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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를 노래하며 명상에 잠기다
사진=고영배 기자
“처응 사아~아아~아~아…….”
‘청산’을 이야기하기가 이리도 어려울까. 2음절 단어를 뽑아올려 숨과 함께 힘차게 굴리기 시작한 것이 이미 십여 초. 기자의 숨은 목끝까지 차올라 얼굴이 벌겋도록 헐떡이는데, 귀밑머리가 허옇게 센 어르신들은 굵은 소리에 넉넉함까지 실어 보인다.

“일주일에 한 번 시조를 내지르면 정체됐던 기(氣)가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깊은 곳에서 뽑아내는 소리에는 숨의 흐름이 담겨 있거든요.”

강사 대신 장구채를 뽑아든 이재한 씨가 능숙한 솜씨로 장구박자를 맞추며 방긋 웃는다. 2월 23일 정신세계원 ‘시조명상’ 강좌에 참여한 8명의 회원들. 이들은 시조를 생각하며 일주일을 기다린다고 했다. 보거나 읽는 시조가 아닌, ‘노래하는 시조’를 위해서다. 3장 6구 45자 완창에 3~4분은 족히 걸리는 느린 노래이지만, 그들은 그 속에서 놓고 있었던 숨을 되찾을 수 있어 날마다 새롭다고 했다.

“시조는 소리 자체가 호흡법입니다. 소리 하나에 단전 깊숙한 곳의 숨을 명치까지 끌어올립니다. 소리 둘에 그 숨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습니다. 숨 가는 방향을 가만히 바라봅시다. 올리고 내리는 숨에 소리를 이어가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

강의를 맡은 남계 박종순 선생이 장단과 발성의 기본을 가르친다. 그는 호흡이 뒤따르지 않는 시조창은 목 끝에 걸린 소리로 내뱉는 기교에 불과하다고 했다. 실제 시조창(時調唱)은 들숨과 날숨, 그리고 머무는 숨을 어떻게 나누고 끌어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된다. 배꼽 5cm아래 단전에서 가슴까지 오르고 내리는 숨, 그 숨이 시조가락에 온전히 실릴 때 소리와 의미가 비로소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흡이 시조창의 전부는 아니다.
“국화의 절개를 주제삼은 이 시조를 열창할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심적인 고난에 시달릴 때 시조 속의 국화가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아 주곤 하죠.”

동양화 작업을 업으로 삼고 사는 배연 씨에게는 시상(詩想)이 곧 그림의 바탕이 된다. 시 속 이미지를 떠올리며 어구를 곱씹다가 삶의 화두를 집어드는 경우도 있다. 잊고 지냈던 자연의 이치가 내지르는 소리 속에서 단박에 살아날 때 그는 또 한번 소중한 경험을 한다. 그렇게 창에 몰입하다보면 소리는 소리 위에서 살아나고, 의미는 그 너머의 뜻까지 포용하게 된다. 이쯤 되면 “시조창 자체가 마음을 닦는 명상과 다름없다”는 박종순 선생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인지 강좌를 수강하는 회원들에게는 일반인들에게서 쉬이 찾을 수 없는 진한 향내가 배어 있다. 회원들은 제 숨과 소리를 관하고 또 그것의 흐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이들에게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속도는 조금 늦춘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여기’를 온전하게 사는 것이 우선이라는 그들.

그들이 두 눈을 감고 박종순 선생의 창(唱)에 몸과 마음을 열고 앉았다. 그리고 2개월간의 장단과 발성 연습이 마무리될 때를 기다린다. 완성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 기대 절에 기대 평시조 한 수를 완창하는 것, 그것이 그들의 소박한 꿈이기 때문이다. (02)747-7034, 0505-766-7666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4-02-26 오전 8: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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