등이 자리잡고 있는 강설전을 비롯해 조사전, 육화당 등 6동의 전각을 강원의 공간으로 활용되도록 배려하고 있다. 여기에는 강원 중심으로 사찰을 운영하는 동학사 주지 요명 스님과 대중 스님들의 내조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학인들은 새벽예불 직후인 새벽입선부터 취침에 들기까지 공부를 계속한다. 강의는 중강 스님의 논강과 강주 스님의 보충설명으로 진행되며, 강의가 끝나면 그날의 복습과 다음날의 예습, 경전연구 등으로 오후 일과가 이뤄진다. 특히 경전연구에 대한 발표시간을 둠으로써 학인들로 하여금 심도 있는 학습이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학인들은 반드시 2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해야 강원졸업이 가능하다. 이 과정은 수행자로서 지녀야 할 학문적 소양 외에도 위의, 본분을 익히는 학습체계로 자리 잡았다. 내·외전, 교양, 공통과목으로 구성된 교과과정에서도 치밀함이 엿보인다. 특히 사미니과에서 대교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학년에게 주어지는 서예·사군자, 태극권, 영어, 일본어, 꽃꽂이, 다도 등의 외과수업은 동학사 강원의 독특한 커리큘럼이다. 학감을 겸하고 있는 중강 행오 스님은 “내전에 큰 비중을 두면서도 외전과 교양과목을 중요시해 온 전통은 학인들에게 원칙 안에서 책임감 있는 자율성을 보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학사 강원은 대중청규 뿐만 아니라 학년간 규율이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이는 학인들의 자율적인 활동을 강조하고 있는 전통에서 유래했다. 학인들은 이 과정을 통해 승가의 화합정신과 수행자의 밑바탕을 배운다. 학인들의 신행활동은 배움을 많은 이들에게 회향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사군자와 서예 등 학인들의 솜씨는 축제인 동향제(東香祭)에서 절정을 이룬다. 학인들의 작품으로 연하장을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은 청소년 장학금, 불교단체 후원금으로 사용된다. 대전 건양대병원의 환우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비롯해 정신지체 장애우 시설인 공주 명주원에서의 봉사도 학인들의 몫이다.
50년의 역사 속에 동학사 강원은 학문과 수행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이력종장들의 큰 정진터로 자리매김해 왔다. 여기에 사미니와 비구니를 아우르는 전문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승가대학원 설립을 추진중이다.
동학사 강원이 배출한 인재
비구니 교육을 담당하는 주요 스님 상당수가 동학사 강원을 출신이다. 전국비구니회장 명성 스님(운문사 승가대학장, 1회)과 봉녕사 승가대학장 묘엄 스님(2회), 청암사 승가대학장 지형 스님(8회)이 대표적이다. 前 조계종 전국 비구니회장을 역임한 광우 스님, 자제정사 묘희 스님과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수현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운달 스님, 서울 승가사 상륜 스님, 양산 내원사 주지 혜등 스님, 前 동학사 주지 일연 스님, 화성 신흥사 주지 성일 스님, 동국대 교수 해주 스님도 동학사 강원을 졸업했다.
그동안 동학사 강원을 거쳐간 스님은 어림잡아 1천여명. 전체 동문을 대표해 현재 청암사 주지 상덕 스님(8회)이 회장을 맡아 동문회를 이끌고 있고, 명법(동학사 길상암)과 성지 스님(비웅암)이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밖에 효탄(동국대 강사), 희경(前 교육원 사무국장), 철우(교육원 불학연구소 사무국장), 대전지역 포교에 앞장서고 있는 종실·경원 스님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주 일초 스님
“수행 빠진 학문 깊이가 없어요”
30여년을 비구니 교육계에 몸담아 온 동학사 강원 강주 일초(一超) 스님. 동학사 강원 입학 이후 8회 졸업생이면서 비구니 교육에 뜻을 두고 줄곧 강원을 일군 산 증인이기도 하다.
“동학사 강원 교육은 학문과 수행을 겸해 이루어 집니다. 수행자의 학문은 수행을 겸하지 않으면 깊이있는 학문을 할 수 없어요.”
스님은 이런 교육방침에 따라 교육현장을 지켰다. 그래서 “따로 공부시간이랄 것 없이 매사가 공부고 수행”이라며 해(解)와 행(行)이 일치하는 교육을 강조해왔다.
“평생 동안 공부와 수행으로 살아야 하는 스님에게 있어 강원은 밑거름이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기초수행과 교육이 부족하면 제대로 된 스님되기가 쉽지 않아요.”
스님은 4년의 강원 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8년은 해야 한다는 것. 현 교육체계 아래에서 4년 동안 8년의 가르침을 주고 싶은 것이 일초 스님의 마음이다.
동학사로 이어져온 호경 스님의 강맥을 이은 일초 스님은 10월 열리는 강원 50주년 기념식에서 경진, 행오, 수정, 명선, 보련, 도일, 법송 스님 등 7명의 제자들에게 전강을 내려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