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감정평가사 불자회(이하 감불회)의 ‘좌담법회’. 장호원 무량사 대웅전에서는 조금씩 법회의 열기가 더해진다.
좌담 법회는 강의 형식의 일방적인 법문 전달 형태로 진행되지 않는다. 불법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 또 증명법사도 초빙된다. 특히 초청된 스님은 논의가 곁가지로 흐르는 것을 잡아주며 법회의 밀도를 높인다.
그렇다면, 감불회는 이런 방식의 법회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대중이 자주 모여 불법에 대해서 논하라’고 말입니다. 우리 불자회가 이런 방식의 법회를 고집하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다를 수 있는 생각들을 제각기 풀어내고, 또 함께 고민하는 데 이만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감불회 허통 회장의 설명은 수저까지 떠 주는 불교공부’가 아닌, 스스로 직접 ‘배움의 주체’가 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다고 덧붙인다.
오늘 좌담법회의 주제는 ‘살생과 방생’. 첫 질문은 불자회 한상의 고문이 한다.
“불교에서는 불살생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나무를 베는 것도 살생이라고 할 수 있을 텐 데…, 도반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맞습니다. 살생입니다. 시금치 한 포기도 사람의 목숨과 똑 같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사고입니다. 나와 연관돼 있는 분신으로 여겨야 합니다.”(허통 회장)
“그러면, 식물도 먹지 말라는 의미도 될 텐데, 어떠한 의미로 불살생을 실천해야 할까요?”(한 고문)
“글쎄요?”(허통 회장)
이 때, 여초 스님이 논의 핵심을 짚어준다. “일단 살생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기든 식물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양게를 식사 전에 올리지 않습니까? 살생의 또 다른 표현은 ‘방생’입니다. 죽은 것을 먹되 감사한 마음으로 취하고, 대신 두 배 세 배로 생명을 살리는 겁니다. 방생은 말 한 마디에도 그 뜻을 담을 수 있습니다. 가령 상대방을 험담하는 것은 살생이고, 반대로 기를 살려주는 것은 방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지함에 고개를 끄덕인다. 받아 적는 손놀림도 바빠진다.
이제는 여초 스님이 질문을 던진다. “자비란 무엇입니까?” 잠시 대웅전에 침묵이 흐른다.
“만 중생에 대한 사랑이 자비가 아닐까요? 이미 내가 부처라는 것을 깨닫고 부처님처럼 닮아가기 위한 마음이 바로 자비라고 생각되는데….”(윤천수 부회장)
“맞습니다. 자비는 부처님의 마음입니다. ‘바다’같은 마음이지요. 바다는 깊고 넓어서 바다가 아닙니다. 물이든 뭐든 다 ‘받아’ 주기 때문이죠. 또 소금으로 정화도 합니다. 그래서 바다입니다.”
“아! 그렇군요. 바다의 마음이 불제자의 자비심이군요.”
“그럼, 불교에서 마음을 비우라고 강조하는데, 생각처럼 잘 되지 않습니다. 바다와 같은 자비심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김원태 회원)
“비운다는 의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비움의 시작입니다. 자비심은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치를 알겠습니까?”
“네!”
묻고 대답하기. 시간은 흘러 좌담법회가 3시간 째 이어진다. 이번에 다뤄질 주제는 감정평가사 불자로서의 신행자세. 일터에서 할 수 있는 수행법에 대한 논의도 진행된다.
“우리는 토지, 건물, 은행 담보 등 경제적 가치를 매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신행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임학종 총무)
“단연 ‘평상심’과 ‘역지사지’라고 생각합니다. 사심 없는 공심으로 항상 일을 해야 하고, 옳지 못한 이익에 휩쓸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흔들림 없는 평상심을 ‘항상심’으로,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자세. 이것이 바로 불자 평가사의 신행이어야 한다고 봅니다.”(한 고문)
“동감합니다. 생활불교를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인연 닿는 수행법을 취해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진언염송이든 말입니다.”
“이제는 실천이겠군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부처님을 닮아갑시다!”(일동 웃음과 박수)
전국 2천 2백여 감정평가사 가운데 유일한 종교 모임인 감불회. 이들은 전문직의 자부심과 불자로서의 신심은 대단했다. 감불회가 봉행한 첫 ‘좌담법회’. 회원들의 불심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