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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이 흐르자 음악이 바뀌고 무대 뒤에서 한 여인이 나타난다. 작은 체구에 호리한 선이 시선을 잡아끄는 사람. 이날의 춤명상 수업을 이끌 강사, 박태이(39) 씨다. 정제된 표정과 검은 의상만으로 묘한 움직임을 주던 그는 앞으로 진행될 명상의 과정을 자분자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시간 반 가량 이어질 명상은 참가자 스스로 쉼없이 끌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지도에 따라 수업이 시작됐다. 환한 조명이 어두워지고 명상음악이 자못 진지하게 울린다. 처음 단계는 몸 감각 익히기 단계. 참가자들은 매트 위에 편안히 눕는다. 마치 아침잠에서 깨어나듯 몸에 묻은 피로와 긴장을 훌훌 털어낸다. 기지개를 펴도 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늘어져도 좋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런 가운데서 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살피는 일이다. 내 몸이 지금 이 순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찬찬히 지켜보는 것.
그렇게 15분이 흐르니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제는 깊은 호흡으로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신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시간(10분)이다. 오쇼의 다이나믹 명상 첫 단계를 떠올리면 된다. 입은 막고 코를 통해서만 격렬하게 호흡한다. 가능한 빠르고 깊게, 전력을 다해 호흡한다. 호흡에 집중하다보면 몸 속 에너지가 움직이고 그에 따라 신체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낯선 움직임에 동요되지 말고 오직 호흡한다. 내가 호흡 자체가 될 때까지 계속한다. 호흡으로 세포 하나하나까지 일깨운다는 생각으로 호흡 호흡 호흡….
이제는 호흡으로 한껏 열린 몸을 통해 에너지를 분출할 단계다. 신체에 자유를 주고 몸이 원하는 대로 뭐든지 표현한다. 한층 빨라진 음악이 내 분출을 돕는다. 노래, 비명, 고함, 울부짖음 뭐든지 좋다. 필요하다면 뛰고 구르고 걷어차도 좋다. 모든 것을 밖으로 내던진다는 기분으로 의식적으로 미쳐본다. 내 움직임을 지켜보는 외부의 눈은 없다. 촛불 하나에 의지한 강의실에는 나를 의식하는 나도 없다. 그 무슨 일이든 마음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 순간, 내 몸에 모든 것을 내맡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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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춤명상 과정에 접어든다. 그에 앞서 박태이 강사는 걷기 명상의 과정을 따로 두기로 했다. 일상적인 동작을 춤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중요한 단계다. 잠깐의 걷기명상의 단계를 거쳐 참가자들은 춤명상에 서서히 몰입하기 시작한다. 음악에 맞춰 손끝이, 발끝이 하나하나 살아나는 사람들. 그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더 깊어진다. 춤추는 자로서의 에고(EGO)를 잊고 춤 그자체가 되기 위한 몸부림들도 터져 나온다. 춤추는 자와 춤의 구분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일 뿐 명상이 아니다. 춤의 흐름에 나를 온전히 내맡길 때 나는 춤과 혼연일체가 될 수 있다. 이때만큼은 바람이 불고 강물이 흐르듯이 나는 춤의 흐름으로 존재한다. 박태이 강사는 참가자들이 만들어 가는 이 거대한 에너지 흐름에 동참한다. 그 순간 강사와 참가자들 간 경계도 무의미한 것.
한 시간 가량 내면으로의 여행을 떠난 이들이 이제는 깨어날 준비를 한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매트에 누워 몸의 감각과 에너지를 가만히 관하는 시간이다. 이 같은 과정을 깨어난 내 몸과 마음에서는 나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녹아 나간다. 그래서 다음주 이 시간을 또다시 기약하게 된다. 박태이의 춤명상 수업은 매주 일요일 그렇게 이어져 오고 있다. (02) 747-7033
○ 박태이 선생은
국립 군산대학,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99년 우연히 찾게 된 인도 뿌나 명상센터에서 명상을 배우며 몸에서 ‘춤이 터져나왔다’. 무용전공자도 아니고 배움을 얻은 스승도 없지만, 함께 수련하던 명상가들은 그를 보고 “미라(힌두교 춤의 여신)의 화신같다”며 놀라워할 정도였다. 그는 그때부터 온몸을 던져 하루 13시간이 넘도록 춤을 췄다. 그러는 동안 20년 이상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같은 깊은 체험은 그의 명상법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그는 이론을 넘어서서 심신과 감응하는 춤명상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김정일 신경정신과와 상계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무료로 춤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해 ‘치유하는 춤명상’으로 적극적인 신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