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8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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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쉽고 빠른 공부는 ‘법문 듣기’
지난 2월 22일 조계사서 열린 전국선원장초청법회에서 법문을 내리는 무여 스님(축서사 주지).
“선지식들아, 나는 홍인 화상의 문하에서 한번 듣고 말끝에 크게 깨달아 진여본성을 단박에 보았다. 그러므로 이 교법을 후대에 유행시켜 도를 배우는 이로 하여금 보리를 단박 깨닫게 하여 각자가 스스로 마음을 보아 자기의 성품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육조단경)

오조홍인 스님이 새벽에 혜능 스님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들여 <금강경>을 설해 주었는데, 혜능 스님이 한번 듣고 말끝에 바로 깨달았다는 견성체험이다.
이런 이야기를 접한 불자들은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 했을 것이다.

“한번 듣고 깨달았다고요?”
“그럼 오랫동안 수행할 필요가 없겠네요?”

선사와 대강백의 법문을 듣기위해 불원천리 전국의 산사로 선지식을 찾아가는 불자들은 다소 이런 의문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예부터 선사들은 ‘법문 듣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공부법’이라고 말해 왔다. 조사선에서의 깨달음은 기본적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의 형태인데, 이 ‘직지인심’은 스승의 설법이나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법문을 듣고 단박 깨치는 ‘언하변오(言下便悟)’는 혜능 스님의 돈오 체험에서 발단되어 조사선 선체험의 일반적인 방식이 된 것이다.

‘언하변오’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큰스님들의 사자후를 듣는 즉시 발심하거나 깨닫는 기연(機緣)을 만들어보자.

■남종선의 특징은 ‘말끝에 단박 깨침’

‘설법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깨닫는다’는 돈오견성은 <육조단경> 이래 조사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이러한 언하변오의 돈오견성은 좌선간심(坐禪看心)이라는 인도에서 전래된 혜능 이전의 선법을 극복하고 혜능 이후의 중국 선을 새로운 선으로 열어가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전등록> 등 선종 어록을 살펴보아도 깨달음의 기연은 6근(根)을 통한 지각이 전부이고, 염불이나 지계, 관법 수행이 깨달음의 기연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선종에서 견성의 기연들은 대체로 말을 듣는 순간, 행위를 하거나 보는 순간, 자연물의 소리를 듣거나 움직임을 보는 순간에 깨닫는 경우가 많다. 이 가운데 선지식의 말(법문)을 듣고 깨닫는 경우가 가장 많음은 물론이다. 혜능 이후에 융성한 마조와 석두 문하의 중국 조사선 전통에서 깨달음의 거의 대부분이 설법과 문답을 통해 견성을 체험하는 ‘언하변오’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 까닭은 언어가 사람사이의 의사 소통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 당시도 법문 듣고 깨쳐

실지로 부처님 재세시에도 법회에서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는 사례가 적지 않다. 청보리회 김재영 지도법사는 <붓다의 대중견성운동>(도피안사)에서 빠알리어 <법구경>인 를 통해 총 299건의 ‘대중 견성사건’을 확인했다. 부처님 재세시 총 1만2천975명 이상의 대중이 견성(수다원과 이상)했음을 경전을 통해 확인한 김 법사는 “초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르려는 초발심의 단계를 깨달음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 같은 자세는 오늘날 깨달음을 특별하고 전문화된 사건으로 신비화하는 태도와는 매우 다르다”고 말한다.

■심지법문은 깨달음의 씨앗

곧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스스로의 본성을 보아 성불케 하는 이심전심의 묘법은 어떤 구조를 갖고 있을까. 스승은 제자가 본래 가지고 있지만 잊고 있는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확인해 보도록 자극하고 촉발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와 관련 남악회양 스님은 마조 선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대가 심지법문을 배움은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고, 내가 법요를 설함은 저 하늘이 비를 내려 적셔주는 것과도 같다. 그대는 기연이 맞았기 때문에 도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깨달음에 필요한 요소는 마음 땅인 ‘심지(心地)’와 씨앗을 뿌리는 제자의 ‘발심’, 물을 주는 스승의 ‘직지인심’ 및 이 두 요소가 적절히 맞아서 꽃을 피울 수 있게 되는 ‘기연’ 등이라 할 수 있다.

■설법과 문답은 공부의 필요조건

선을 배우겠다고 발심한 사람은 우선 선원에 들어가 생활하며 선사의 상당시중(上堂示衆)을 듣거나 선사를 찾아가 법을 묻거나 하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직지인심의 교육이 이뤄진다.선 공부의 필요조건인 상당설법과 문답을 통한 공부가 진행되는 과정을 도식화하면 ▷발심 ▷선지식을 찾아가 법을 묻는 ‘참문(參問)’ 또는 ‘청문(請問)’ ▷선지식의 응답에 의문만 얻은 경우 제방 선원에서 참학하는 ‘참구(參究)’ ▷참구의 결과 해답을 얻어서 선지식에게 해답을 확인하는 ‘감변’(堪辨) ▷깨달음이 옳다고 인정하는 ‘인가(認可)’ ▷붙잡은 본성을 놓치지 않고 잘 유지하며 과거의 습기를 떨어버리고 더욱 본성에 출실해 가는‘보임(保任)’ 등으로 구분된다.

■정통 조사선 공부법 회복해야

조계종은 최상승 수행법이라고 일컫는 조사선의 간화선법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에서는 스스로 하는 ‘자기점검’이외에 선지식의 상당설법이나 ‘지도점검’이 일부 선방을 제외하고는 형식화되거나 사라진 곳이 적지 않은 게 현실.

이에 따라 조사선의 한 방편으로 확립된 간화선 참구와 더불어 선지식의 법문을 듣고 문득 깨닫는다는 ‘언하변오’를 가능하게 하는 상당법문과 선문답, 지도점검 등 조사선의 공부과정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명선원 회주 대효 스님은 “조사선의 수행법은 좌선, 관법 등 특별한 능력의 습득이 아니라 가장 보편적인 교육법인 설법과 문답법이라는데 보편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4-03-18 오전 9: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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