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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동안 불리던 ‘박현태(朴玄兌)’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지연’이라는 새 이름을 받은 지 벌써 반년 하고도 한달이 더 지났다.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모란공원 모퉁이에 자리를 잡고 백련사 도량불사에 매달린 시간과 일치한다.
지연 스님은 불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부처님 오신날을 열흘 앞둔 5월 16일 낙성법회를 열었다. 아무도 초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원을 이뤘다. 함께 수계했던 도반 30여명이 부처님 이운·점안을 도왔고, 창건주인 이연수 모란미술관장을 비롯해 낙성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이 축하해줬다.
“화려한 경력이 짐이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런 인생을 보람 있게 회향하고픈 생각도 들더군요. 출가는 사실 무척 진지한 고민이었습니다.”
출가가 세상과의 단절은 분명 아니었다. 세간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뒤늦게 출가를 선택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장’ ‘한국방송 사장’ ‘문화공보부 차관’ ‘수원대 법정대학장’ ‘동명정보대 총장’. 늘 꼬리표처럼 따라 다니던 거추장스러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연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출가를 결심하게 된 한 원인이다. 자녀들과도 함께 이런 고민을 나눴다. 모두들 출가 결심에 힘을 실어줬다.
“사찰의 문턱이 무척 높아요. 불교를 알고 싶어도 찾아가기가 쉽지 않지요. 백련사는 누구나 와서 쉬어갈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될 겁니다. 그런 도량으로 만드는 것이 제 서원이에요.”
매일 절에서 살면서도 스스로 먹물이 덜 들었다고 겸손을 보이는 지연 스님. 스님은 수행자가 지녀서는 안될 욕심을 털어 놓는다. 지금도 불사가 계속되고 있는 백련사를 젊은 불자들이 찾아와 불교를 배우고 체험하는 도량으로 가꾸겠단다. 지연 스님은 이런 서원을 이룰 기대로 ‘늦깎이 출가’ 이후 첫 부처님 오신날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