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마하트마 간디)
종교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가하면 종교 때문에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기도 한다. 전자는 자기 종교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사랑, 후자는 이웃 종교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빚어진 결과다.
우리나라에도 부처님오신날 이웃종교에서 축하의 현수막과 화환을 보내오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때 스님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모두가 이웃종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높아진 결과다. 이런 가운데 불교를 공부하는 목사와 신부, 수녀 등 이웃종교의 성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흥호 목사, 방상복 신부, 이동연 목사, 최현민 수녀 등은 불교를 직접 전공하거나 아니면 불경공부를 하며 불교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현주 목사(예수살기모임 대표)는 모임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경전공부를 하고 있고 <이 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등 불교관련 여러 책을 펴냈다.
관심의 형식은 다르지만 이웃종교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은 자신의 종교도 깊이 알 수 없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 이화여대서 불경 강의 김흥호 목사
‘목사가 불경을 공부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김흥호 목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종교, 특히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동양 고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 목사는 그동안 <법화경> <원각경> <벽암록> <전등록> 등의 불경과 <주역> <논어> <노자>를 탐독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미국유학시절 신학대학에서 ‘불교의 구원관’을 주제로 학위논문까지 썼다.
지금은 매일 이화여대 대학교회 지하 강당에서 <장자>를 가르치고 있고, 최근 <원각경>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불교가 좋아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한 것이라고 말한다.
1919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흥호 목사는 일본 와세다 대학 법대에 다니던 법학도였다. 그러나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과 식민지하에 의기소침한 한국인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다. 한국전쟁 당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김 목사는 정인보, 이광수, 유영모 등과 교류하면서 동양 사상을 배웠고 동양종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불교, 도교, 유교 등을 12년간 집중 연구했다.
그를 잘 아는 문학평론가 김홍근씨는 “함석헌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영모를 통해 김 목사가 기독교를 동양적으로 이해하는 눈을 가지게 됐”며 “실제로 종교간의 대화에도 많은 노력을 하는 등 실천적 사상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 미사때 3배 올리는 방상복 신부
빡빡 깎은 머리에 흰 수염을 길게 기르고 허름한 생활한복에 막고무신을 신고 다니는 방상복 신부.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스님의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방 신부는 99년 동국대 불교대학원을 졸업하는 등 불교공부 하는 신부로 유명하다.
“67년 신학대학시절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이기영 박사를 통해 불교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언젠가 불교공부를 체계적으로 해보고 싶었지요. 대학원에 들어가기전까지 틈틈이 <법구경>과 같은 불교 경전을 독송하며 불교를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방 신부의 친불교적인 성향은 미사 때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자신이 경배하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께 3배를 올린다. 또 혼자하는 묵상기도때는 60배, 108배도 거뜬히 올린다. 이런 별난 행동에 방 신부의 신자들은 성당에서 절을 한 다고 항의하거나 신부가 이상하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나중에 그의 진의(眞意)를 알게 된 몇몇 신자들은 요즘 방 신부를 따라 함께 성당에서 절을 한다.
“하느님께 당신의 자식인 사제가 절을 올리는게 뭐가 그리 이상합니까? 불교에서의 몸을 이용한 수행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내 종교에 접목시킨 것 뿐인데요. 절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며 절대진리자와의 합일을 체험할 수 있어요. 절 수행을 하기 시작한지는 20년이 넘었는데. 특히 95년 송광사에서의 5박6일 사찰 체험을 통해 절수행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일본 유학가서 불교 전공한 최현민 수녀
씨튼연구원은 지난 1994년부터 종교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월례 강좌운영, 전문 종교 학자들의 모임 등을 개최하며 이웃 종교간의 학문적 지평과 이해를 넓히는 자리로 뿌리 내려가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과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이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는 불교를 대학원에서 전공한 최현민 수녀도 포함돼 있다. 수녀가 불교를 전공한다니까 고개를 갸우뚱 할지 모르지만, 종교간의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이웃종교인 불교공부는 최 수녀에게 필수적이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깊이 들어가면 서로 상통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 공부를 할 때 따로 떨어뜨려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 공부는 또다른 의미의 그리스도교를 만나는 시간이지요.”
일본 불교를 주로 공부한 탓에 98년부터 최 수녀는 일본에 가 있었다. 4년동안의 유학시절 중 우연히 나고야 비구니 사찰에서 열린 수련회에 동참하게 됐다. 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끝없는 참선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참선 시간이 마지막 날 끝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었을 때는 무엇엔가 얻어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이날의 진한 감동 때문일까. 서강대에서 불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최 수녀는 학생들에게 죽비를 들고 참선실수도 지도한다.
또한 더 넓은 불교의 이해를 위해 최 수녀는 현재 서강대에서 일본 조동종의 창시자인 도원의 불성사상에 대해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 비구니 스님과 함께 책 낸 이동연 목사
인천 한누리교회 이동연(43) 담임목사. 지난해 12월 강화도 백련사 주지 혜성 스님과 함께 수필집 <두 개의 길 하나의 생각>을 펴낸 그는 기독교단 내에서 불경을 읽고 스님과 교류하는 ‘특이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전남 정읍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 목사는 중학교 때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교회에 다니면서 개종하게 됐다. 그런 그가 다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미래신화’를 연구하면서부터다.
“미래신화란 ‘생명창조’의 시대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현 시대에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생명창조’ 사회로 접어든 인류 사회의 정신적 좌표를 제시하고 동양의 문화 속에서 기독교를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다른 종교의 교리를 공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위의 손가락질 보다 힘들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였다.
“3년 전 저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됐습니다. 한 해 동안 <숫타니파타> 등 50여 권이 넘는 불서를 읽다보니 불교에 대한 이해가 더 넓어진 것은 물론, 제 믿음도 한결 풍요로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이 목사는 이제 불교나 기독교를 비롯한 각 종교가 자신의 우월성만을 내세우기보다 현대인들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시해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양 사상의 총화인 기독교와 동양 사상의 원천인 불교는 서로를 존중하는 열린 종교로 거듭나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