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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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의 동행, 가까이서 본 ‘일터수행’
‘달리는 법당’의 주지 유경순 前 한국운전기사불자연합회 부회장.
【전문】하루 종일 일에 치이고 늦은 저녁에서야 가쁜 숨을 고르는 직장불자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이들은 ‘일과 수행’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잡고 있을까. 지난 1월 12일과 13일, 직장불자 2명의 일터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틀간 만난 일터불자는 자칭 ‘달리는 법당’의 주지라는 유경순 前 운불련 부회장과 불자법조인 모임 서초반야회 총무 박홍우 판사.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일과 수행은 경계가 없다. 둘이 아니다”라고. 가까이서 본 일터불심. 그 현장을 따라가 보았다.

#1. ‘달리는 법당’, 부처님을 매일 태운다=1월 2일 오전 8시 안양역. 역사에서 출근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유경순(50ㆍ법명 도연화) 前 운불련 부회장과 하루 동안의 불법합승(?)을 위해서였다.

“유 불자님! 지금 어디세요?” / “네, 갑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잠시 후, 택시가 섰다. 창문 틈으로 경전 독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서 타세요.” 타자마자 차 안을 둘러보았다. 그야말로 움직이는 법당이었다. 불상은 기본, 염주에서 진언, 풍경, 연꽃 장엄에 이르기까지. 법당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죠. 따로 수행할 곳을 찾을 필요가 있나요? 제 차가 바로 수행처랍니다.”

첫 손님이 탔다. 이것저것 살펴보는 승객의 시선이 분주하다. 천주교 신도라는 손석훈(41ㆍ안양시 박달동) 씨의 반응은 이랬다. “법당이네. 기사님 불자세요.”

승객이 내리자 유 부회장이 말했다.
“저 만큼 하루에 많은 부처님을 태우는 불자는 없을 거예요. 모시는 손님 모두를 부처님이라고 생각해요. 피안의 뗏목처럼 가는 목적지까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데려다주니 이 같은 수행은 어디서 하겠어요.”

오후 2시. 늦은 점심을 했다. 승객들 눈치 보느라 못했던 이야기보따리가 풀어헤쳐졌다. 불교를 믿게 된 인연, 기사생활을 시작하게 된 사연, 운불련 신행활동…. 유 부회장은 일터수행에 대한 말부터 했다. 20여 년 전, 처음 핸들을 잡던 날. 그는 <반야심경>을 기기판에 붙였다. 그리고 암송하기 시작했다. 불자로서의 자기점검과 운전기사로서의 안전운행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신행의 폭은 넓어졌다. 지난 98년에 운불련 안양지역회 창립을 주도했고, 2001년에는 전국 운불련 모임 가운데 첫 여성회장으로 활동했다. 신행의 깊이도 더 했다. 군포매화복지관 독거 어르신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년 효도관광을 펼쳤고, 안양천에서 자연환경보호 활동도 벌였다.

“불교의 매력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은 힘들어도 신나게 신행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열심히 일하고 부처님 법 믿으면 되지요.”

유 부회장은 올부터 조계종 중앙신도회에서 제2의 신행활동을 시작할 생각이다. 일터불자들의 신행을 실질적으로 돕는 데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유 부회장이 운행할 ‘달리는 법당’의 유쾌한 질주가 기대된다.

‘활인(活人)’이란 화두를 들고 사는 박홍우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서초반야회 총무).
#2. '활인(活人)’이란 화두를 들었다=이튿날 13일 오전 8시 반. ‘붓다의 법’과 ‘세간 법’, 두 개의 법 속에서 사는 불자를 만났다. 불자법조인의 모임 서초반야회 총무 박홍우 판사(52ㆍ서울지방법원 제5형사부). 재판 서류들이 수북이 쌓인 집무실에서 기자를 반겼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낀 골무가 인상적이다. 인사는 잠시, 곧바로 부심 판사들과 회의가 이어졌다. 오늘 검토해야 할 서류만 2천여 페이지. 손 놀릴 틈이 없다. 양형을 조율하고, 판결문도 마무리해야 한다.

오전 10시, 박 판사가 판결문을 다시 들여다봤다. 살인죄로 징역 7년을 선고한 20대 청년의 판결문이었다. 박 판사가 잠깐 동안 눈을 감았다. 5분간의 침묵….

“형사 항소심 재판장으로 저의 결정은 최종 판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항상 머리를 무겁게 만듭니다. 오판의 가능성은 없었나, 양형은 적절했는가. 세간 법에 묻고 불법에 묻습니다.”

박 판사는 언제나 법정에 들어가기 전에 5분간 참선을 한다. 화두는 ‘활인(活人)’을 든다. 판사는 죄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라는 뜻을 되새긴다. 20년 전 초임 판사 시절부터 판결 직전에는 반드시 ‘반야심경’ 한문 넉 자를 사경했다. 판사로서의 직업적 양심과 불자로서의 신심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불교는 솔직합니다. 거짓 없는 진실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세간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박 판사의 이 같은 마음공부는 72년 대학시절에서 비롯된다. 서울대 법대 ‘법불회’에서 불교를 본격적으로 배웠고, 73년에는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장을 맡으면서 ‘동체대비’ 가르침을 실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94년 헌법재판소 반야회를 결성했고, 95년 서초반야회 창립, 99년에는 창원지원에 불자회를 출범시켰다.

법관 생활 22년째인 박 판사. 현재 아시아 지역의 불자법조인 모임 결성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태국 법원의 출장을 계기로, 우선 불교권 국가의 법조인 불자회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또 사법연수원 다르마법우회 및 불교법조인회 등과 합동법회도 추진할 계획이다.
김철우 기자 | ingan@buddhapia.com |
2004-01-14 오전 9: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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