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석굴암(주지 종상)에서 30여 년 동안 원주소임을 봤던 한 노스님의 좌탈입망(坐脫立亡) 열반이 교계에 잔잔한 파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대성(大聲)스님은 7월 26일, 세수 92세로 자그마한 수행공간에서 좌정한 채로 열반에 들었다. 스님은 72년부터 석굴암에 주석하면서 열반에 드는 그날까지 노구를 이끌고 원주소임을 놓지 않으며 수행정진에 철저했다.
석굴암 기획실장 성제스님은 “후학 스님들의 수행정진에 한 치의 부족함이 없도록 섬세히 보살폈다”며 “스님은 그렇게 이곳에 오셨다가 그냥 그렇게 떠나가셨다”고 말했다.
특히 대성스님은 평소 자리에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정진을 통해 젊은 스님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고 한다. 일평생 대중들에게 일체의 법문을 하지 않았다는 스님이 오직 자신의 수행을 통해 후학스님들에게 무언의 법문을 전해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더구나 노구를 이끌고 장좌불와를 하면서 일체의 편안함도 멀리했다고 한다.
“좀 편히 앉아서 수행하시라고 두툼한 방석이라도 가져다 놓으면 어느 틈엔가 밖에 나와 있을 정도였습니다”
석굴암 공양주 이무염화 보살(63)은 “평소에는 석굴암 부처님 그것과도 같은 인자한 미소를 지닌 스님이었지만 사중 살림에 대해선 호랑이 같았다”고 회고한다.
스님의 수행력은 여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다. 스님은 열반에 들기 바로 얼마 전까지도 90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새벽예불은 물론, 사시예불, 저녁예불까지 참석했다. 더구나 새벽예불에 들기 전에는 추운 겨울날에도 항상 찬물로 목욕재개하고 제일 먼저 법당에 들어가 촛불을 켜고 좌정했다.
그러나 사중 어느 누구도 스님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 스님은 30여년을 석굴암에서 주석했지만 원주소임에 관련된 일 외에는 찾아오는 불자들을 만나거나 외출을 하지도 않고 오직 스님의 방사에서 좌정하며 경전을 읽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오죽하면 스님의 법명이 실제는 창호(昌湖)였으며 속명이 김대성 이었다는 것을 스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석굴암 김대용 사무국장은 “석굴암의 창건주가 같은 이름의 김대성 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스님은 아마도 석굴암과 큰 인연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스님의 영결식은 불국사 회주 성타스님, 주지 종상스님을 비롯해 불국사 선원, 강원 스님, 신도 등 사부대중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28일 석굴암 법당에서 엄숙하면서도 조용히 치러졌다. 스님의 49재는 8월 1일 초재를 시작으로 매주 금요일 열리며, 9월 12일 막재가 봉행된다. 문의 054-746-9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