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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운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역사적으로도 이렇게 많은 선방 비구니 스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예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특강을 계기로 해제 후에도 큰스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자리를 꾸준히 이어나갈 예정이다”고 밝혔다.
전국비구니회장 광우 스님은 환영사에서 “19일 개관을 앞둔 전국비구니회관에서 이런 뜻 깊은 행사가 열린 것은, 비구니회관이 비구니 수행과 교육 도량으로 거듭나는데 큰 디딤돌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된 이날 특강은 명성 스님(운문사 승가대학 학장)이 ‘교와 선의 필요성’을,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이 ‘한국선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또 혜국 스님(제주도 남국선원 선원장)은 ‘간화선이 한국불교에 끼친 영향’을, 종범 스님(중앙승가대 총장)은 ‘선종사상’을 주제로 각각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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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禪)은 마음의 다른 이름이며 마음은 선의 본질이다. 언어문자로 표현된 것이 교(敎)이고 언어문자 속에 있는 묘지(妙旨)는 곧 선이다. 그 묘지만 꿰뚫어 얻으면 어느 것이 선 아닌 것이 없다. 이를 위해 부처님의 근본이념인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을 고루 닦는데 수행의 요점이 있다.
마음이 만유의 근본이므로 선이 불교의 근본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한다.
묘한 소리를 지닌 종이라고 할지라도 울리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비구니들이 이 종을 울리기 위한 방망이가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부처님 경전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참선하는 수행풍토를 확고히 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정진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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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선법이 전래된 것은 신라하대 무렵이며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구산선문이 형성되면서 한국선의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중국 선종에서 형성된 대부분의 선풍이 우리나라에 전래되나 초기에는 혜능스님의 제자인 남악회양스님을 이은 마조도일계의 마조선(홍주종풍)이 전래되고, 고려말엽부터는 마조도일스님의 법손에 의해 형성된 임제종풍이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처음으로 신라에 선법을 전한 이들이 법랑스님과 신행스님이라면 최초로 남종선(조사선)을 전한 선사는 도의스님이다. 마조도일스님의 제자 서당지장스님으로부터 심인을 얻은 신라 말 도의스님은 가지산문을 형성한다. 이후 고려 초까지 구산선문이 개창됐고, 이는 고려 중후기에 조계종으로도 불리고 있다. 고려중기의 보조지눌스님은 사굴산파로서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함께 간화선을 도입하여 간화경절문을 시설하고 선교를 회통시켰다. 지눌을 이은 진각혜심은 간화선을 크게 진작시켰으며 비구니 선사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선교도총섭’이 된 휴정스님이 선의 입장에서 교를 회통했으며, 휴정스님과 그의 문하이기도 했던 부휴스님의 문파가 크게 번성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선풍과 교학을 진작하고 선교염불을 나란히 닦는 수행가풍을 이뤄갔다. 그러다 조선시대말기에 한국선의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한 선론이 전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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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종단, 수행법이 공존하는 가운데 간화선은 한국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간화선에서 화두는 있는 그대로의 참 나를 보라는 참구(參究)이다. 참 나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보기가 아니라 ‘들어보다’, ‘냄새 맡아 보다’라는 우리말처럼 여러 가지 뜻을 포함한다.
화두는 말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 자체도 아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참선수행에는 3가지 마음준비인 대신심(大信心), 대의심(大疑心), 대분심(大憤心)을 강조해 왔다.
생사윤회를 벗어나기 위해 각자 화두를 놓아서는 안 되며, 한 생각 변하는 것으로 내 삶이 변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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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풍은 신라 하대에 달마 선지(禪旨)를 수용하면서 형성됐다. 당나라에서 달마선을 체득하고 돌아온 신라 고승들이 신라 말부터 고려 초에 이르기까지 선문을 개창했다. 이때의 선문을 구산선문이라 한다.
구산선문의 개산조 중 제일먼저 당나라에 가 선법을 전수하고 귀국한 분은 도의 선사다. 도의선사 이후 많은 개산조들이 신라 화엄종풍의 기반 위에 선법을 선양해 신라 선찰의 사격은 화엄종의 그것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조계종과 구산문은 선종을 일컫는 동일한 개념의 명칭으로 고려초기부터 구산선문을 비롯해 모든 선문을 조계종, 또는 구산문이라 불렀다. 고려시대의 혜거국사, 대감국사, 보각국존 등의 비문에 남긴 기록들은 구산선문이 조계종으로 성립했음을 보여준다. 또 무염선사의 법어, 고려 말의 고승비문 등에 ‘조계종’이 명시돼 있어 조계 종지를 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