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시카고에서 첫 번째 세계종교회의(The World Parliament of Religions)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들 가운데 ‘불교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불과 5명에 그쳤다. 그러나 오늘날 불교의 수행법인 명상을 하는 인구는 미국에서만도 성인 8명중 1명 꼴. 이제 불교는 종교적 의미를 넘어서 ‘명상’이라는 형태로 서구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들과 동양의 불교의 수행법인 명상은 도대체 무엇이 통했을까?
△ 몸과 마음의 치료제
명상이 신체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1960년대 허버트 벤슨 교수의 연구를 시작으로 많은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명상은 특히 스트레스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데, 미 국립보건원(NIH)의 연구에 따르면 명상은 스트레스 관련 호르몬을 감소시키고, 혈압과 맥박,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며, 불안감과 만성통증을 완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은 명상이 수면보다 3배의 휴식 능력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명상은 뇌의 기능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명상의 의학적 치유 효과와 더불어 많은 서양인들이 정신적 충족과 마음의 편안함를 위해서도 명상을 찾고 있다. 한 예로 미국에서는 9ㆍ11 테러 후 정신적 치유를 목적으로 명상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고 한다.
△ 명상은 일상생활이다
여피, 혹은 웰빙족의 상징인 많은 뉴요커들의 아침은 10~15분에 이르는 규칙적인 명상과 요가로 시작된다. 이들에게 명상은 ‘스타벅스에 들러 카푸치노 한잔을 마시는 일’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돼버렸다. 많은 연구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 명상이 정신과 신체건강에 좋다는 이유에서다. 또 명상인구 중 상당수는 명상을 특정 종교의 수행법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기독교나 유대교 등 자신의 종교를 따로 갖은 채 명상을 생활습관화 하고 있다.
△ 사회 지도자층의 문화적 코드
불교가 서구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할 19세기 무렵, 소위 ‘엘리트’인 사회 지도자층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도 앨 고어, 힐러리 클린턴, 리처드 기어, 키아누 리브스 등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층들에게서 명상은 가장 활발하게 환영받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제임스 콜맨(James William Coleman) 교수가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0년)에 따르면, 불교신자 중 51%가 대학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고학력자가 불교와 불교수행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회적 대안으로써의 명상
지난 9월 달라이 라마의 방미 시, 재소자들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소렌 고드해머씨는 “우리의 목표는 재소자 모두를 불자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재소자와 감독자 모두를 존중하고 그들 마음의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구사회에서 명상은 더 이상 수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명상은 이제 사찰이나 명상센터 뿐 아니라 학교, 병원, 감옥 등 서구 지역사회 곳곳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웨일즈의 한 지역 중, 고등학교에서는 명상을 정규 수업으로 채택하고, 명상지도를 위해 스님을 초빙하고 있다. 시애틀 부근 킹스 카운티 교정시설에서는 수감된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명상 훈련을 하루에 11씩 10일간 실시해 재범률을 75%에서 56%로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처럼 명상은 교육적 효과와 범죄율 감소 등에서도 그 입증돼 서구사회에서 법률적, 물리적 제재의 대안으로 자리하고 있다.
■ 명상하는 해외 명사들
사회적 위치와 명성으로 인해 명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언론과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 된다. 그래서 그들의 가장 큰 과제는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 많은 명사들이 명상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과중한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 정치ㆍ경제
앨 고어,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내에서도 명상에 있어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입을 모아 명상예찬을 펼치기도. 또 골프를 즐기는 일본의 전 수상 나까소네도 좌선과 함께 일상생활에서 틈틈이 명상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보호주의자로도 잘 알려진 빌 포드(William Clay Ford Jr.), 포드자동차 회장 역시 효율적인 경영을 위해 규칙적으로 명상을 한다.
△ 문화예술
문화예술 분야에서 불교 수행자로 손꼽히는 첫 번째 인물인 리차드 기어는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 명상은 물론 티베트의 구호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활동가다. 그는 20대 초반 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때 사사키 노사의 선 불교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됐다.
사석에서 늘 동양풍의 옷을 즐겨 입는 배우 스티븐 시걸 역시 구루 요가를 주 명상으로 하며 금강승 수행도 겸하고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30대의 외모를 지닌 여배우 골디 혼의 미모의 비결도 끊임없는 자기 관리와 규칙적인 명상 덕뿐이다.
8살 때부터 무예를 익혀온 중국출신 배우 이연걸도 “최근 5년 동안 불교적 수행을 하면서 최고라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받은 압박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텔레비전 시리즈 ‘트윈픽스’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데이비드 린치 감독, 배우 해리슨 포드, 키아누 리브스 등이 명상에 심취해 주변에까지 권유하는 ‘명상 애호가’들이다.
△ 스포츠
시카고 불스 6승, LA 레이커즈 3연속 우승을 이끌어 내며 NBA 사상 최다 우승 감독인 필 잭슨. ‘젠 마스터(Zen Master)’라 불리기도 하는 감독은 팀이 부진하면 묵언 수행을 시켜 침묵으로 자율적 훈련을 하게 하는 등 불교와 선을 기본지도방법으로 채택했다. 시카고 불스 시절부터 감독의 명상 수업을 함께 지도했던 운동심리학자 조지 멈포드 역시 요가전문가이자 명상수행자. 그는 현재 LA 레이커스의 명상 코치의 역할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