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은 깨달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버리라고 하셨는데, 이것 역시 나누는 마음(분별심)입니까?”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든 모두 분별심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이미 일체중생이 깨달아 있어서) 한 중생도 제도한 바가 없다”고 한 말씀이 결코 선문답이 아닙니다. 부처와 중생을 나누는 순간 이미 분별하는 마음에 떨어진 것이기에 일상 속에서 나와 남, 생각의 대상을 분리하지 않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2월 24일 조계사 극락전. 조계청년회(회장 정우식)의 수행법 대강좌 결제 중 ‘생활인의 참선법’을 주제로 진행된 대효 스님(제주 원명선원 회주)의 참선 법회는 일방적인 설법만이 아닌 문답형식으로 진행됐다. 스님은 ‘간단하게 일념으로 사는 참선이 불교다’, ‘참선은 아는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다’, ‘마음 다스리는 법’ 등 선에 대한 기본원리를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그때그때 수련생들의 생각을 물어보고 의문점은 바로 풀어주었다.
그러나 토론 형식의 이 설법에는 ‘생활선’이라는 주제아래 하나의 일관된 법문의 요지가 녹아있었다. 그것은 ‘사람은 본래 깨달아 있는 존재이기에 자성불(自性佛)의 법력으로 살아가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본래 깨달아 있다’(본래각)는 인간의 정체를 드러낸‘ 이 한 마디는, 이 말을 뺀 나머지 팔만대장경의 모든 법문보다 더 중요할 만큼 그 뜻이 대단히 큽니다. 이 한 마디를 알려주기 위해 석가모니 부처님의 49년 설법이 시작된 거죠.”
‘본래 깨달아 있다’는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조사선의 화두 참구는 이미 깨달아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어, 더 구할 것이 없는 원만 구족한 존재를 말한다. 이 세상 그 무엇에도 두려울 것이 없고, 굴할 것 없이 당당하고, 미혹함이 없는 지혜로 자신과 만물을 보기에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며 모든 번뇌의 굴레에서 초연해질 수 있는 게 참선 공부다.
“‘본래 깨달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믿기를 두려워하는 당신의 제자나 후대의 인류를 위해 부처님은 많은 비유와 예를 들어가며 의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무지를 씻어주고자 설법하셨습니다. ‘본래 깨달아 있다’는 자신의 존재를 모른다면, 내면을 등지고 밖을 향해 자신 이외의 물질이나 명예, 권력, 감각에서 행복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이를 모른 체 수행한다면, 깨달음을 얻기는커녕 점점 더 고통과 암흑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무지의 행군에 불과해요.”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깨달음의 세계 안에 있으며, 이미 깨달아 있는데도 무명으로 인해 갈등하고 분별하는 것은 왜일까.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이유는 사량(생각하여 헤아림) 분별에 있으며, 분별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을 비뚤어지게 보는 데 핵심이 있다. 그래서 스님은 “자신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사량 분별심을 버리고 현실에 처한 자신을 올바로 직시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무상한 현실의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냉정하게만 볼 수 있다면 본래 깨달음으로 가도록 이끌어주는 발동기에 시동이 걸린 셈이다. 따라서 조사선의 수행은 중생을 부처로 바꾸는 본질의 변화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바탕을 바로 보지 못하는 착각에서 깨어나는 수행이라 한다.
그렇다면 깨달은 사람의 삶과 활동은 어떠해야 할까. 스님은 깨달음은 누구나 일상의 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을 조금도 왜곡하거나 꾸민 것이 아닌, 단순하고 평범한 사실이라고 말한다. 졸리면 잠자고 배고프면 밥먹는 평상심을 진실되게 실천하는 것이다.
스님의 마음 다스리는 법은 평상심을 실천하는 한 방법. “원하는 즐거움이 다가오더라도 좋아서 당기지 마세요. 원치 않는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싫어서 떠밀지 마세요. 즐거움과 고통을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아, 두 가지 마음의 뿌리가 뽑혀서 사라지더라도 또다시 살펴보세요. 좋고 싫은 마음이 끊어진 무심이 될 때까지.”
‘자성불의 법력을 쓰고 살라’는 가르침 역시 스님이 강조하는 생활선의 주요 내용이다. “우리는 자성불로 삽니다. 자성불의 법력으로 사는 사람은 장애가 없습니다. 법력은 깨달음의 삶이자 자신을 찾은 삶입니다.”
이와 같은 대효 스님의 생활속 참선 공부는 오직 의정으로 앉고 눕고 서고 다니며 화두를 들어 삼라만상의 근원에 도달하는 매우 단순하고 간결한 일념의 생활화이다.
“화두의 의심은 의심하는 생각과 의심되는 화두로 분리되지 않고, 오직 의심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이 의정에는 ‘나’라는 생각을 벗어났으니 ‘나’에서 오는 ‘너’라는 대상과 ‘나’에 대한 일체의 대상을 벗어나 주객의 대상을 초월한 의심입니다. 유(있음) 무(없음)의 양변(유나 무의 양쪽에 치우침)을 벗어난 중도적 사유에 해당하는 무한 일념입니다.”
대효 스님은 “참선은 상대적인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자타의 분리에서 오는 상호 대립, 자신과 대상(나와 너, 나와 집단, 나와 일, 나와 이 세상)을 나누고, 나뉘는 데서 오는 속박에서 벗어나는 대자유 해탈”이라며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 깨달은 부처로 살아가자”며 법문을 갈무리 했다.
76년부터 29년간 매년 여름 및 겨울 ‘삼매체험 선수련회’를 열고 있는 대효 스님. 스님은 일방적인 교육 보다는 문답식 법문으로 모든 현상에 대한 이해와 발심을 촉발시키는 수련회를 운영해 29년간 1만5천여명의 수련생을 배출했다.
서옹, 서암 스님 문하에서 공부한 대효 스님은 “수행이란 인위적인 닦음이 아니라 마음을 더럽히지 않는 것일 뿐”이라며 “참선자는 진취적이고도 간절한 발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한다.(064)755-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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