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금) 오전 10시 30분.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빌딩에 자리잡은 금강선원(cafe.daum.net/sunmoontemple). 비교적 넓은 법당에 가득 자리를 메운 300여 불자들이 원장 혜거(慧炬) 스님의 금강경 강의에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시되 실로 얻으신 것이 없다는 것은 최상의 지혜는 배워서 아는 지식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배우고 익혀서 얻는 지식과 능력이 아니라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지식과 관념을 내버려야만 드러나는 것입니다.”
혜거 스님이 <금강경> ‘무법가득분(無法可得分)’을 원문과 함께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자, 어렵게만 느껴지던 <금강경> 법문이 명쾌하게 이해된다.
이달은 참선을 위주로 도심 포교를 해 온 금강선원이 개원한 지 16주년을 맞은 달. 1988년에 혜거 스님이 처음 법당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함께 공부하던 신도는 10여 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1회 3개월간 진행되는 기초참선반, 이곳을 이수한 뒤 매주 목요일 오후 1~5시 참선법회를 갖는 정수회(회장 김은민)를 중심으로 한 참선 공부와 신도회(회장 박영희)의 경전 공부가 한 주도 쉬지 않고 이어져 왔다. 2000년 3월부터는 강원도 홍천에 참선 수련도량 ‘선문장(033-433-5845)’을 개설, 주말 및 하계수련회와 산철 결제도 열고 있다.
한국전통불교연구원 원장도 맡아 전통불교를 현대에 계승 발전시키는데도 힘을 쏟고 있는 혜거 스님은 불교TV에서 <금강경> <육조단경> <유식30송> 등 ‘경전 강의’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최근 초심자를 위한 참선책 <참나-좌선의 강의>(선문출판사)을 펴낸 혜거 스님으로부터 금강선원만의 독특한 참선 공부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금강선원 만의 독특한 공부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금강선원은 전통적인 조사선 수행을 원칙으로 하되, 입문자들을 위해서는 여래선(위빠사나, 지관법(止觀法) 등)의 장점도 도입하여 실참에 가미하고 종국에는 조사선으로 회향하는 차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강조하는 수행원칙이 있다면.
“좌선 및 집중하는 법을 배운 뒤 망상을 가라앉히는 훈련을 하게 합니다. 내려놓기(방하착),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기,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자기와의 만남 갖기, 늘 깨어있기 등을 중점적으로 강조합니다. 일상 속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과제로 ‘빨리’라는 말 사용하지 않기, ‘나’라는 것을 빼고 말하기, 스스로 느낀 것을 스스로 화두삼아 정진하기 등을 제시합니다.”
-좌선과 행선을 뺀 일상사 속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요령을 알려주십시오.
“수행자는 늘 마음을 시선가는 곳에 두어야(心存目想) 합니다. 행동 하나하나를 철저하게 자각하며 몸의 움직임과 마음의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단지 알아차려 바라볼 뿐 그 감정의 물결에 휩쓸리거나 동화되지 말고,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식으로 판단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선(禪)이 깊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나’라고 하는 느낌이 없어질 겁니다. 그때 비로소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평소 스님은 경전 공부로 기초를 다진 후에 참선하라고 당부하시는데, 이는 선사이자 대강백이었던 스승(탄허 스님)의 가르침 때문인가요.
“행자 때 화엄경 3년결사를 회향한 뒤 탄허 스님께서 월정사 강원에서 다시 화엄경을 강할 때 은사스님을 시봉하면서 공부를 다졌습니다. 경전을 먼저 공부한 이는 사교입선(捨敎入禪) 해야 하고 선문에 먼저 든 이는 반드시 경전에 입각해서 점검받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먹어야 할 게 있고 어른이 먹어야 할 게 있습니다. 초심자가 참선문부터 들어가는 것은 어린아이에게 녹용을 먹이는 것 같은 우를 범할 수도 있지요.”
-스님은 경전공부가 깊어진 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참선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참선 공부의 요체는 무엇인가요.
“한번은 수덕사 혜암 스님을 찾아 뵙고 공부에 대해 여쭙자, 노장님께서 ‘공부는 반조(返照) 밖에 없어’라고 하시는데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조가 과연 무엇일까?’ 궁구하다가 참선 수행으로 경지에 이른 수중 스님께 그 방법을 여쭙고 공부의 가닥을 잡게 되었지요. 우리들의 눈 귀 코 입은 밖으로만 향하는 데 비해 반조는 안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밖의 사물에 끄달리지 않고 내 안을 들여다 보는 회광반조(廻光返照)는 참선수행의 기초입니다. 기초를 잘 다졌을 때 수행은 급진전하기 마련이어서, 모든 상황에 처해서 반조하는 것이야말로 수행의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참선은 공부의 진척 상황을 알기 힘든데요. 어떤 점검 방안이 있을까요.
“공부의 경지는 부처님 말씀으로 점검해보아야 제대로 공부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참선 수행의 결실을 부득이 논하자면 얼마만큼 흔들리지 않고 비워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이 뿌리까지 뽑혀져야 공부가 제대로 된 것입니다. 그릇에 무언가를 담으려면 먼저 비워야 하는 것처럼 탐진치 삼독심을 비웠을 때 온 우주를 담을 만큼 큰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금강선원에서는 참선 이외에도 염불, 주력, 사경 등도 권장하는 걸로 아는데요.
“염불, 참선, 주력, 사경, 기도, 독경 등 여러 수행방법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다 하나의 도리로 통합니다. 염불, 주력, 사경도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면 삼매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어떤 방편이든지 부처될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확신하고 용기를 내서 발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발심해서 원력이 사무치면 지혜가 생기고, 나아가 용맹정진하면 못 이룰 일이 없습니다.”
- 앞으로 원력이 계시다면.
“출가했을 때 ‘3년 결사(結社)’밖에 못해 아쉬웠습니다. 화천에 ‘10년 결사’ 도량을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면서 원없이 정진하고 싶습니다.”
■‘좌선의(坐禪儀)’, 어떤 내용 담고 있나
혜거 스님이 펴낸 <참나-좌선의 강의>는 3년전 스님이 다보수련원에서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좌선의>를 강의한 내용을 녹취해 정리한 책. 지난 4월부터 불교TV에서 다시 혜거 스님이 <좌선의> 강의를 하는 것을 계기로 출판된 이 책은 최근의 참선 열풍에 발맞춰 초심자들이 실참 수행하는 안내서 역할도 할 전망이다.
<좌선의>는 송나라 때 운문종의 선사 종색 스님이 펴낸 좌선 지침서로 후대 선종은 물론 오늘날 한국불교의 선풍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선어록. 종색 스님은 하북성 시방홍제선원에 주석하며 옛 <백장청규(百丈淸規)>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10권의 <선원청규>를 편찬했는데 <좌선의>는 이 가운데 제8권에 수록된 내용이다.
혜거 스님은 <좌선의> 원문을 본문의 내용에 따라서 10개의 주제로 분류한 후 여기에 단어별, 문장별로 낱낱이 설명을 달아두었다. 또한 선 일반에 대한 설명과 실참법, 조사선과 화두의 실체를 밝히는 내용을 함께 수록하여 좌선에 관한 의의를 쉽게 전달하고 있다. 게다가 스님은 책 후반부에 1700가지에 이르는 공안 가운데 옛부터 제방선원에서 가장 많이 참구되었던 오도기연(悟道機緣 : 선사의 출생과 출가인연, 그리고 스승을 만나 깨달음을 얻게 된 과정을 통칭)을 가려 뽑아 함께 수록해 참구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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