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 유가 도가 등 삼교에 회통한 가르침으로 불법의 깊이와 외연을 확장한 중국 명대의 고승 감산 대사가 되살아 나온듯, 활발한 강의와 저술활동으로 ‘현대의 감산 대사’로 불리는 남회근(南懷瑾, 86) 거사. 그의 30여 저술은 불유도 삼교의 수행법을 실제로 수증(修證)해 그 깊고 어려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어, 10여 년 전부터 중국 대륙에서는 필독서로 꼽히며 베스트셀러로 자리잡고 있다. 몇 년전 <금강경 강의>와 <정좌수도 강의>에 이어 최근 출간된 <남회근 선생의 알기쉬운 불교 수행법 강의>(신원봉 역, 씨앗을뿌리는사람들)는 그의 수행법을 드러낸 대표작이다.
대-소승 수행법을 회통하고 있는 <불교 수행법 강의>의 장점은 수행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미혹과 기로,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착오에 대해 하나 하나 구체적으로 그 타파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바른 수행에 대한 불교적 관점을 정면으로 제시하고, 정좌로부터 한 단계 더 나아간 보리의 증득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남 거사는 이 책에서 불법을 닦는 핵심이 견지(見地), 수증(修證), 행원(行願)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삼위일체로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견지란 이론(理)이며, 행원과 수증은 현실(事), 즉 사상(事相)이다. 견지란 견도(見道)이며, 도를 보려면 반드시 대지혜가 있어야 한다. 수증이란 경율론에 따라 선정을 닦는 것이다. 머리로 안 이치를 현실과 배합시키는 수행이다. 수증의 세 박자는 보고(見) 닦고(修) 실천(行)하는 것이다.”
남 거사는 선종의 폐해도 과감히 지적한다. 견지의 측면에서 불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은 분명하지만, 이 때문에 도리어 후세에 보리를 증득한 자가 적어졌다는 것이다. “마조 선사의 ‘마음이 곧 부처(心卽是佛)’라는 많은 도인을 배출했다. 그러나 뒷날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이치가 명확히 설명되면 될 수록 불학은 더욱 암담해졌고 수증 공부는 갈 수록 실질적인 토대가 없어졌다. 크기만 하고 실속이 없어서 차라리 지관(止觀)을 닦느니만 못하다. 관심(觀心) 법문을 행하면 적어도 과위(果位)의 반 정도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 거사는 교리는 도외시하고 화두 하나만 들고 선(禪)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일부 수행자의 태도를 비판한다. 옛 조사들은 삼장 12부를 철저히 통달한 후, 다시 교리를 포기하고 직접적인 하나의 법문을 따라 깊이 들어갔으며, 그렇게 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련에만 전념하면 되지 경론을 꼭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중대한 착오라고 말한다. 이치에 밝지 못하면 관점이 바로 서지 않아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없으며, 공부가 시원찮은 것은 이치에 통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 거사는 수증의 방법으로서 소승(小乘)의 수행법도 강조한다. 대승도 소승의 기초 위에서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당송(唐宋) 이전, 불교교리가 지금처럼 극성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많았던 것도, 불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수증의 방법을 붙들고 거기에 매진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 거사는 ‘화두는 지관 법문’이라고 규정한다. “화두 역시 지관(止觀)법문이지만 모든 의문이 한 곳에 집중되기 때문에 보통의 지관수행 보다는 탁월하다. 화두에 몰두해 아무 것도 모르고 어떤 망상이나 잡념도 없으니, 이것이 바로 지(止)이다. 그러다 어떤 기회에 갑자기 열려 이 문제 전체가 해결되어 버리니 비로 관(觀)인 것이다.”
남 거사는 선의 진정한 중심은 달마 조사가 제시한 이입(理入)과 행입(行入) 가운데 ‘행입’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이(理)’는 단순한 이치가 아니라 지관(止觀)과 관심(觀心)의 이론으로부터 시작해 나아가 도를 깨치는 것을 말한다. 행입은 십계(十戒) 및 보살의 행원을 포함하는 것으로, 대인관계나 일 처리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낱낱이 파악함으로써 도를 증득하고 깨닫는 것이다.
그의 ‘수행의 마지막은 행원(行願)’이란 말도 ‘행입’의 연장선상에 있다. “행원이란 자신의 심리적 행위를 바르게 닦아나가는 것이다. 심리 행위를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공부가 진보할 수 없으며, 견지 또한 원만할 수 없다. 불제자가 이론만을 말할 뿐 생명의 근원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일만 겁이 지나도 성인의 경계를 증득하지 못한다. 참 수행자는 수시로 자신의 심행(心行)과 사상, 행위를 검사하는 사람이다.”
남 거사는 “더 이상 의문이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배우지 않아도 되며, 망념도 사라질 수 있다”며 영명수(永明壽) 선사의 <종경록>에 기록된 ‘깨달음 성취의 판단기준 10가지’를 제시한다. △완전히 견성해 대낮에 색깔을 보듯 문수보살처럼 행할 수 있는가 △사람을 만나고 상황에 대처함에 모두 밝고 뛰어나 도와 상응하는가 △조사들의 언구를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의심스럽지 않을 수 있는가 △온갖 질문에 대해 능히 의문을 풀어줄 수 있는가 △언제 어디서든 지혜가 막힘없이 드러나 생각생각이 모두 원만하고 어떠한 경계에도 방해받지 않는가 △일체의 순역(順逆)과 호오(好惡)의 경계를 모두 알아 타파할 수 있는가 등이다.
<남회근 거사는>
1918년 절강성 온주 낙청현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유교, 불교, 도교의 주요 경전을 배우고 20대 초반에 불교에 귀의, 거사의 몸으로 사천성 아미산 대평사에서 3년간 폐관(閉關) 정진했다. 그 뒤 티베트에서 밀교를 깊이 연구하고 운남대학, 사천대학에서 강의하며 대장경과 중국 역대 전적들을 두루 섭렵했다.
1949년 대륙이 공산화되자 대만으로 이주, 보인대학 및 문화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중들을 상대로 삼교의 주요 경전들을 차례로 강의하여 황폐해지는 전통사상의 중요성과 의미를 일깨우는 데 진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