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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명호를 부르고 또 불렀다. 2월 29일 부산 감로사(주지 혜총) 삼천불 삼천배 참회기도에 입재하고 삼천 부처님께 귀의하는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천 여명을 넘는 불자들이 동참한다는 기도 열기를 전해 듣고는 ‘나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덜컥 입재를 한 것이다.
이른 아침, 서울 경기 강원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천 여명의 불자들이 삼천불전, 극락전, 노천 마애불 앞, 불교대학 가건물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입재를 했을까 노보살님께 슬며시 질문을 던졌다.
“40년 전부터 매년 참회기도를 해 왔어. 참회는 생활의 일부야. 일년 내내 부처님법대로 잘 살려고 부처님하고 약속하는 거지.” 충청도에서 온 무상행(94) 보살의 대답이 참회 기도의 의미를 되짚어주었다.
1951년 자운 스님 성철 스님 등 큰스님들이 참회기도를 시작한 뜻을 헤아리는 동안 절이 시작됐다. 절이 백 배를 넘어서면서 다리에 통증이 시작됐다. 6백 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2백 배씩 나눠 진행되는 절을 다른 취재 일정 때문에 한꺼번에 한 것이 무리였나 보다. 그러나 시작의 각오 때문인지 첫날 기도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다리통증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하룻밤을 보낸 뒤, 둘째 날의 다리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러나 함께 기도하는 대중의 힘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진 까닭인지 절을 하는 동안 다리의 통증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5일 동안 동참 연인원 5천명.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기도하는 사람 모두가 가족처럼 정겨워졌다. 눈을 마주치면 절로 웃음이 나오고 서로 합장인사를 건네게 되었다. 같은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며 한 도량에서 기도했다는 일체감이 서로의 경계를 허물었다. ‘모두가 함께, 잘 회향했으면’ 하는 마음만이 가득해졌다.
3월 4일, ‘나무수미상여래불’을 마지막으로 부르며 삼천배를 회향할 때 제일 먼저 떠 오른 단어는 ‘감사함’이었다. 절을 하고 있는 나에게, 절을 함께 한 전 대중들에게, 또 내가 엎드렸던 마루바닥에까지 감사한 마음이 일어났다. 전각 문을 여니 햇살, 바람까지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래서 힘든 줄 모르고 3천배 기도를 하는구나.’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스님과 도반들이 한마음이 되어 서로 도우며 기도를 하니 힘든 줄도 모르고 5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며 회향의 기쁨을 들려주는 정묘길상(57) 보살의 마음이 꼭 내 마음 같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삼배로 삼천배를 회향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 전까지 분명히 3천 번의 절을 했는데 그 흔적이 어디에도 없구나. 삼천 번의 절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일 배를 올릴 때의 간절함 속에 삼천배 기도의 참된 의미가 깃들어 있었구나.’
삼천배를 회향하고 경주로 방생을 떠나는 대중들의 얼굴은 봄 햇살 속에서 더욱 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