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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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불국토 건설부터 시작해요”
“저 메밀꽃밭 좀 보세요. 달빛이 들면 봉평이 따로 없다니까요. 저기 맨드라미랑 붓꽃도 아담하니 이쁘죠? 아이고, 고추 딸 때가 됐구나.”

허영곤(40ㆍ조계사 청년회 전 봉사팀장)씨가 경기 화성 자제정사 초입에 이르러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마치 고향에 온 듯 곳곳의 숨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모습에 애정이 가득하다. 잇따라 도착한 20여 법우들의 모습도 한결같다. 한 달 전 심은 파는 얼마나 자랐는지, 집중호우에 잔디가 무너져 내리진 않았는지, 살펴야 할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8월 31일 ‘조계사청년회(지혜부 부장 김석빈)’의 ‘자제정사 8월 봉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자제정사는 대만의 자제공덕회를 모델로 삼아 자급자족의 복지공동체를 꾸리고 있는 불교계 양로시설. 조계사 청년회는 이곳에서 한 달에 한번씩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상을 내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꿈꾸며 시작하고 이어온 봉사가 올해로 9년째를 맞았다.

“오랜만에 볕이 나려고 하니 고추 좀 말려야죠? 대웅전 뒤의 잡초는 좀 뽑았나요?”

봉사팀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35)씨가 일감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청년회가 주로 담당하는 일은 농사일. 인근 1만여 평의 땅을 일구며 사는 자제정사 식구들에게 매달 큰 힘이 되어주는 그들이다. 청년회원들은 매 봉사 때마다 봉사일지를 작성해 제철 일거리를 기록하고 베테랑 일꾼들의 노하우를 축적한다. 그래서 청년회의 조직력은 그 어느 단체보다 탄탄하다.

“이젠 오랜 벗들처럼 지내죠. 그래서 험한 일을 부탁하거나 응하는 데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요.”

자제정사 총무 경덕스님 말대로 청년회 봉사 스케줄은 온종일 빡빡한 경우가 많지만, 회원들의 불평은 거의 없다. 오히려 백장 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부석(一日不作 一日不食) 청규(靑規)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노동의 보람을 느끼게 됐다는 그들. 그래서 지붕 위에 올라 고추를 널거나 참깨 더미를 운반할 때, 땔감용 나무를 쪼개거나 밭이랑에 쪽파 씨앗을 심을 때 언제나 활기차다. ‘봉사의 의무감’을 떨친 이들이기에 모든 일을 여여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이곳에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전해주러 왔는데 풍요로운 마음을 되받아 가는 것 같은 기분 아세요?”

허영곤(40)씨는 이곳을 찾을 때마다 마음이 넉넉해져, 봉사 때마다 부인과 아이들을 데리고 올 정도라고 한다. 일부러 주말농장에 가입하곤 하는 마당에, 이만한 산교육장이 어디있겠냐고 되묻는 허 씨. 구릉 위 법당에선 부처님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고, 밭으로 둘러싸인 시설 마당에는 백일홍, 능소화 할 것 없이 수십 종의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는 자제정사다. 청년회에서 수년 전 손수 심은 잔디와 나무들도 무럭무럭 자랐고, 회원들이 손수 가꾼 채소들은 악천우에도 불구하고 한 포기도 죽지 않고 잘 컸다고 한다.

특히 이번 8월 봉사에는 조계사 청년회 풍물원이 가세해 신명나는 한판 공연을 펼쳤다. 또 안양지역 신행회 ‘가릉빈가’와 신림여고 학생들도 봉사를 나와 어르신들께 50여명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함께 나누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 함께 행복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은 같았기에 다가오는 한가위 만큼이나 풍성한 하루.

“한시절로 마감하는 봉사활동은 의미없습니다. 불자들이 지역을 아우르는 넉넉함을 가지고 지역복지에 앞장서야 합니다. 지역의 불국토 건설은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김석빈(33)씨의 말에 청년회원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제정사를 통한 조계사 청년회 불국토 건설은 이미 진행형인 것이 아닐까. 자제정사 (031)356-9030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3-09-03 오전 8: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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