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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가루 한 움큼 더 넣어요.”
“그만! 맵다니까요.”
12월 4일, 서울 구로종합사회복지관 지하 대중목욕탕. 손놀림은 어눌하지만 오가는 대화 속에는 살가운 정이 묻어난다. 봉사의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간간히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연신 훔치면서도 얼굴에 머금는 미소만큼은 여전히 가득하다.
“평소 집에서는 부엌 근처도 안 가 봤었어요. 처음에는 고무장갑을 끼는 것조차 낯설었지만, 복지사들의 지도로 김치를 버무리니 결혼을 할 여자 친구 생각이 나요. 앞으로는 남을 위한 봉사와 함께 집안일을 많이 도와줘야겠어요.” 법우회 막내 함덕호(31) 회원이 즐거워한다.
오늘 담가야 할 배추는 600포기. 부지런히 만들어야 한다. 9일까지 구로구 지역 독거노인, 소년ㆍ소녀가장 세대, 장애인 가구 150여 세대 500여 명의 밥상에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장은 차착 진행된다. 한쪽은 배추를 다듬으면서 소금으로 절이고, 또 한쪽은 무를 씻는다. 배추 속을 채울 양념 준비도 한창이다. 멸치 액, 대파, 쪽파, 마늘, 고들빼기….
구로승무소 법우회가 이처럼 연말 김장 담그기 봉사를 시작한 지는 10년 째. 법우회 우철제 회장이 이곳 복지관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당시 우 회장은 ‘실천하는 불자가 되자’란 신행 운동을 법우회에서 벌였다. 그러던 중 그 일환으로 봉사행을 펼쳐오고 있다.
“물론 힘이야 들죠. 그래도 끝나고 나면 즐거워요. 봉사의 기쁨을 만끽했으니까요. 우리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담근 김치가 어려운 이웃들의 입맛을 돋우어 줄 생각을 하니 벌써 신이 나와요. 봉사란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 자신을 풍성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맛에 법우회원들의 봉사행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법우회 염진열 총무(42)가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이들 법우회원의 손길이 닿은 곳은 적지 않다. 지난 74년 창립 이후, 줄곧 구로 지역 불우 이웃 돕기를 위한 성금 모금 활동은 물론, 관내 독거노인을 초청해 온천 등 유원지 나들이를 해주고 있다. 또 올 초부부터는 정기적인 활동을 위해 전체 66명의 회원을 3개 팀으로 나눠 노인복지시설인 경기도 화성 자제정사를 찾고 있다. 회원들은 격월로 이곳을 방문해 청소, 빨래, 말벗되기, 음식 준비 등 하나에서 열까지 척척 해내고 있다.
김장을 위해 팔을 걷어 부친 지 6시간 후. 목욕탕 욕조에 맛깔스런 빨간 김치 포기들이 쌓여 있다. 이들의 환희심 만큼이나 풍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