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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가 배달하는 신문 부수는 500부. 자전거와 바구니에 신문을 가득 채우고 3시간 동안 꼬박 발품을 팔아야 하루 배달이 끝난다. 새벽 운동을 겸한 이 작업이 끝나야면 남편은 출근한다. 신문 배달로 버는 수입은 월 50∼70만원. 이 수입 전액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쓴다.
벌써 10년째,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13 종이나 되는 신문을 배달하고 있는 이들 부부의 삶을 들여다 본 사람들은 “대단해요~!”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한 TV 개그프로그램에서부터 유행어가 된 ‘대단해요’라는 수식어가 절로 따라다니는 이들 부부를 만나기 위해 10월 31일 마산을 찾았다.
매일 스님들처럼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김씨 부부는 보통 저녁 8시경에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이날 김씨 부부는 저녁 잠을 포기하고 10년간의 숨겨둔 이야기를 풀어내 주었다.
김씨 부부가 신문 배달을 시작한 것은 94년 11월, 김씨가 청백봉사상을 받게 된 것이 계기였다. 오랜 관행으로 굳어 있던 출장 공무원 교육신고제를 폐지하고 그 비용을 통장이체 시키는 등 행정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공로로 상을 받았다. 김씨는 전국에서 16명의 공무원을 뽑는 청백봉사상을 받은 후 6급으로 승진하고 5개국 해외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내가 한 일에 비해 보상이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의논 끝에 배달을 시작한 겁니다.” 아내도 두말없이 남편의 뜻에 동의했고 신문배달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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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정에 5백여 만원을 들여 구두 수선소를 마련해 주었고, 딸이 가출한 뒤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살고 있는 독거노인 신모씨에게는 매달 20만원의 생활비를 보조했다. 전신마비증세로 아들 교육이 막막해진 가정에 매월 30만원씩, 3년 동안 지원하고 아들을 지인(知人)의 회사에 취직시켜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한 가정이 살만하면 또 다른 가정에 인연이 닿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의 소식도 끊이질 않았다.
그렇게 이웃을 돕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신문 배달의 고단함을 잊어 갈 때, 배달을 중단해야 할 위기가 닥쳤다. 신문배달 4년째에 접어든 97년, 부인 박씨가 자궁경부암에 걸린 것이다.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한 후, 부산과 마산을 오가며 간호하고 새벽에는 부인 몫까지 신문을 배달해야 했던 김씨의 고통은 커져만 갔다. 고민 끝에 신문사 지국에 후임자를 구하는 대로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19살에 시집와서 13평 아파트에 살면서, 우유배달도 마다 않고 농아인 시누이의 아이까지 공부시킨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던진 한마디에 모든 것이 반전됐다. “김 선생님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기에 이렇게 초기에 병을 발견해서 완치할 수 있는지, 기적입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지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보름동안 입원 치료를 받는 아내를 대신해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큰아들이 신문배달에 나서도록 했다. 고 3때부터 배달을 돕곤 했던 장남 성수는 엄마의 빈 자리를 잘 채워주었다.
“아이들이 참 고마워요. 부모가 신문배달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 할 수 있는 나이였는데도 방학 때면 구역을 나눠 신문배달을 하고, 그 돈으로 제 또래 장애아들이 있는 시설을 찾아 봉사를 하곤 했어요."
그렇게 한 고비를 넘기고 나니 천둥 번개가 치는 날, “미친 것 아니냐” “죽으려고 환장했냐”는 소리를 들어가며 배달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제사가 많은 종가집이라 새벽 두시에 잠이 드는 일이 허다해도 구독자들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없다. 김씨가 열 대째 자전거를 바꾸고 아내의 손수레가 열 대째 부서져 나간 10년 동안 배달로 번 수입 9천여 만원은 고스란히 이웃을 돕는데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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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해보니 참 놀라워요. 할 때는 힘든 줄도 모르고, 조금이라도 세상에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했는데….”
남편의 말에 둥근 상을 앞에 놓고 <금강경>을 사경(寫經)하며 한동안 말이 없던 아내가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인데요. 그리고 도움을 받은 분들이 보답을 하려고 먹을 것도 주시고 오히려 많은 것을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셔서 기쁘죠.” 이들 부부의 얘기를 들으며 ‘대단해요’라는 수식어는 이들이 하고 있는 신문배달이나 선행보다는, 그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온 이들의 마음 앞에 붙여진 것임을 알겠다.
요즘 아내는 <금강경> 사경에 흠뻑 빠져있다. 지난 2월에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사경 하던 상을 그대로 물려받아 <금강경>을 쓰고 있다. 시어머니 49재를 지내는 동안 7번을 썼고 지금 열 번째 쓰고 있다. <금강경> 사경 병풍을 직접 만들겠다는 원을 세운 박씨는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이겨낼 수 있는 길이 경전에 설해져 있어요. 이 경을 내 것으로 만들어서 실천하다보면 나와 이웃의 고통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요. 불제자로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지요.”
“신문 배달하는 힘은 이런 원력에서 나온다“고 힘주어 말하는 김씨 부부. 신문배달을 마치고 돌아 올 때는 언제나 노래를 부르며 돌아온다는 부부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퇴직 후에도 신문배달과 이웃돕기를 계속할 것이다. “새벽 공기가 참 따뜻하다”는 체험담을 들려주는 이들 부부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솟아나오는 따사로운 햇살을 닮았다. 누구를 도왔다는 생각조차 놓아버린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실천하는 이들 부부를 뒤로하며 생각난 말은 역시 “대단해요”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