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부지런히 주인공을 찾고 밖으로 남을 도와 주는 일, 즉 복혜쌍수(福慧雙修) 이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30만 여권의 불서와 백만 불에 가까운 호신불을 스님과 불자들에게 무주상보시 해 온 스님. 남모르게 참된 방생을 실천하며 권해 온 스님. <참 생명> <납승가> <해탈>(하늘북) 등의 선어록을 펴내고 인연 닿는 스님들에게 간화선을 독참(獨參)으로 지도해 온 스님.
충북 진접 만뢰산 아래 불뢰굴(佛賴窟)에 주석하는 영흥 스님을 뵌 것은 <납승가>라는 선어록을 우연히 보게 된 올 초였다. 몇 달 뒤 하늘북 출판사에서 스님을 만나 평소 의문나던 선(禪)에 관한 질문들을 쏟아낸 후 공주 금강 강변, 조계사 경내에서 법문을 듣기도 했다.
스님과의 인연을 통해 이름없는 작은 암자에서 묵묵히 공부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결코 둘이 아‘닌 공부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참선과 보살행을 몸소 실천하는 영흥 스님의 평소 지론은 자리(自利)와 이타(利他)행을 겸해야 한다는 ‘복혜겸수’.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마지막인 지혜바라밀 하나만 빼 놓고는 모두 공덕을 닦는 수행입니다. 이 다섯가지 바라밀과 지혜바라밀을 함께 닦는 것이 곧 복혜쌍수이죠.”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혜암 스님이 평소 “지혜를 닦고 복을 짓는 일,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잊지 않고 살아야 하는데 다들 빚만 지고 살고들 있다”고 강조했던 ‘복혜쌍수’라는 말은 자칫 마음 공부에만 몰두해 보살행을 소홀히 하기 쉬운 수행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공부지침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흥 스님의 참선 공부에도 ‘복혜쌍수’의 원리는 여지없이 적용된다.
“선근공덕을 끝없이 지으면서 화두를 여여부동하게, 쉼없이 성성적적(惺惺寂寂) 적적성성하게, 강물 흐르듯 유유하게, 어린 자식 어머니 생각하듯 간절하게 궁구해야 합니다.”
20대 초반, 망월사에서 춘성 스님의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득력(得力)했다는 영흥 스님은 1974년 백양사에서 서옹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한 뒤 청담, 벽초, 회암, 전강, 경봉, 향곡, 서옹, 월산, 구산, 고암, 서암, 성수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참문해 법거량을 했다.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정진하다 느낀 것은 결제와 해제가 따로 없이 일상 속의 어떤 경계에도 흔들림 없는 공부를 일여(一如)하게 지어가야 한다는 것. 여기서 영흥 스님이 말하는‘일여’의 공부는 성철 스님의 사상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스스로 돌이켜 보아서 자기 본각경계가 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오매일여 입태일여 육도일여 만행일여의 자수용삼매로써 안팎으로 내외명철하고 쌍차쌍조하여 일체중생과 일체부처가 온 전체로 낱낱이 똑같이 여여부동하게 본래대로 본불본락 본불진락 본불무애자재 해야 향상일로의 공부입니다.”
영겁불퇴전의 신심으로 복혜쌍수의 실참 본행 정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영흥 스님. 6월 15일 조계사에서 스님을 만나 좀더 구체적인 마음 공부에 대해 질문했다.
“어떤 것이 조사관입니까?”
“이뭣고 입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그 속으로 당장 들어가 보세요.”
“그래도 오로지 모를 뿐입니다.”
“오로지 모르는 그것을 당장 보세요.”
“모르는 이외에 딴 것이 없습니다.”
“그래요. 바로 그것이 부처가 부처를 찾는 방법입니다. 즉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게 해서 부처를 이룬다는 견성성불이죠.”
평소에 ‘인간 방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행의 방편으로 방생을 실천해 온 스님에게 ‘참 방생’의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참 방생이란 산에는 산이 있고 물에는 물이 있는 이치 그대로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방생은 상생이요 곧 해탈이요 성불이요 본불입니다. 일체 불보살과 일체 화엄성중과 일체중생의 무한 생명자체요, 자비요 본행이요 무량복덕이요 무량공덕입니다. 중생들의 가슴에 탐진치를 비우고 계정혜를 담아서 참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밝은 삶을 구현해 가난과 질병과 전쟁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정이 넘치는 풍요로운 세상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만나는 불자들에게 늘 지혜와 공덕을 함께 닦아나갈 것을 당부하는 영흥 스님. 늘 마음의 평안과 세계의 평화를 함께 발원하는 스님은 “천하는 천하에 맡겨 천하를 태평하게 하고, 그대는 그대에게 맡겨 그대를 자유롭게 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