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마음으로 전할 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는 ‘이심전심’이란 말이 무색한 시대다.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의 작용을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낱낱이 해부하는 요즘, “마음 연구 역시 주류과학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낯설지 않다.
그 가운데서도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특별히 인기가 높아, ‘명상의 효과’와 ‘뇌의 변화’와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그에 대한 결과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명상과 뇌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들을 살펴본다.
◇명상을 하면 뇌파는….
사람의 뇌는 평상시에는 초당 13Hz 이상의 베타파를 방출하고 수면 직전이나 긴장이 이완된 상태에서는 8~12Hz의 알파파를 내보낸다. 또한 잠들었을 때는 보통 4~7Hz의 세타파를, 깊은 잠에 골아떨어졌을 때는 1~3Hz의 델타파를 일으킨다. 명상의 결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과학자들은 명상시 변화하는 뇌파의 상태에 주목한다.
허버트 벤슨(하버드 의대), 리처드 데이비슨(위스콘신 감성신경과학 연구소) 교수 등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명상을 하면 알파와 세타의 뇌파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즉, 명상에 들면 깨어있는 가운데서도 수면상태에 가까운 휴식과 이완상태의 뇌파를, 혹은 수면상태와 동일한 뇌파를 방출하게 된다는 얘기다. 명상의 편안함은 뇌파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명상상태’를 조작할 수 있을까
“30분 만에 수십 년간 수도한 선승과 같은 선정에 드는 것이 가능합니다.”
두뇌훈련 및 뇌파조절기기 관련 업체들이 하나같이 내거는 문구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좋은 상태의 뇌파는 정해져 있으며 사용자는 원하는 뇌파상태로의 전환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것. 명상시에 검출되는 뇌파 분석을 토대로 특정 뇌파를 유도하면 언제든지 명상 수련자와 비슷한 체험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하대 신경과의 이일근 교수는 “특정 뇌파를 특정 작업과 관련짓는 것은 성급한 생각이며, 어떤 뇌파상태가 좋고 나쁘다는 식의 일률적인 평가 역시 오류”라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뇌파조절기 등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알파파 상태가 고요하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얕은 수면에 들었을 때나 혼수상태일 때도 알파뇌파가 검출된다. 결국 명상이나 참선 상태에서 알파파가 나타난다고 해서 알파 뇌파를 내보이는 상태를 모두 명상상태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판단이다.
뿐만 아니라 정신이 고도로 집중된 상태에서는 알파파가 넓게 분포하는 가운데 작은 진폭의 세타파가 동시에 나타나는데, 이것을 단순한 뇌파조절기로 유도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다.
◇뇌의 변화가 명상효과의 전부인가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뇌파변화 외에도 심리적 만족감과 관련된 ‘왼쪽 전전두 피질의 활성화’ 등으로도 설명된다. 그래서 특별한 자극이나 훈련을 통해 ‘왼쪽 전전두 피질’을 활성화시키는 방안들도 함께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신체상에 나타나는 명상의 결과들’을 다른 방법으로 복원시킨다고 해도 ‘명상으로 얻어진 심신상의 변화’까지 기대하기는 역시나 힘들다.
명상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들이 축적되고 연구의 방법들은 날로 정교해지고 있지만, 근본에 깔린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상계백병원에서 12년간 명상을 이용한 치료를 벌여온 이정호 교수는 “상황에 따라 과학적인 연구도 필요하지만 마음작용은 분석적인 사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며 “‘과학적’이라는 사고틀에 갇혀 명상의 궁극적인 이유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