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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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깨달아 있다"
'道' 강의하는 김기태씨
“도(道)는 결코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고도 구체적인 바로 우리네 삶이요 현실이죠. 또한 도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도란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이 ‘현재’일 뿐입니다.”

11월 22일(토) 오후 3시, 서울 가회동의 한 빌딩에 자리잡은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미내사클럽) 강의실. 30대 청년에서 7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20여 수강생이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가운데, 강사인 김기태(43, 대구) 거사가 <도덕경> 29장에 대해 열강하고 있었다. 자신의 수행 체험과 유머를 곁들여 도를 말하는 그의 입에서는 전혀 신비하거나 추상적인 말이 나오지 않았건만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었다.

김 거사는 도에 대해 말할 때, “따로이 무언가가 있는 양 말하지 말라. 삶과 유리된 도도 말하지 말며,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 너무나 구체적인 ‘나’와 무관한 도도 말하지 말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자신의 강의 내용에 대한 확신에 차 있었다.

“잘만 들으면, 그냥 <도덕경>이라는 책 한 권 공부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내 삶과 존재 전체가 뒤바뀌는 거예요. 도라는 것을 알게 되면,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러한 것을 알았다는 단순한 이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뒤바뀌는 것입니다.”

대구 정화여고 교사, 영남일보 교열부 직원 등으로 근무하다 홀연히 지리산과 상주 극락원 등으로 떠나 수행하다 어느 날 문득, ‘뜻밖에 나는 언제나 진리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김 거사. 몇 년 전부터 서울, 부산, 대구, 구미, 포항 등지에서 <도덕경>을 비롯해 <신심명> <금강경> <육조단경> <돈오입도요문론> 등을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몇 달 전 자신의 구도기를 담은 노자 해설서, <찰나에서 샘솟는 행복의 향 아, 여기>(한반도)라는 책을 펴내 더욱 주목받고 있는 김 거사를 미내사클럽 강의 전에 만났다.

▲94년 6월 마침내 모든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하셨는데, 그 내용이 궁금합니다.

“나의 구도과정은 전혀 뜻밖으로 결론이 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미 진리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모든 존재가 이미 진리 안에 있었고,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언어이전의 세계는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 그 깨달음 속에서나 나타나는 무엇이 아니라 깨달음과는 무관한, 깨달음과 수행과 체험 이전의 지금 이대로였습니다. 그냥, 어쩔 수 없이, 이름하여 번뇌요 이름하여 보리였지 번뇌도 보리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였습니다.”

▲선(禪)에서 말하는 ‘번뇌 즉 보리’임을 깨치는 경계와 같은가요.

“도(道)는 그렇게 추상적이지도 않고, 또한 따로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불안, 게으름, 외로움, 분노, 미움, 짜증 등등이 사실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의 구체적인 우리들의 감정과 오욕칠정(五慾七情), 즉 그 번뇌가 사실은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보리(菩提)라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번뇌 즉 보리이니 그냥 살면 돼요. 그냥, 간택(揀擇)하지 말고, 그러한 것들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순간순간 우리 안(內)을 흐르도록 내버려 두면 돼요. 그것을 잘라버리거나 잡아늘이지 말고 그냥 그 속에 있어 보라, 다만 그와 같이 간택하지 말고 현재의 그 ‘부족’ 속에 있어 보라, 그 ‘부족’을 믿어줘 보라, 그리하면 머지않아 곧 지극한 도를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게 좀 막연하지 않을까요.

“진리는 언제나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것 속에 있지, 결코 미래의 완성된 무엇에 있지 않습니다. 외로움과 분노, 미움과 막막함 등등의 온갖 번뇌가 이미 우리에게 와있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못견뎌 하며, 단 한 순간이라도 빨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발을 동동 구르지요. 그러니, 단 한 순간만이라도 진정으로 거기 그냥 있어 보세요. 단 한 순간만이라도 진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러면 됩니다.”

▲그렇게 알면, 바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물론 ‘그렇게 아는 것’과 ‘그 자체가 되는 것’과의 사이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어요. 전자는 끊임없는 긴장과 내적 구속을 동반하지만, 후자는 무애(無碍)에서 비롯되는 무한한 자유와 질서가 있어요. 즉,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도 같은 것입니다. 전자는 살았으나 죽었고, 후자는 살아서 이미 영원한 참 생명의 풍요 속에 거하는 거죠.”

▲결국 선사들의 ‘닦을 것도, 증득할 것도 없다’는 가르침처럼, 수행이란 불필요한 것인가요?

“진리에 이르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미 내게 와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어떤 노력이나 수행을 통해서 다가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에요. 진정한 행복을 위해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는 그 마음만 쉬면 돼요. 진실로 그럴 수만 있다면, 진실로 그렇게 그칠(止) 수만 있다면 그만입니다.”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3-12-01 오전 9:35:00
 
한마디
그냥 아무것도 안할수있으면 그걸로 공부 다한겁니다. 마음이 가만히 멈춘다면 마음이전의 세계에 눈이 뜨입니다. 불교에서 일초직입여래지라고도 하는 그자리..
(2007-04-10 오후 11: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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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속에 손을 넣고 뜨거움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고통스러워 하는 것 자체를 그냥 느끼라고 하면서 불속에 손을 가만히 두는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손을 빼야 뜨거움이 사라진다는 지혜를 증득하여야 고통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공부 더 하셔야 겠네요...
(2004-08-04 오전 11: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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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이신지모르지만한번시험해보세요맞슴니다바로받아드리세요의심하지마시고요
(2003-12-04 오후 6:5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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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 사이트 운영자 성 법입니다. 우연히 기사를 보게 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김거사는 자신의 불교관을 말하는 것이지 그것이 곧 불교적 "진리"는 아닙니다. 법기 강정진 거사의 불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글을 보는 이는 몇 안되겠지만 김거사도 헛것을 실상으로 보고있던가 앵무새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구요? 그것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속제법에 있으면서 진제법을 터득한듯 말하는 것은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 강의 그만 두시지요.
(2003-12-01 오후 4: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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