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성(見性)은 부처되는 공부의 시작일 뿐입니다. 견성한 이라도 보임과정에서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불보살과 불법을 모독하는 말을 삼가야 합니다.”
동산반야회 법주인 무진장 스님과 함께 조계종 중앙상임포교사로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춘 뒤, 20여년간 수행에만 매진해 온 춘천 현지사(033-243-1787) 회주 만현(滿顯) 스님. 3년전부터 간간히 불교방송을 통해서만 설법하던 만현 스님의 법문이 현대불교 435호 ‘지상 백고좌’에 소개되자 많은 출재가 수행자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했다. 방송 설법이 나갈 때마다 보였던 이러한 반응은 ‘견성 즉 성불(見性卽成佛)’이라고 하는 선종의 불문율에 대해 과감히 다른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만현 스님은 수행법과 관련해서는 간화선 수행 못지 않게 위빠사나, 밀교 수행법을 높이 평가하면서 염불선(念佛禪)을 권한다. 특히 성불(成佛)에 대한 견해는 독특하다. 수행자가 남북방의 다양한 수행법으로 깨달아도 아라한과(果) 이상은 증득하지 못한다고 한다. 진정한 붓다가 되기 위해서는 보살 지위에 이어 불신(佛身)과 하나되는 더욱 더 어려운 공부과정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특히 스님들에 대해서는 ‘사음'은 절대 금기해야 하며, 참선 수행을 통해 견성하더라도 ’극락과 지옥이 없다‘고 하는 등 경전에 어긋나는 말을 삼가야 한다고 누누히 강조한다. 10월 11일 현지사에 스님을 뵙고 염불선의 이모저모를 여쭤보았다.
-‘견성(見性)은 공부의 시작’이라 하셨는데, 이 말씀은 선종의 ‘견성 즉 성불’이란 주장과 상이한 말씀인 것 같은데요.
“나는 견성은 붓다 이루는 공부의 시작이라고 확언합니다. 경계가 확 뒤집혀 일시에 진여자성이 들어났다(필요조건) 해서 억겁다생에 지은 업장이 녹는 게 아닙니다. 천만생을 내려오면서 익힌 악습, 악기가 하루 아침에 멸진되는 게 결코 아닙니다. 탐진치 3독의 뿌리도, 착심(着心)도 그렇습니다. 다생의 악연 역시, 이를 단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즉 진여본성이 잠간 드러났다 해서 붓다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불계(佛界) 즉, 무아 속 절대세계에 금강불괴의 자기 불신(佛身), 무량광 빛으로 이루어진 자기 붓다를 얻어야 불(佛)입니다. 이게 충분조건입니다. 이 일은 삼천대천 제불세존의 큰 위신력이 아니고는 불능입니다. 그래서 견성은 이제 공부의 걸음마 단계, 시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교학상의 근거는 무엇인지요?
“<종경록>에 서천의 28대 조사중 1인도 견성하지 않은 분이 없다 했습니다. 그럼 마명, 용수보살이 이미 견성했는데, 왜 서방정토에 왕생하고자 염불정업(念佛淨業)을 닦았겠습니까? 견성이 곧 불이라 하면 불은 가는 곳이 달리 있습니다. 서방극락이 아닙니다. 서방극락은 보살(보살 8地 이상)이 가는 곳입니다. 영명연수 선사 역시 불조의 정전인 대법안의 3세 적손인 바, 그 분처럼 간절히 왕생을 발원하고 염불수행한 이 드물 정도가 아니었습니까? 우리나라의 서산, 기화 선사는 어떻고요. 이외 불교역사상 걸출한 대존자들인 인도의 무착, 세친보살을 위시해 중국의 혜원, 선도, 청량, 천태 스님과 우리나라의 원효, 의상 등 큰스님들이 왕생극락을 발원했습니다.
-성불(成佛)하기 위해서는 염불선 공부가 더 적절하다고 보시는군요.
“참선을 통해 견성한 후 보임(保任)을 잘 마치면 아라한(聖衆)이 되어 생사윤회를 벗어나 해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구조상 아라한 이상은 오를 수 없습니다. 반면, 염불선은 중생이 ‘보살’이라고 하는 거룩한 성자가 되는 훌륭한 정업(淨業) 수행임을 밝혀둡니다. 따라서 염불삼매에 들 수 있어야 하고 공부중에 부처님의 청정하고 영롱한 무량광을 보아야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천만억 화신을 낼 수 있는 성자중 성자이십니다. 무아속 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에 자재하십니다. 붓다라야 중생의 업장을 소멸할 수 있고, 지옥 중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염불선의 구체적인 수행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중-하근기 수행자에게는 어려운만큼, 일심불란(一心不亂)한 염불을 통해 드디어 삼매에 드는 염불선을 권합니다. 구체적인 행법을 말한다면 먼저 정좌한 눈높이에서 1~2m 앞에 작은 점을 찍어 둔 다음, 두 눈을 뜬 채 시선을 점에 고정합니다. 가능한 눈을 깜빡 거리지 않은 채(5~10분 정도는 가능) 염불하되 관세음보살이나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지장보살, 문수보살 등 자신과 인연있는 불보살을 칭명하면 됩니다. 이때 시간이 지날 수록 일심불란의 상태가 무너져 마음이 도망가기 쉬운데, 눈앞에 염불하는 불보살이 계시다고 관상(觀像)염불을 하면서 마음 속으로 귀의, 참회, 발원의 염을 일으켜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번뇌망상이 자연히 사라져 마침내 염불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염불선을 통해 염불삼매를 얻은 후에도 보살 8지 이상의 지위에 이른 다음, 부처님의 무량광을 보고 불신(佛身)과 하나되는 더욱 더 어려운 공부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스님들은 지옥과 극락, 불, 보살 등을 인간 내면의 마음을 지칭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이에 대해 엄연히 실존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중생들은 있다, 없다를 분별합니다. 붓다는 허공에도 별나라에도 없습니다. 마음 속에도, 마음 밖에도 아니 계십니다. 무아 속 절대계에 여여히 계십니다. 하늘의 태양이 저렇듯 존재하면서 만물을 비추고 있듯, 부처님 또한 빛으로 게시면서 삼천대천 세계를 감싸고 계십니다. 붓다께서 사바세계에 현신할 때는 32상 80종호를 보이십니다. 붓다권 내에 든 성자 아니고는 그 본신의 빛의 강도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9지 선혜지(善彗地) 보살이 뵙는다는 부처는 화신불입니다. 고통 떠난 마음자리가 극락이고, 번뇌망상 시달리면 거기가 지옥이라고 압니다. 지옥, 극락도 관념속 산물이 아니고, 실제로 있음을 분명히 해둡니다. 지옥은 영체세계의 남방 지장(보살) 궁(宮) 쪽에 있습니다.”
-평상시의 염불선 공부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삼보에 귀의하고 청정하게 붓다의 계율을 지키면서 보살행하고 살아야 합니다. 수행자는 선지식의 우산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염불해야 합니다. 참회, 발원도 잊지 말고, 다라니도 염송하면 좋습니다. 팔정도에 따라 살 수 있다면 금생도 내생도 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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