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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가운데 종교의 수도ㆍ명상법이 정신의 건강까지 지켜준다는 주장들이 제기돼 화제다. 지난 3월 27일 한국정신치료학회 주최로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수도와 정신건강> 세미나에서 정창용(대구 대동병원) 씨는 “선(禪)이 곧 정신치유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화두를 들고 자기 마음을 비추는 선의 경험을 통해 생각에 끄달리는 ‘자아’가 아닌, 모든 경계를 허문 ‘참나’를 알아차릴 수 있다”며 “이 같은 경험은 약화된 자아를 강화하거나 미숙한 자아를 성숙시키는 서양의 정신분석치료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의 체험이 전제되면 평소 자기라고 믿어왔던 통상적 ‘자기’가 하나의 투사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이 불성(佛性)과 같은 청정한 ‘一心’으로 회귀돼 정신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마음의 근본자리를 비추는 선은 노장사상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와도 닮아있다. 노장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을 얻기 위해 노자는 “마음을 비우고(致虛) 고요함을 지킬 것(守靜)”을 제시했으며, 장자 역시 “빈 마음과 고요한 마음으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일체를 잊어버리는 ‘좌망(坐忘)’”을 권했다.
이죽내(경북의대 정신과) 교수는 “노자와 장자가 밝힌 수도법을 통해 인식 주체도 없고 인식 객체도 없는, 오직 ‘앎 그 자체’나 ‘함(爲) 그 자체’만이 존재하는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주관이 객관의 대상에 갖는 주객이분 분별이 없어진 ‘무분별지’ 상태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 되면 의식적 자아와 무의식적 자아가 완전히 일치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의 원인 중 하나인 자아의 갈등으로 인한 고뇌는 없다. 그 융합의 원형을 살려 청정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이 같은 정신수양법은 유교 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박병탁(박병탁 신경정신과의원) 씨는 “불교와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은 성리학의 경사상(敬思想)에서 유교수도의 근간을 발견할 수 있다”며 “고요할 때 마음을 한결같이 하나로 통일시키는 작용뿐만 아니라 움직일 때 외적사상과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는 작용도 있는 것이 경(敬)”이라고 말했다. 일상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성리학적 내적 수양법으로 알려진 ‘거경(居敬)’은 특정한 신체 자세에 한정되지 않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을 취하건 간에 모두가 거경수련”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주자(朱子)는 거경이 장자의 좌망(坐忘)이나 불교의 좌선(坐禪)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반면 가톨릭의 수도법은 마음을 절대자로 대치시킨다는 점에서 타종교와 차이가 있다. 가톨릭에서는 온전한 절대자에 대한 믿음에 근거해 자기를 돌아보는 ‘회개’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시영 신부는 “회개는 지금까지 익숙했던 세상의 생활방식과 단절하고 자신의 결점이나 상처 등과 만나는 과정”이라며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무조건적 용서와 사랑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