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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동료들이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연휴를 기다리는 동안, 마헤시는 함께 온 친구 7명과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속절없이 그리워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거제시 시현읍에 있는 금강사(주지 성원)가 외국인 근로자들과 지역노인들을 위한 무료진료와 한마당 잔치를 연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채 적응도 되지 않은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랠 뿐이었다. 그러나 7일, 뿌리얀나, 마헤시 일행들은 금강사가 마련한 한가위 잔치에서 "Happy! Happy!"를 연발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운 가족들도, 타국이라는 낯설음도 잠시 잊고 수월리 마을 어르신들의 웃음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날, 거제시 시현읍 수월리 수양마을의 수월초등학교는 교실엔 병원과 약국이 문을 열었고, 운동장 담장에 줄을 지어 선 나무 그늘 밑에는 잔치상이 차려졌다. 금강사가 한가위를 맞아 지역의 외국인 노동자와 노인들을 위한 잔치를 연다는 소식을 접한 감로심장회(이사장 승욱스님)와 진주 경상대학교 병원 불교모임인 보련회(회장 강석휘), 진주 선학로타리클럽(회장 김길수)에서 선뜻 함께 할 뜻을 비쳐 무료진료소까지 문을 열게 됐다. 매주 일요일마다 진주 봉곡로타리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사랑의 진료소(소장 하우송)를 열고 있는 경상대학교 병원 보련회에서 무료진료를 자청했고, 감로심장회와 선한로타리클럽 회원들은 자원봉사를 맡아 필요한 일손을 덜어주었다. 흉부외과 이 상호 교수, 안과 유지명 교수, 일반외과 하우송, 박순태 교수, 이비인후과 안성기 교수와 박희자 간호사외 7명의 간호사들이 진료 준비를 마치자, 접수와 진료, 처방, 침치료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됐다. 통역 자원봉사를 맡은 금강사 신도들의 안내로 외국인 근로자들도 하나 둘 진료소를 찾았다.
마헤시도 진료를 받아 보기로 했다. 평소 건강한 편이였지만 페인트 일을 시작한 이후부터 팔 관절이 아프기 시작했다. (주) 우방에서 함께 페인트공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도 같은 증상을 호소했다. 그러나 20대의 젊은 마헤시와 친구들은 모두 큰 탈없이 건강했다. 병원을 가는 교통편도 잘 모르고, 형편도 어려워 병원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무료 진료 기회는 건강을 점검해볼 좋은 기회였다. 중국 북경에서 온 원연위씨와 길림성에서 온 조선족 이홍길씨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에 온지 8년째를 맞은 이홍길씨는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겠다는 각오로 웬만큼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는다”며 “이렇게 치료를 받게 해 주어서 마음속 깊이 감사 드린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8년 전 길림성을 떠나올 때 3살이던 아이가 이제는 11살이 되었지만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이홍길씨.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홍길씨를 비롯 이날 사랑의 진료소에는 스리랑카, 폴란드, 루마니아, 조선족, 중국 등의 외국인 근로자 50여명과 지역 노인 등 120 여명이 찾아와 진료를 받았다.
“시골에서 병원에 가기가 쉽나?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이렇게 마을까지 찾아와 무료로 봐주지 고맙지.” 옥원산 할아버지의 칭찬에 팔순을 넘긴 변금련, 신아지 할머니도 말을 거든다. “마을에 금강사가 생긴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이래 큰 잔치를 열어주니 고맙지. 덕분에 치료도 잘 받고 전통차도 맛보고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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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한마당 잔치는 거제시 문화패 소리울(회장 심상회) 회원들이 흥겨운 풍물놀이로 시작됐다. 꽹과리, 북, 장고, 징 소리가 따갑게 내려앉은 햇살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고깔을 쓰고 장고를 맨 소리울 회원들이 만든 큰 원안에서 마을 할아버지와 마헤시, 뿌리얀나와 친구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풍물소리가 자진모시, 휘모리 장단으로 흥겨움을 더하자, 이를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의 박수소리도 높아졌다. “외국인이 우리 소리에 맞춰 저렇게 춤을 잘 추네. 아이고, 참 잘 춰.” 박수를 보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얼굴이 재롱피우는 손자를 바라보는 듯 정겹다.
오후 2시경, 무료진료가 마무리되었다. 각종 의료장비가 정리되고 교실에 차려졌던 통증치료를 위한 침 치료실도 문을 닫았다. 사랑의 진료소는 자원봉사자들의 날쌘 움직임으로 어느새 책상과 걸상이 나란히 정렬된 평범한 교실로 돌아가 있었다. 그러나 잔치상에 모여 앉은 외국인들과 지역주민들은 오래 동안 자리를 뜨지 않고 정담을 나누며 넉넉치 못한 살림살이와 낯 설은 이국의 외로움을 잊고 한가위의 풍성함을 나눴다. “어르신 자주 자주 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형편 닿는 대로 꼭 도울 테니 자주 만나요.” 마을 사람들과 외국인 근로자들을 향한 성원스님의 굳은 약속이 있어, 금강사의 한가위 잔치는 긴 여운을 남기며 내년을 기약했다.
한가위 맞이 한마당 잔치 연 금강사 주지 성원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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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사 주지 성원스님은 “민족의 축제라고 온 나라가 떠들썩한 명절에 더욱 소외되기 쉬운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고 싶었다”며 이날 행사의 취지를 밝혔다. 성원스님은 “돈을 벌면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대부분을 보내고 형편이 어렵다고 들었다”며 그들을 위해 앞으로 법회나 각종 행사를 열고 싶다고 말했다.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 하나로 시작했던 행사였지만 기업체들의 반응이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모이면 불평불만이 많아지고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기업체에서 이런 행사를 열어야 함에도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자체 체육대회를 열어서 참여를 못하게 하더군요.” 섭섭함을 토로한 성원스님은 그러나 마음이 순수하면 내년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겠냐며 마음을 돌렸다.
금강사가 수월리에 자리를 잡은 지 일년 남 짓. “이웃과 함께 숨쉬는 불교, 불교와 사회를 하나로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는 스님의 발원으로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각종 행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