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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無로 돌아갑니다"
봉녕사 승가대 졸업식 답사
지난 1월 17일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 졸업식장에서 발표된 한 비구니 스님의 답사는 강원 생활의 단면과 수행자로서의 고뇌와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이 답사는 치문에서 화엄까지 힘들게 올라오며 배우고 익힌 것들을 서정적인 단상과 함께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강원을 나서는 기대감과 후배들에게 주는 따뜻한 조언들이 곁들여져 있다.

4년간 공부하던 정든 도량의 모습을 계절마다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표현하며, 스승과 선배들에게도 고마움을 잊지 않는 정감어린 모습에서 수행자이기 이전에 한 젊은이로서의 아름다운 삶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다음은 답사 전문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둘이 아니라 셋입니다. 셋이 아니라 스물다섯입니다. 그리고 스물 다섯은 다시 하나입니다. 바로 저희 대교반이죠. 그리고 스물 다섯은 곧 봉녕사라는 대중속으로 포함되어 이제는 새내기였던 화엄반은 졸업하면 이 대중속에서는 이름도 형체도 없어지고 맙니다. 모든 것은 ‘공’ 하다고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있다가도 없는 것 없다가도 있는 것.

치문에서부터 화엄까지 힘들게 올라오니 이제는 무로 돌아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책을 보면, 애벌레들이 꽃을 타고 한없이 위로 올라갑니다. 위로위로. 목적도 없이. 위에는 뭔가가 대단한 것이 있을거라는 기대로. 남들이 올라가니까. 나도 따라서. 힘들고 힘든 여정을 거쳐 위로 올라갔을 땐 정상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뚜렷한 목적이 있지만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가야하는지.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이 나에게 맞는 수행법인지. 하지만 방일하지 않고 가다보면 목적지에 이르겠죠. 어쩌면 그 길을 찾는 것이 수행이 아닐까요.

저희 졸업반은 2000년도 새내기들입니다. 제가 봉녕사라는 강원을 선택했을 때 저는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재산도 없다는 이런 궁핍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 모든 것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면서 공부가 잘 되겠다 싶었습니다.

더욱이 “학장 스님의 사상이 훌륭하시다” 라는 말을 어른 스님들께 익히 들어왔습니다. 사숙, 사형 스님들이 모두 봉녕사 출신이었으니까요. 얼마나 좋은 수행환경입니까? 환경과 사상이 함께 하는 곳이라니. 그러나 막상 와보니 2000년도에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더군요.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수행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장스님께 범망경을 배우면서, 학장스님께서는 승이 갖추어야 할 위의와 계율 사상을 모두 갖추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스님께서 하시는 말과 행동이 모두 살아있는 법문이었습니다.

범망경을 통해서 부처님과 제자들이 어떠한 계율을 지키며 수행했는지 알게 되었고 계율이 우리를 더욱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뗏목이 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은 강원에서 새로 만난 많은 도반스님들과 함께 ‘경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환희로워서 첫 철 동안 너무나 행복하였습니다. 물론 스님의 위의와 생활의 법도를 익히기 위한 습의기간은 무척 힘든 시간이었죠. 하지만 세속의 습을 벗고 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마땅히 배워야 함을 저희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을 가르치려고 애쓰는 유나스님과 부전반 스님들을 비롯한 대중스님들을 보아서라도 열심히 익히지 않을 수 없었구요. 열심히 익히다 보니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는지 모릅니다. 제가 집에 돌아와 학인 스님들에게 생활했던 것을 말해주면 믿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봉녕사가 그럴리 없다고요. 힘든 여름방학을 보내고, 살아가는 동안에 반스님들에게 차츰차츰 미운정 고운정이 생기고 경전을 보는 안목도 늘어가더군요.

어느덧 사집이 되었습니다. 서장, 도서, 절요, 선요들을 차례로 배워 나갔죠. 특히 서장의 대혜 스님께서 “공부가 잘 안 될 때가 가장 잘 될 때다” 라는 말씀에 참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대부들에게 편지로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의 마음에 저희 스님네가 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서장의 구절들을 읊조리며 저희들은 발길을 밭으로 향했습니다. 사집에 올라오니 원두반이라 밭에 가서 씨앗을 심고 풀을 뽑고 비료도 주었습니다. 저희들은 땅에서 새싹들을 가꾸는 식물들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애정어린 손길로 배추벌레들을 잡고, 오이며 가지며 고추며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어요. 전날 밤 폭풍과 폭우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근심어린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밭에 가보니 어쩐 일입니까? 밭에 채소들이 싱싱하게 살아서 꿋꿋히 버티며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생명의 강인함에 새삼 가슴이 뭉클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밭에서 나는 채소를 다듬어 즉석에서 솥을 걸고 부침이며, 화전 등을 만들어 어른스님과 함께 먹던 일, 반끼리 맛깔스런 수제비를 만들어 강사스님들을 초청해서 솜씨자랑도 하고 여름에는 공양 들어온 수박을 놓고 반끼리 채육대회를 해서 서로 나누어 먹던 일 등은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스님들도 반끼리 똘똘 뭉쳐 경기를 할 때는 윗반 아랫반이 없습니다. 오직 페어플레이와 승리에 불타는 투지가 있을 뿐입니다. 이때는 정말 반스님과 하나되는 좋은 시간이었고 추억이었습니다. 봄, 여름 사집반과 함께 무럭무럭 자란 채소들, 배추, 무우 등을 거두어 들이고 겨울 김장을 맛있게 담글때면 이제 농사는 마무리가 되어집니다. 이제는 능엄반으로 올라가는 것이죠.

능엄반과 능엄경, ‘이제는 경을 본다‘라고 말하는 경반이 되었습니다. 능엄경은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는 중요한 경입니다. 또한 수행할 때 유의해야 할 변마장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정말 수행자에게는 필수적인 것이죠. 이런 심오한 경전을 배우면서 능엄반, 곧 사교반들은 치문반을 수행자로 바로 서게 하기 위해 가르쳐야 하는 책임을 맡게 됩니다. 잘못을 하였을 경우에는 서릿발같은 경책을 하고 힘들고 고된 운력을 하였을 때는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습니다.

물론 경책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어서 억울할 때도 있지만 반끼리 탁마하고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수행이라는 사실을, 자기 마음을 맑히는 좋은 시간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교반에서는 대중의 공양을 책임지는 막중한 소임이 있습니다. 대중 모두 열심히 수행정진하라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듭니다. 그리고 대중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나면 흐믓하고 뿌듯함을 느낍니다.

아울러 아랫반들은 음식을 먹고 고마운 마음과 함께 열심히 수행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됩니다.

드디어 화엄반, 강원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윗반이 됩니다. 화엄반은 아랫반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대외적인 소임을 맡아 강원을 대표하고 어른스님과 학인들을 연결하는 좋은 다리역할을 하게 됩니다. 1년동안 살아보니 이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 그리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수행중인 불제자들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라는 껍질을 깨뜨리는 시련을 겪지 않고서는 절대로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며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실을 종종 망각합니다. 가장 윗반이 윗반답지 못할 때, 아랫반들 또한 아랫반다울 수가 없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잘 이끌어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스러운 마음으로 아랫반은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며 소중한 것은 바로 우리들 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도반스님들과 화합하십시오.
화엄반은 자기자신을 잘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다른 이에게 돌려진 모든 화살은 곧 자기자신에게 돌아와 자신을 괴롭힌다는 사실을 아마 여러분들은 한 번쯤은 다 겪었을 것입니다. 나와 타인은 결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봉녕사에서 커온 봉출이들, 보호막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한발짝 힘찬 발돋음을 하기위해 정진했던 4년, 아쉬움이 먼저 앞서는군요. 우리는 정말 세상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한가? 모든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좀 더 각성해야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속인들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오늘날 승가의 실태입니다. 미래의 주역이 되어야 할 우리들이 각성하지 않는 한 승가의 미래는 없습니다. 바른 지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진합시다. 저희들도 이곳의 그리움을 저곳에서 꽃피워 청정한 수행승의 모습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항상 가장 위에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저희들의 꿋꿋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학장스님, 또 소중한 부처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시는 강사스님들, 저희들을 외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시는 삼직스님들, 율원스님들 어느 분 하나 스승이 아님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후배스님들 형님들이 잘났건 못났건 잘 따라주어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하심하는 모습과 지혜로운 생각으로 항상 육화당을 잘 지켜주워서 고맙구요. 여러분들이 있기에 저희 선배들이 있다는 사실, 저희 졸업반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원생활이 좀 더 생기있고 활기차며 신심나게 만든는 것은 이제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이 배운 것을 십분 활용해서 수행과 생활이 하나되도록 성실히 노력할 때 여러분이 원하는 바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든 육화당, 우리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봄이면 싱싱한 소나무와 파아란 새싹들, 여름이면 만발한 갖가지 꽃들, 가을이면 노을지는 태양처럼 아름다운 단풍으로, 겨울에는 하얀 눈으로 변해가는 모습, 연못, 용머리, 물고기, 천진이와 보리를 비롯한 모든 도둑고양이들, 희견 보살님, 열심히 기도하시고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해나가는 신도님들 구석구석 아름다운 기억이 서려있는 봉녕사 도량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정들면, 이별이라더니 이제 봉녕사가 내 집처럼 편안해지니까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4년 동안 부족한 저희들과 함께 해주신 소중한 인연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모두 성불하여 이세상이 불국토가 될 때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성불하십시오.
한명우 기자 | mwhan@buddhapia.com |
2004-01-29 오전 8: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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