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면 일터로, 어두운 밤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직장불자들의 일상. 그런 삶 속에서 일터불자들은 어떤 꿈들을 키우고 있을까. 때론 일탈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하고, 배짱 좋게 사표를 던지려고 한다. 하지만 마음은 늘 그 자리. 그럼 일터불자들은 불교에서 무엇을 찾기 바랄까. 직장불자들은 말하고 있다. 돈, 결혼, 자녀교육, 건강, 처세, 승진 등 인생 고비 때마다 불교는 ‘지혜를 내어주는 창고’가 된다고.
본지가 이와 관련, 직장불자들의 올바른 신행생활을 돕기 위해 ‘일터불심 10대 화두’를 선정했다. 전문가 조언, 직장인들의 관심사 등을 담아 10회에 걸쳐 풀어헤쳐보기로 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내는 직장불자들. 직장인으로서 100점, 불자로서도 100점이 되는 완벽한 일터불자가 되는 방법은 없을까? 그 길은 일터를 ‘수행처’로 여기는 마음가짐에서 찾을 수 있다. 일을 수행처럼, 수행을 일같이 하는 것이다. 일과 수행은 별개가 아니라는 열린 마음에서 일터가 즐거워지고, 수행도 깊어진다는 것.
그럼 직장불자들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와 이해타산으로 맺게 되는 인간관계 등으로 얽힌 일터를 어떻게 수행처로 삼고 있을까? 그 대답은 명쾌했다. ‘제업즉수행(諸業卽修行)’이다. ‘모든 일이 바로 수행’이란 이 말은, 직장불자들이 실천해야 할 일터수행의 모토다. 그렇다면, 일터에서 구체적인 자기변화 과정을 어떻게 점검하고 무엇 때문에 일터를 최고의 수행도량으로 삼는지 직장불자들에게 들어봤다.
하루 종일 증시 관련 데이터에 파묻혀 사는 ‘불자 CEO’ 삼성증권 FN honors 종로타워 우승택 지점장(44·부동). 일터는 온갖 번뇌가 겹겹이 뭉쳐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하고 보기 싫은 사람도 매일 만나야 하기에, 결국 일터는 고통의 집합처라는 것이다. 미운 사람과 만나고(怨憎會苦), 구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求不得苦) 고(苦)가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다.
하지만 우 지점장은 ‘번뇌’를 통해 ‘보리(깨달음)’의 씨앗을 키운다고 말한다. 내가 직장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 번뇌는 더 이상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만약 업무 스트레스에 싸여 평상심(平常心)이 흔들려도 일터에서의 수행은 흔들린 마음을 곧바로 돌려놓는 힘이 있다.
“참선이나 염불을 할 때 떠오르는 잡념과 망상을 마장이라고 합니다. 직장인들에게 이 마장은 구체적·육체적·금전적으로 즉각 다가옵니다. 그 마장을 타고 넘을까, 아니면 발로 차고 지나갈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 때 불교가 나침반이 돼 줍니다. 끊임없는 갈등과 고통 속에서 바른 길을 찾고, 중도 자리를 시시각각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생각은 흔히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환경미화원 일을 하는 불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서울 은평구청불심회원 이명자(60·불심행), 김정애(46·법계심), 김종임(47) 환경미화원은 그들의 일터인 공중화장실에서 하심(下心)과 인욕(忍辱)을 배운다. 이들은 처음 청소 업무를 시작했을 때, 하룻밤 만에 전쟁터가 돼 버리는 공중화장실의 모습에 질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절망감을 맛봐야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터에 대한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것 네 것 따지는 ‘이기심’이야 말로 일터수행의 적이라는 사실을 일을 해나가면서 깨달았고 열심히 청소를 했다. 지금은 공중화장실이 ‘세심(洗心)’ 공부를 하는 도량이 됐다고 말한다.
이명자 환경미화원은 “내가 부처라고 생각하면, 지금 일하는 이 곳이 바로 도량”이라며 “거울이 더러울 때 깨끗이 닦으면 마음도 시원해지는 것처럼 내 일에서 소박한 깨달음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10년 넘게 ‘일터 일일 수행점검표’를 써온 국토연구원 법우회원 김의식 책임연구원(56·연담)도 일터는 수행력을 키우는 도량처럼 여기고 있다. 자기 점검의 바로미터가 바로 수행. 김 연구원은 나만의 일터가 아닌, 한걸음 더 나아가 동료들과 함께 하는 수행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생공심(共生共心)’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직장은 계층조직입니다. 일터를 수행공간으로 생각한다면, 상하관계가 동업중생이 됩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매순간 확인하게 되면, 종교와 상관없이 일터가 수행처가 되는 겁니다.”
특히 김 연구원은 업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행하면, 그 속에서 불법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자기 일은 그대로 화두가 되고 그 수행력은 24시간 내내 지속된다고 설명한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키라(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금강경>에 나오는 유명한 경구다. 서울 마포경찰서 불교회 지도법사인 김진홍 대한민국경찰불교회 사무국장은 업무에 임할 때마다 이 구절을 ‘해야 할 업무라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하라’는 말로 해석한다.
직장불자들은, 중국 임제 선사의 <임제록>에서 나오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을 그대로 어떠한 곳에 처하든 주인이 되어 그 자리에서 진면목을 보이라는 뜻으로 새기면 어떤 일이든 성취감이 생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