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과 기복신앙에 갇혀있던 윤달 풍습이 수행과 신행으로 바뀌고 있다. 아직은 미풍 수준이지만 윤달을 수행과 신행, 나눔을 실천하는 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윤달은 음력 한달 평균이 29.5일로 한달이 30일 또는 31일인 양력보다 짧아 이를 맞추기 위해 고안된 달이다. ‘윤달에는 수의(壽衣)를 마련하면 장수하고 결혼이나 이사하면 손을 탄다’는 속설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수의가 등장하는 등 윤달을 상술에 이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조선 순조 때 발행된 세시풍속서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윤달은 택일이 필요 없어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를 마련하기도 좋다.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라고 전할 뿐이다.
불교에도 윤달이면 생전예수재를 지내고, 삼사순례를 하는 등 윤달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생전예수재는 흔히 ‘살아있는 49재’라고 불리며 죽기 전에 업장과 부귀 복덕을 미리 닦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생전예수재가 기복신앙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어 만해 스님이 <불교유신론>에서 ‘예수재 폐지론’을 주장하는 등 그동안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 곳곳에서는 윤달을 보람찬 일로 채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윤달은 없던 것이 공짜로 생긴 날이므로 윤달 풍습의 본 뜻을 살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생전예수재의 변화다. 봉은사(주지 원혜)는 2월 27일부터 시작하는 생전예수재를 ‘참회하고 공덕 짓는 예수재’를 주제로 한 ‘참살림 수행결사’로 운행하고 있다. 생전예수재 기간동안 가족참선, 5계 지키기, 지장기도 등을 매일 실천하고 헌혈, 장기기증·사후 시신 서약 등의 보살행으로 결사를 회양하게 된다.
도선사(주지 혜자)도 생전예수재 및 49일 지장기도 법회에 맞춰 4월 13일까지 매주 화요일 ‘국태민안 기원 고승 초청 대법회’를 마련했다. 도선사의 고승 초청 대법회는 큰 스님들의 감로 법문을 통해 불자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바른 마음으로 보살행 실천을 다짐하기 위한 자리다.
참회와 불우이웃을 돕는 달로 삼는 곳도 있다. 대전 광수사(주지 세운)는 21일간의 윤달 신중참회기도를 4월 6일 입재한다. 참회기도는 자기 성찰을 통해 업장을 소멸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청주 흥덕사(주지 정은)에서는 3월 21일 예수재를 지낼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는 달동네 가족들을 위해 무료로 생전예수재를 지내기도 한다. 회향날에는 달동네 가족을 초청해 무료 이발을 실시하고, 소년소녀가장과 결식아동,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도 제공한다. 또 한국불교전국여법사회(회장 성순경)는 그동안 윤달마다 꾸준히 진행해온 생전예수재 수익금으로 불우이웃을 돕는 행사를 올해에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김시덕 학예연구관은 “생전예수재의 참 뜻을 살리는 이 같은 움직임은 공짜로, 덤으로 생긴 날을 수행과 봉사로 채워나가는 불교 전통을 잇는 자긍심 표출로도 볼 수 있다”며 “자연의 질서를 벗어난 시간적 여유를 개인과 사회에 의미 있는 일로 채워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