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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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참살림 수행결사 회향하던 날
봉은사 참살림 수행결사는 왜곡된 생전예수재의 의미를 회복하고자 시도된 수행운동이다. 불자들이 함합소를 머리에 이고 도량을 돌며 참회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사진=고영배 기자
“49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참회의 108배를 했던 마음을 항상 지니고 앞으로의 생활에서 죄악과 허물을 짓지 않도록 하심을 실천하세요. 참회는 지금까지의 죄를 뉘우쳐서 영원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다짐입니다. 지금까지의 수행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또한번 발심해 보세요.”

봉은사 교무국장 혜문 스님은 생전예수재 기간 동안의 수행을 점검 받으러 온 김대자행(46·서울 잠실동) 보살에게 참회의 참뜻을 일깨워준다. 그러면서 스님은 묻는다. “보살님은 49일 동안 무엇을 실천했습니까? 또 그때의 마음은 어떠했나요?”

서울 삼성동 봉은사의 참살림 수행결사는 생전예수재의 참의미를 되새겨 생활속에서 불교를 실천하는 49일간의 정진이다. 또한 생전예수재의 본질은 잊혀진 채 방편만이 본질로 인식되는 관행을 깨는 장엄한 불사다. 나아가 ‘더 이상 불교가 잘못된 길로 나아가서는 안된다’는 불자들의 서원이며 바른 길을 제시하는 좌표다.

회향식이 열린 4월 15일 오전 11시 법왕루를 가득 메운 5백여명의 불자들은 저마다 소망을 품고 1080번의 절을 올렸다. 오늘의 수행결사가 내일의 불교를 바로잡는 밑거름이 되리라는 각오가 느껴진다.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한방울에도 그런 신념이 깃들어 있다.

수행결사를 마치고 성만증을 받는 모습. 사진=고영배 기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절을 하면서도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입은 쉴 사이가 없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절을 할 수 없는 불자들도 보인다. 그러나 잠시 쉬었다가 이내 다시 절을 하는 그들에게서 불교의 희망은 새록새록 피어난다.

3월 4일부터 시작된 참살림 수행결사에 동참한 인원은 어림잡아 5백여명. 봉은사에 다니는 신도들은 물론 수행결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불자와 종무원이 더불어 살아가는 불교정신을 회복하는 데 동참했다. 이들은 ‘기복을 수행으로’라는 화두를 잠시도 놓지 않고 16가지 청규를 가슴에 새기며 49일동안 수행과 실천에 힘써왔다.

수행결사는 참회, 기도, 염불, 지계, 감사, 선정, 보시, 발원, 정진, 독경, 사경, 공양, 보살행, 공덕, 서원, 만행 등 16가지 청규 가운데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청규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왔다. 불자들은 청규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

수행점검을 받던 노점숙(54·서울 수서동) 보살은 “지킬려고 수십 번을 다짐했는데 결국은 제대로 지킨 청규가 하나도 없다”고 토로했다. 교육국장 원성 스님이 조언했다. “처음에 지키는 일은 쉽지 않죠. 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을 바꾸는 일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어요. 하지만 청규를 지켜가면서 수행을 계속한다는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실 지키지 못할 청규는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청규를 하나하나 실천하면서 불자들은 나 자신으로부터의 변화가 불교를 바꾸는 힘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사경에 몰두하고 있는 불자들. 사진=고영배 기자
이날은 수행결사의 13번째 청규인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생명나눔실천본부와 서울동부혈액원 차량이 특별히 봉은사를 찾았다. 법왕루 안에서 1080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밖에서는 헌혈과 장기기증 서약, 화장 서약을 위해 30여명의 불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주지 원혜 스님을 선두로 50여명의 불자들이 헌혈과 장기기증·화장 서약을 했다. 헌혈 부적격 판정을 받은 40여명을 포함하면 1백여명이 생명나눔운동에 참여한 셈이다.

헌혈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차량에서 윤석천(49·서울 노유동) 씨는 “내가 지은 업장을 소멸해 준다고 해서 처음 생전예수재에 동참했었지만, 참살림 수행결사의 취지를 보고 제 자신이 참 부끄럽게 느껴졌었다”며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이 불교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윤 씨는 옆에 있는 아들 수호(16·군자중 3년)에게 아버지로서 보여주지 못했던 나눔을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수호의 표정도 밝다. 아버지를 따라 절에 오기를 잘했단다.

재가불자의 신행을 바로 세우고 불교의 수행풍토를 새롭게 바꾸는 첫 시도라는 점에서 봉은사의 참살림 수행결사는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봉은사는 이 수행결사가 전국의 모든 사찰로 확산되기를 서원하고 있다. 특히 봉은사는 불자들이 나에서 이웃으로 신행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늘은 참살림 수행결사가 끝나는 날이지만 그동안 동참했던 이들에게는 또 다른 수행결사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제는 자신과의 약속이다. 나태해지기 쉬운 일상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 이렇게 수행결사는 계속된다.


사진=고영배 기자
수행결사 이끈 혜문 스님

“참살림 수행결사는 수행을 통한 체득이 현실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는데 그 뜻을 두고, 자기만을 위한 기도를 지양하고 제대로 수행하고 실천하도록 하고자 하는 수행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전예수재를 수행결사로 바꾼 봉은사 교무국장 혜문 스님. 스님은 “부처님에게 절하듯이 어른을 공경하고 가족을 사랑하며 이웃을 생각할 때라야 진정으로 참살림 수행결사에 동참하는 것”이라며 “봉은사를 시작으로 교구본사로, 나아가 각 말사까지 이 운동이 확산되어 재가불자의 수행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혜문 스님은 “성철 스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봉암사결사와 같은 결사운동은 한국불교를 정법불교와 수행불교로 바로 세우는 힘이 되어 왔다”며 “이번에 그치지 않고 올 우란분절(음력 7월 15일)에 맞춰 2차 수행결사를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생전예수재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는 살아 생전에 미리 수행과 공덕을 닦아두는 재다. 자신의 49재를 미리 지내고 금은전을 만들어 갚는 것이다. 그러나 49재를 지내고 돈만 내면 죽은 다음에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사찰에서도 이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본래 의미인 참회와 공덕을 희석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미리 죄를 면제 받는 기복신앙의 표상처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 이익존망품에는 생전예수재에 관해 “생전에 좋은 인연은 닦지 않고 죄만 많이 지은 사람이 죽은 후 권속들이 그 사람을 위해 공덕을 베풀지라도 그가 받을 수 있는 것은 7분의 1 뿐이고 나머지 7분의 6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현재나 미래의 중생들은 스스로 수행하여 공덕을 받으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자신이 죽은 이후를 미리 생각해 몸을 삼가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것이 생전예수재다. 따라서 예수재 기간 이후에도 꾸준히 기도하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생전예수재의 참 뜻이라 할 수 있다.
박봉영 기자 | bypark@buddhapia.com |
2004-04-19 오후 1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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