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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찰병원 법우회 윤애경 씨(43ㆍ보련화)가 박 간사의 말을 받는다. “그래도 지아비잖아. 팍팍 돈 써. 미워도 내 남편인데.”
4월 26일 오후 7시, 한적한 한식당이 술렁인다. 여성 직장불자들의 ‘수다’가 시작된 것. 두 손에 젓가락을 나눠 쥐고, 말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오늘 모인 선수(?)들은 5명. 박 간사와 윤 씨, 그리고 선재마을의료회 여오숙 간사(39ㆍ수일성), 서울지방경찰청 불교회 원혜랑 씨(34), 감사원불자회 채혜자 씨(38ㆍ보광명)가 ‘이야기보따리’를 챙겨왔다.
제1 라운딩. 주제는 ‘가족을 부처님처럼 여기라.’ 반발부터 쏟아진다.
“남편은 할 것 다하고, ‘애들 목욕시켜’라고 명령하면 밉죠. 특히 하는 일 없이 방바닥 뒹굴면서 뺀질댈 때 얄밉죠.” 결혼 8년차 원 씨가 첫 포문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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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남편인데. 스님들은 법문에서 남편을 부처님처럼 생각하라고 하시던데요?”(기자)
“부처님은 열 받게 하지 않잖아요. 다 포용하고 기다리시잖아요. 남편은 안 그래요.”(윤애경)
이번엔 질문을 바꿔, 부부신행은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사찰을 찾아 108배를 함께 해요. 한바탕 절을 하고나면 묵혀놨던 불만들이 자연스럽게 풀려요.”(박현남)
“저도 그래요. 그간 소홀했던 이야기도 솔솔 나와요. 부부신행의 묘미는 이런 것 같아요.”(채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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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2 라운딩. 일터에서의 스트레스를 ‘신행’으로 푸는 비법이 공개된다.
“참 불법은 대단해요. 13년간 간호사로 근무하면서 싫은 사람을 피하려고 해도 꼭 다시 만나더군요. 처음에는 괴로웠지만, 지금은‘내가 전생에 많이 그 사람을 괴롭혔나 보다’하고 참회하는 계기로 삼고 있어요.”(여오숙)
“사실, 여자들은 직장에서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는 엄청나요.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은 적지 않은 선입견과 싸워야 할 때가 많아요.”(원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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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직장불자로서 신행활동은 많은 난관에 부딪힐 때가 부지수예요. 상관이 다른 종교를 믿고 있으면, ‘너 불자인지 아는데, 상관인 나한테 불교냄새를 풍기면 되겠어’라며 은근히 스트레스를 주거든요. 그래서 묘안을 생각해냈죠. 지난해 성탄절에 크리스마스트리를 피부과에 내걸었죠.”(윤애경)
“왜 그랬어요?”(일동, 기자까지 포함)
“부처님오신날 연등을 달려고 그랬죠.”(윤애경)
제3 라운딩. 막판 피치에 열이 오른다. 빠듯한 생활비, ‘쪼개 쓰는 노하우’가 화제로 떠오른다.
“늘 부족하죠. 직장불교회비, 보시금, 애들 교육비 등등 들어갈 곳이 한두 곳이 아니예요. 하지만 보시금 만큼은 반드시 챙겨놔요. 보시금은 후에 어떻게든 채워지기 때문이죠.”(박현남)
“맞아요. ‘보시의 위력’은 틀림없어요. 적은 생활비로 낼까 말까 주판을 두들겨보지만, 불교는 지혜로운 돈 쓰는 법을 알려줘요.”(윤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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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 2시간 째. 수다는 신행경험담으로 이어진다.
“올해 초,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법문을 잊을 수가 없어요. ‘바랑에 다 짊어지고 갈테니, 근심 걱정 나 놓고 가라’는 말씀은 제가 좀더 간절히 신행활동을 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동기가 됐었죠.”(채혜자)
“전 서울지방청 발령을 받고 경승실에 갈 수가 없었어요. 스스로 죄를 지었다 생각하면 꼭 꿈에서 부처님을 뵙고 가위에 눌려 잠을 깨거든요. 그런데 어떤 스님이 ‘완벽한 사람은 수행을 하지 못한다’는 충고를 듣고 지금은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기도를 할 때면 맺혔던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눈물이 주책없이 흘러내려요.”(원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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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좌복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면 기도의 참맛을 볼 수 없을 거예요.”(여오숙)
여성 직장불자들의 신행담은 야무진 신행계획으로 옮겨간다. 박 간사는 출근 시간을 활용한 30분 관음정근을, 원 씨는 퇴근 후 경승실에서 기도 시간을 가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진 윤 씨의 당찬 포부.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올 3월 불교대학에 입학했어요. 불교공부를 착실히 해서 졸업하면 포교사 고시에 응시할거예요. 그래서 ‘병원 포교’에 앞장서는 여성직장불자가 될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