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7 (음)
> 신행 > 신행
“어르신 행복자리에 침을 꽂아요”
“할머니, 침 뺄 때 됐어요. 이제 일어나셔야죠.”
널찍한 모포자락에 누운 할머니, 이상하게 말이 없다. 의사가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자 부스스 눈을 뜬다. 오후 해는 따사롭고 시원한 바람까지 훌렁이니 낮잠을 이길 길이 없다. 편한대로 누워 휴식을 취하는 그들 사이로 의사와 간호사의 시침과 소독이 한창이다. 환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는 의료진들의 마음씀씀이 때문에 더욱더 빛이 나는 서울 혜명양로원 무료 진료 현장.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의료진들이 한 마음으로 꾸려가는 바라밀 현장이다.

동국대 분당한방병원이 불교계 양로시설인 혜명양로원의 무료 진료 봉사를 시작한 것은 어느덧 8년째. 의료진이 진료 차 양로원에 들른 것이 인연이 돼, 이후 한달에 한 번씩 무료로 한방 진료 봉사를 이어가게 됐다. 현재 분당 한솔사회복지관과 혜명양로원의 무료 한방 진료를 맡고 있는 동대한방병원 의료진들은 광주 나눔의 집, 분당 청솔복지원 등에서도 수년간 무료 진료를 펼쳤었다.

이날도 한의사 2명과 간호사 1명, 원무과 직원 1명이 침과 약품 등을 챙겨 30여분을 달려왔다. 24명의 전문수련의와 일반수련의가 조를 나눠 돌아가며 찾게 되는 양로원. 짧은 시간에 30-40명의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신경이 예민해질 법도 한데, 의료진의 얼굴은 밝기만 하다.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의대 재학 시절부터 진료봉사가 제 생활이 됐으니까요.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웠다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뿐이죠.”

한방 내과 전문의 백진원 씨에겐 봉사 자체가 일상이다. 그런 그에게 무료 진료 봉사의 특별함을 끌어내려 할수록 ‘생활 속 무주상보시 실천’ 의미가 퇴색된다. 백 씨의 말을 증명해 보이듯 의료진에게서는 어떠한 귄위도 읽을 수 없다. 하얀 가운을 입은 것만이 환자들과 구분되는 모습일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침을 놓는 모습이 영락없이 허물없는 동네청년이다.

“어르신, 아픈지 얼마나 됐어요?”
“나? 한 20년 동안 아팠어.”
“20년 동안 아팠던 건요, 금방 못 고쳐 드려요”

첫 진료의 긴장 때문인지 조금 긴장한 어르신. 의사의 장난기어린 농을 들으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이처럼 이들 간에는 벽이 없다. 사이클 경기를 함께 시청하며 주자들의 레이싱을 동시에 쫓기도 하고, 누군가가 늘어놓는 인생 이야기에 한바탕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양로원은 임시진료소라기 보다는 동네 어르신들과 낯선 젊은이들이 함께 하는 ‘테마 사랑방’에 가깝다. 진료가 있는 날엔 인근 주민들까지 양로원을 찾아와 애틋한 분위기를 더한다.

의료진이 이처럼 ‘침술’과 ‘넉살’을 함께 준비하고 나선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병원진료와 양로원진료를 지속적으로 병행해왔던 이동권 씨는 생활보호대상자인 양로원 어르신들의 기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한다. 경제적 이유가 큰 것이 아닐까 라고도 추측해 봤지만, 산간 시골마을 무료 진료 봉사를 다녀오고 생각을 달리했다. 넉넉치 못한 건 매한가지였지만 시골에 마련된 진료소에는 웃음과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마음의 행복까진 앗아갈 순 없겠죠. 우리가 도울 수 있는 것엔 한계가 있겠지만, 한 방의 침으로 막혔던 웃음을 뚫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진료와 시침을 마치고 마지막 환자에게 약봉지를 쥐어주는 의사의 손짓에서 문득 약사보살의 수인을 보게 된다. 의료진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어르신들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진짜 보살을 보게 되는 건 시간문제가 아닐까.
강신재 기자 | thatiswhy@buddhapia.com
2003-08-14 오전 8:50:00
 
한마디
닉네임  
보안문자   보안문자입력   
  (보안문자를 입력하셔야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내용입력
  0Byte / 200Byte (한글100자, 영문 200자)  
 
   
   
   
2024. 11.27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원통스님관세음보살보문품16하
 
   
 
오감으로 체험하는 꽃 작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