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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특별 법석은 전국의 선원과 토굴에서 30년 동안 정진해온 서원사 주지 자하 스님이 대덕화 보살의 부친 49재 회향을 맞아 함께 수행해온 도반 스님들을 법사로 초청, 영가와 대중을 위한 법석을 마련한 것이다. 법사는 모두 5인. 제주도 법화사 주지 시몽 스님의 영가 법문에 이어 대해 스님, 종대 스님, 문경 대승사선원장 탄공 스님, 김해 덕천사 주지 원천 스님이 법문했다.
낙동강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서원사 작은 법당은 통도사와 범어사의 학인 스님들을 비롯 선원장 스님들의 법문을 듣기 위해 찾아온 사부대중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관욕, 상단 불공에 이어 시몽 스님의 영가 법문이 시작됐다.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 백애산(白崖山)에서 40여 년을 하산하지 않고 수행만 하시던 스님이 계셨는데 현종 때 국사가 되어 3대에 걸쳐 선정(善政)을 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혜충 국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입적하실 즈음에 국왕인 대종(代宗)이 입적한 후 원하는 일이 있느냐고 묻자 국사께서는 무봉탑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탑이 무봉탑인지 모르는 왕은 "그러면 스님께서 탑(塔)의 모양을 내려 주십시오"했습니다. 국사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아시겠습니까?"하고 다시 국왕에게 물었으나 국왕은 다시 모르겠다고 했어요. 그러자 국사는"나에게 탐원 응진이라는 제자가 있으니 그를 불러서 물어보세요"하고는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법문의 핵심인데, 국사께서 돌아가신 후 응진을 불러서 그 뜻을 물으니 "삼강은 남쪽으로 흐르고 담강은 북쪽으로 흐르도다"하고 매우 시적으로 왕에게 법문했습니다. 그 후 설두 스님이 출현해 응진 스님의 법문에 대해 "지적이면서도 고상한 말이어서 누가 알아듣겠는가. 그러나 그 가운데는 천하의 백성들이 먹고도 남을 황금이 온 나라에 충만하다"고 송했습니다. 오늘 영가의 49재를 맞아 혜충 국사가 죽음에 임해서 하신 무봉탑의 법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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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스님의 할(喝)로 법당 안의 고요는 더욱 깊어졌다. 이어 종대 스님의 법문 차례가 되었다. 그러나 종대 스님은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짧은 침묵 사이에 행해진 무설설법(無說說法)을 들은 사이 없이 들은 대중들은 한층 깊어진 신심으로 법문을 경청했다.
탄공 스님의 법문이 계속됐다. "각화사 주지로 있을 때, 15개월 간 15시간씩 가행정진 결사를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만 자고 수행했고 대승사에서는 3일전에 21일간 용맹정진을 마쳤습니다. 평소 여러분들은 하루에 잠을 얼마나 많이 주무시는지 모르겠지만 공부하실 때는 몇 번 까무러쳐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님 가피, 즉 공부에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스님들의 뒤를 이어 더욱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원천 스님은 "열심히 정진하셔서 참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라며 짧지만 간곡한 당부의 말로 법문을 마쳤다. 이어진 배송과 시식시간. 금강경 독송이 계속되는 동안, 종대 스님의 할(喝)이 한차례 법당을 울리며 대중들의 마음을 깨워놓았다.
부친의 49재로 이날 법회의 인연을 만든 대덕화 보살은 "바른 수행을 닦아오신 훌륭한 선원장 스님들의 법문으로 돌아가신 부친은 물론 많은 분들의 마음이 활짝 열린 법석이었다"고 말했다. 범어사 학인 보연 스님 또한 "제방 선원에서 공부하신 스님들의 수행에 대한 일심을 대하니 더욱 더 분발 정진해야겠다는 다짐이 절로 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