傍觀)
서리맞은 단풍잎을 돈아라 하니
어린아기 울음 그치고 기뻐하였네.
가져다가 엄마에게 보이니 모두가 좋다고 말하나
곁의 사람 비웃음 받을 이는 누구이던가?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월하스님
천진자성 본무미오(天眞自性 本無迷悟)
진시방허공계 원래시아일심체(盡十方虛空界 元來是我一心體)
허공 본래 무대무소 무루무위 무미무오(虛空 本來 無大無小 無漏無爲 無迷無悟)
일도청류 시자성무생법인 하유의의(一道淸流 是自性無生法忍 何有擬議)
진불무구 불해설법(眞佛無口 不解說法)
진청무이 기수문호 진중(眞聽無耳 其誰聞乎 珍重)
천진자성은 본래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으며, 온 시방의 허공계가 바로 나의 한마음의 본체니라. 허공이란 본래부터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번뇌라 할 것도 인위적인 작위도 없으며, 미혹할 것도 깨칠 것도 없다. 한줄기 맑은 흐름이 자성의 태어남이 없는 진리이니 어찌 머뭇거려 헤아리고 따질 수 있겠는가. 참 부처는 입이 없어 설법할 줄 모르고 참 들음은 귀가 없으니 뉘라서 들을 수 있겠느냐. 수고하였다. 편히들 쉬라.
오늘 계미년 하안거 해제일을 맞이하여 시회대중에게 고한다.
남전화상에게 어느 날 한 중이 묻기를 “사람에게 설하지 못하는 법이 있습니까?”하니 남전화상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중이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사람에게 설하지 못하는 법입니까?”하였다. 그러자 남전화상이 대답하기를 “심(心)도 아니고 불(佛)도 아니고 물(物)도 아니다.”고 하였다.
우리 선가에서는 마음이 곧 불이라고 내세우는데 왜 마음도 아니고 불도 아니며 덧붙여 물도 아니라고 하였는가?
이에 대해 훗날 무문스님이 평하기를 ‘낭당불소(朗當不小)’라 하여 ‘쓸데없는 비용을 남발했다’고 지적하였으나 이 또한 잘못됐다.
그릇됨을 일격에 바로 본 이는 부디 마음도 놓아버리고 불도 놓아버리며 물도 놓아버린 채 오늘 해제일을 맞아 비로소 진중하라. 도처에 산해진미가 가득하구나.
용본무이문이신(龍本無耳聞以神)
사역무이문이안(蛇亦無耳聞以眼)
이상이명여불품(離相離名如不稟)
막대달마문참선(寞對達磨問參禪)
용이란 본디 귀가 없지만 정신으로 듣고
뱀 또한 귀가 없지만 눈으로 듣는다.
‘모습’과 ‘이름’을 떠난 것 본래 성품 없으니
괜스레 달마에게 참선을 묻지 말라.
돌(乭)!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원담스님
검봉두상 투천관(劍鋒頭上 透天關)
만고추공 월색신(萬古秋空 月色新)
장강파심 박공계(長江波心 拍空界)
분명수저 천변륜(分明水底 天邊輪)
예리한 칼 날 위에서 하늘 문을 여니
만고의 가을 하늘 달빛 새롭네
장강의 파도는 하늘을 두드리나
물 밑에 달 그림자 선명하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하셨고, 법안 스님은 “만일 모든 형상이 형상 아닌 줄 보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하였는데, 이에 대해 옛 스님이 말하기를 “형상이 형상 아닌 줄 안다면 안목은 어디에 있는가! 이 말에는 두개의 함정이 있으니 누군가 찾아내면 그는 법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가졌다 하리라.” 하시고 “앞 쪽은 천 길의 묵은 개울이요 뒷 쪽은 만 길의 높은 산”이라 했는데 대중들은 알겠는가!
모른다면 일러주리라.
눈이 온 뒤에 소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고, 새가 허공을 날으나 그 흔적이 없다 하리라.
그러나 상이 있고 또한 구함이 있겠는가?
백옥에 티가 없거늘 문체를 새기려다 본 바탕을 다치게 하지 말라!
유(有)에 집착하고 무(無)에 집착하는 것은 모두 삿된 견해이니 유와 무에 집착하지 않아야 일미가 항상 나타나니라.
육조스님은 “모든 상이 허망한 것이니, 만일 일체 모든 상이 허망해서 실(實)이 아님을 깨달으면 곧 여래의 무상한 그 진리를 본다”하셨는데 마음이 여여하면 경계도 여여하다.
그러나 이 여여를 여여라 하면 여여가 아니라 벌써 변해 버린 말이니 이 여여는 곧 우주의 근본이며 일체만물이 이 여여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니라.
야부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부처님께서 어느 곳에 계시겠는가!”하였는데
일러보라! 대중들은 무어라 입을 열겠는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한다면 개구즉착(開口卽錯)하니라
방하착(放下着)하라, 방하착하라
수지만리 고공월(誰知萬里 高空月)
금고분명 절점하(今古分明 絶點瑕)
누가 알리요, 만리의 높은 하늘과 밝은 달을
고금에 분명하여 티가 없네
◇태고총림 선암사 칠전선원장 지허스님
在山人恨出山人(재산인한출산인)
從此山光半欲貪(종차산광반욕탐)
收給煙霞歸去後(수급연하귀거후)
空山唯有月孤輪(공산유유월고륜)
산에 있는 사람이 산 나서는 사람을 부러워하니
이로 하여 산빛이 반이나 줄어들까 싶구나
연기 안개 모아져서 돌아간 뒤에
빈 산에는 둥근 달만 외로이 남아 있을 뿐
엊그제 결제일에 모여 생사도 묻지 않고 전후좌우도 묻지 않고 오로지 조사관(祖師關)만을 꿰뚫어야겠다 했더니 어느새 90일이 지나 해제날이 되었습니다.
해제날이 되거나 가까워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공부를 지어가면서도 으레 납자들은 공연히 마음이 들뜨기 마련입니다. 마땅하게 누가 오라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지만 걸망을 메고 일주문을 나서는 납자나 아예 갈 곳이 없어 숫제 산문 안에 남아 텅빈 선방 청소나 하고 조석으로 포단(蒲團)을 지키면서 조실스님 곁에 남아있는 납자 사이에는 아득히 먼 거리가 느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다 보면 본래 비어 있는 산중이지만 유달리 적요하기 그지 없는데 선방을 에워싼 산능선에 연기도 아니고 안개도 아닌 또 연기이기도 하고 안개이기도 한 연하(煙霞)라는 것이 피어올라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해가 지면 가없는 하늘에 둥근 달만 홀로 외로이 보이는 것이 남아 있는 납자의 해제입니다.
그러나 산문 밖을 나간 납자는 티끌 하나도 다 못되는 세상의 어디를 가도 납자 신세는 항상 외로운 것이고, 선방에 남아 빈 산에 둥근 달만 외로이 남은 경지를 만끽하는 납자는 여기서 참 공부가 살아나기도 합니다. 처자권속과 일가친척을 멀리 떠나 세속의 부유만덕(富有萬德)도 다 버리고 산중에 들어와 중이 되어 생사해탈 한 번 해 보겠다고 선방에 들어와 지내다가 해제가 되면 도반들마저 떠나고 덩그라니 혼자 남아 있다보면 어쩔 때는 자신이 애처롭고 불쌍하기까지 합니다.
이 때 무심코 하늘을 보니 가없는 허공에 둥근 달이 홀로 떠서 지긋이 웃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 달이야말로 진정한 나의 도반이오 나의 스승이니 반갑기 그지없기에 한없는 도정(道情)을 보냅니다. 이 때에 하염없는 달을 보고 한 곡조 읊는다면 이가 바로 철우(鐵牛)의 만고운곡(萬古韻曲)이요, 언전소식(言詮消息)입니다.
이 때가 참으로 공부 짓는 좋은 시절입니다. 납자는 이 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어떤 중이 조주(趙州) 선사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선사가 대답하기를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중이 다시 묻기를 “있다면 어째서 가죽 포대 속에 들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하기를 “그가 알면서 짐짓 범했기 때문이다.” 하였습니다. 다시 또 다른 중이 조주스님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하되,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중이 다시 묻기를 “일체 중생이 모두다 불성이 있다 했거늘 개는 어째서 없다 하십니까?” 하니, 선사가 말하되 “그에게 업식(業識)이 있기 때문이니라.” 하였습니다.
오늘 해제하는 모든 납자들이여! 이 병납(病衲)이 조주스님의 말씀을 들어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개에게 불성이 있다고 해도 맞지 아니하고 개에게 불성이 없다 해도 맞지 아니하며 혹 있다거나 혹 없다고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 한 마디 이르십시오.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이르십시오.
유수개함월(有水皆含月)
무산부대운(無山不帶雲)
물이 있으니 달을 모두 머금었고
산이 없으니 구름을 두르지 않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