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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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바느질에 부처님 법 새깁니다
통도사 가사불사 현장
사진=박재완 기자
3월 29일, 봄 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영축총림 통도사(주지 현문) 영산전 앞.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법당 안을 기웃거린다. 법당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람들의 눈길을 따라 들어선 법당 안 풍경에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부처님을 뒤로 하고 여섯 대의 재봉틀이 드르륵 드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곳곳에 펼쳐진 다림판 앞에선 다림질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노보살들이 돋보기를 끼고 천을 겹겹으로 접어 촘촘한 홈질로 갈색 끈을 만들고 있다. 다른 쪽에선 작은 망치까지 동원해 매듭 만들기에 한창이다. 흡사 공장을 옮겨놓은 듯한 영산전 안의 풍경은 통도사 가사불사 현장. 사찰에서 직접 가사 만드는 일이 드물어진 요즘,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모습이다.

영산전 편액 아래‘가사당’이라는 임시 편액을 걸고 도편수(가사 만드는 일의 총책임자) 보성 스님의 지휘 아래 가사불사를 본격 시작한 것이 3월 22일이니 꼭 일주일이 흘렀다.

사진=박재완 기자
매일 30~40명의 불자들이 ‘가사 만들기’삼매에 빠져있다. 25일 동안 한 땀 한 땀 정성으로 진행되는 가사 불사가 계속된다.

일주일이 지난 이날 완성된 가사는 9조 가사 단 한 벌. 여러 벌의 가사를 한꺼번에 진행하는 데다 가사 만드는 공정이 워낙 복잡하고 치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불사에는 처음 동참하는 불자들이 태반이다 보니, 보성 스님의 일은 끝이 없다.

“다림질 방향이 틀렸네요!” “폭과 폭을 이을 때 오른쪽 폭인지, 왼쪽 폭인지 주의해서 살피세요.” “잘못 연결됐으니 다시 해야 합니다.” 이리 저리 오가며 지시를 하는 스님을 눈으로 쫓아다니기도 바쁘다.

“이안에서 하루 백 리를 걷습니다. 전체 공정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차질없이 진행을 시킬 수 있으니 한시라도 방심할 틈이 없지요.”

1979년 도편수였던 법장 스님(부산 용주사 주석)의 부편수(도편수를 보조하는 소임)로 가사 만들기를 시작한 스님의 머릿속엔 가사 만드는 공정이 훤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방 실수가 생긴다. 조 재단­조엽 다림질­합복(두 폭 이어 붙이기)­가사 테두리(난 돌리기)­사천왕 넣기(가사 네 모서리에 사각 모양의 천 넣기)­단추 달기(매듭 달기) 등의 과정마다 거쳐야 하는 손길이 1백 번을 넘으니 9조 가사 한 벌을 한사람이 만들려면 꼬박 사흘이 걸린다.

사진=박재완 기자
가사는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분소의 조각을 연결해 입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법식에 맞는 의복이라는 뜻으로 ‘여법의(如法衣)’ ‘응법의(應法衣)’라고도 한다. 부처님 당시는 가사만으로 몸을 가리기 때문에 옷(衣)이라 하였으나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에서는 날씨가 추워 가사 속에 장삼을 입기 때문에 장삼은 ‘입는다’고 하고 가사는 ‘드리운다(수한다)’고 표현한다.

가사의 종류는 조(중앙선에 해당되는 주폭, 가장 자리 변폭, 샛장을 이어 붙인 조각)의 수에 따라 5조, 7조, 9조 등 홀수로 25조까지 있다. 극락세계의 아홉가지 등급 중 가장 높은 등급의 상품(上品) 상생(上生)을 상징하는 25조의 경우는 부처님만 수할 수 있다.

또한 5조는 안타회 혹은 속가사라 하여 행보를 할 때 수한다. 7조는 울다라회라 하여 사미들이 수했으며 승가리는 9조 이상으로 비구가 수계식이나 법회 때 혹은 귀한 손님을 만날 때 수한다.

이처럼 가사는 의식복인 동시에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해줄 때 상징적인 증표로 여길 만큼 신성한 것이다. 자운 스님이 도편수를 맡았던 당시에는 스님들만 가사불사에 동참할 수 있었으며 가사당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되었을 정도로 가사 불사는 수행의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대량의 가사가 필요하게 되면서 절에서 가사 만드는 전통이 차츰 사라지고 승복점에서 만드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그나마 통도사, 송광사, 조계사 등 규모 큰 도량에서만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자운 스님에게 가사 만드는 법을 이어받은 법장 스님에 와서는 불자들이 가사불사에 동참하는 게 보편화됐다.

사진=박재완 기자
80년대 당시에는 가사 불사에서 바느질 세 땀만 해도 공덕이 크다 해서 동참하려는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시주는 해도 몸으로 봉사하려는 이들은 줄어들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하루종일 가사당에 앉아 아픈 허리를 곧추 세우며 바느질을 하고 있는 보살들이 새삼 귀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내 정성이 들어간 가사를 수한 스님이 꼭 득도하기를 바라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니까 힘든 줄을 모르겠다”는 무상화(56) 보살은 매일 아침, 108배를 하고 가사 불사에 동참하고 있다. 통도사 쿠샨티 봉사단 회원인 김현애(34) 씨와 김지혜(44) 씨는 “작은 부분이지만 나의 손길이 닿아 가사가 완성된다는 보람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다문화(75) 보살과 심일정(66) 보살 또한 “정성과 인내로 공덕을 지을 수 있으니 기도와 다르지 않다”며 연신 실밥을 뜯고, 바느질을 하며 환하게 웃었다. 가사당 앞을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던 정윤정(34) 씨는 “스님들이 수한 모습만 보다가, 직접 만드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며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을 돕기도 했다. “바늘에 실을 꿸 때 절대 침을 묻혀선 안 된다” “입으로 실을 끊어도 안된다”는 노보살의 주의가 가사에 대한 외경심을 일깨웠다.

사진=박재완 기자
가사 짓는 스님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시점에서 보성 스님은 불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몸의 고단함을 잊는다. 간혹 배우겠다는 스님이 나서긴 해도 워낙 복잡한 공정인데다 가사 만드는 일과 수행을 둘로 구분짓는 마음 때문에 금방 그만둬 버려 맥이 끊길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보성 스님은 “가사가 돈만 주면 사 입을 수 있는 상품이 되어 버린 것이 가장 안타깝다”며 “법을 상징하는 가사가 위의(威儀)를 되찾을 수 있도록 종단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도사 가사당에서는 3천 마의 천이 5조, 7조, 9조, 11조 네 종류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만들어진 가사는 4월 18일 통도사 설법전에서 회향식을 마친 뒤 제방의 큰스님들과 통도사 본사 및 말사 스님들에게 공양 올려지게 된다.
천미희 기자 | mhcheon@buddhapia.com |
2004-04-06 오전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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