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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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행하는 도반’
“우리는 함께 수행하는 도반이에요.” 스님과 함께하는 자리가 어려울 법도 하건만 화계사 청년회 소속 40여명의 청년들을 이같이 말하며 환히 웃어 보였다.

10월 25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갖은 ‘현각스님과의 티타임’. 모임명에서 느껴지듯 티타임은 향긋한 차내음과 함께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러나 반시각도 채 안돼 7평 남짓한 카페의 세미나실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젊은이들의 구도 열기로 후끈거렸다.

“한국불교는 수행을 스님들만의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또한 사찰중심의 엘리트적인 수행분위기를 형성하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젊은이들에게 생활 속 수행의 중요성을 알려주고자 사찰에서 벗어나 여러분이 조금 더 편안하게 느끼는 이곳에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현각스님은 이같이 말하며 탁자 앞에 놓여진 음료수를 들이켰다. “빵은 없나? 같이 먹으며 얘기해요”라는 말과 함께.

꼴깍. 스스럼없는 스님의 모습에 젊은 법우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가슴 한 구석에 남은 어색함과 쑥스러움을 날려버렸다.

“옆에 앉은 동료 인근 씨가 좋은 자리라고 해서 따라왔어요.”(정상희)
“저는 청년회 소속도 불자도 아니지만, 불교를 알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김경애)

모임에 나온 동기는 각양각색이지만 자리를 빼곡히 매운 청년들의 눈빛은 어느 법회나 강연장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불교를 접해 궁금한 점은 없지만 간혹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초발심을 잃는다고 하나요?” 방현경 법우의 고민에 현각스님은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초발심은 첫사랑과 비슷해요. 시간이 흘러 잊혀졌다 생각해도 때때로 가슴 속에서 아련히 피어나는 감정이죠. 첫 직장을 들어갈 때의 열의와 패기도 마찬가지에요. 모두 다 초발심시죠. 그러나 공부하지 않으면 그 초발심을 잃어버려요. 그래서 항상 예불도 하고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에요. 세차를 자주하면 늘 새 차처럼 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 스님, 수행은 어떻게 하지요? 전 참선을 한다고 앉아 떠오르는 잡생각을 물리치다 매번 어지럼증을 느끼거든요.”(황인범)
“하지 말아요. 억지로 없애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거예요.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눈을 감고 앉아 자연스럽게 호흡해 봐요. 잡념이 날 수도 있어요. 그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참선은 이런 마음을 억제하며 내가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 물으며 얻는 깨달음이니까요.”

삶과 죽음의 차이, 불교에서의 남녀평등,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등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현각스님은 손·발짓을 총동원하며 설명하기에 열중이었다.

“생각이란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림자와 아무리 힘을 겨루며 싸워봤자 자신만 아플 뿐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들어 내쉬는 호흡 속에 그 번뇌스러운 생각이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생각은 삶도 때론 죽음도 만들지만 이것은 모두 생각이 만들어낸 거짓말입니다.”

실제로 그림자와 싸우는 스님의 제스처와 익살스러운 표정 앞에 모든 질문은 와해되어갔다.

“자신에 대한 질문을 즐겨해야 합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공부하는 방법이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념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게 중요하고 또 실천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찰이 아닌 집에서라도 매일 십 분씩만 참선해 보세요. 수행은 여러분을 되돌려볼 수 있는 마음자리를 만드는 공부입니다.”

이들의 대화는 어느덧 4시간을 훌쩍 넘고 있었다. 아직도 아쉬움이 많지만 청년들은 다음 달 티타임을 기약하며, 9시부터 시작되는 화계사 3천배 철야기도 정진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편한 분위기에서 스님과 허물없이 대화를 나눠 정말 좋아요. 얘기를 나누며 어느덧 마음속에 잡념과 번뇌, 망상 등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도 들구요.”(인민재)
“전 항상 수행이 부족한 것 같아 고민했는데, 좀 해결방법을 찾은 것 같아요. 다음에도 꼭 나오려구요.”(손은주)

걷고 이야기하고 먹고 차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것.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시끄러운 자동차 소리를 듣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전하는 것. 이 모든 게 수행이며 만행이라는 현각스님의 말처럼 번잡한 대학로 거리 속에 하나, 둘 스며들어가는 이들의 뒷모습은 인도 어느 고원의 젊은 수행자들을 연상시켰다.
김은경 기자 | ilpck@buddhapia.com
2003-10-29 오전 8: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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