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말 경기 말이 아니예요. 경기가 안 좋으니까 차(車)도 잘 쓰지 않는지 자동차 정비소를 찾는 사람이 없어요.”
“힘들지? 그럴수록 마음을 느긋하게 먹어야 해.”
“그럼. 속 끓이지 말고 불경기일수록 마음을 관(觀)하도록 하게.”
7월 6일 오전 9시 30분, 원통사를 올라가는 산행(山行)길에서 이러한 대화들이 오 갔다. 자동차 정비소를 한다는 한 젊은 거사가 사업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을 걱정하자 나이 지긋한 거사들이 격려를 해준다. 40여명의 거사들은 배낭과 함께 커다란 짐을 하나씩 지고 있으면서도 정답게 대화를 나누며 가볍게 산길을 걸어간다. 매주 쌀, 배추 등 부식거리, 과일 등 절에서 필요한 물품들이 이렇게 등짐으로 절에 도착된다.
사찰의 거사회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아직도 절에서 남자신도를 보기는 흔치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찰이 보살들의 주도하에 일이 진행된다. 거사회가 있는 사찰이라 해도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다거나, 보조 정도에 머무는데 비해 원통사는 거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지난 1991년 결성된 원통사 거사회는 참배만 하고 간다거나 뒷짐 지고 관망만 하는 신도이길 거부한다. 절 살림을 내 집 살림처럼 자상하게 챙긴다. 따라서 절 곳곳에 거사들의 땀이 배어 있고 손길이 닿아 있다.
도봉산 원통사(주지 원철)는 해발 640m 정도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다. 산 입구에서부터 평균 1시간 정도 걸린다. 오르내리는 길에는 바위사이를 넘어야 하는 난코스(?)도 있다. 때문에 원통사는 쌀, 반찬거리는 물론, 일상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일일이 사람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다.
원통사는 신중기도, 관음재일, 나한기도 등과 함께 일요법회도 열고있지만 대부분 직장이 있는 거사들은 아무래도 일요일에 갈 수 밖에 없다. 전체회원은 70명. 자주 오는 사람들은 40명 안팎. 대형 냉장고, LPG 가스통, 컴퓨터 등은 물론, 시멘트, 종이, 페인트, 연통, 그릇 등도 다 거사들의 등 신세를 졌다.
“저기 관음보전 지붕 양쪽에 있는 용머리를 옮길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하나의 무게가 자그만치 200kg이거든요.”
3년전 동기와로 장엄된 관음보전을 가리키며 이종인거사(길상사 관리장, 54)가 말했다. 요사채는 푸른 기와를 덮고 있다. 이 모두 거사회를 비롯 신도들이 일일이 져나른 것이다.
6일, 짐을 진 거사들은 절에 도착하자마자 물건을 정리한 후 도량정비에 들어갔다. 일부는 무너진 흙담을 손보고, 일부는 장맛비에 잔뜩 자란 풀들을 정리하게 시작했다. 흙과 시멘트를 나르고 담에 들어갈 낡은 기왓장을 가져오고 담의 모양을 재고...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지시도 없다. 척척 진행된다. 1시간여가 지나자 낡은 기왓장이 켜켜 들어간 깔끔한 토담이 쌓아졌다.
종무소 옆 방은 올 4월에 거사들이 직접 만들었다. 기초를 다지고 벽을 세우고 지붕을 만들고, 전기선 배선, 보일러 놓는 일, 도배까지 다 했다. 청소, 보수 뿐 아니다. 도량 여기저기 잘 고른 밭에는 상추 고추 깻잎 배추 무우 등이 자라고 있다. 거사들이 직접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키우며 추수까지 한다.
원통사는 우이암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등산객이 끊이질 않는다. 따라서 원통사 해우소는 바로 등산객들이 수시로 들르는 장소다. 가득 찬 인분을 퍼서 거름으로 삭히고 밭에다 내는 일도 봄 가을 거사들이 하고 있다.
“흔히들 더럽다고 상을 찡그리고 그러잖습니까? 우리가 먹은 음식이 우리 몸의 영양분이 되고 남은 것이 똥과 오줌이 되고 그것이 다시 밭에 뿌려지면 알곡과 채소들을 살지우는 거름이 되지요. ‘不垢不淨’ 이라고 매일 외우잖아요.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우리는 치워도 치워도 금방 차는 분뇨를 보면서 그것이 탐진치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합니다.” 매일 해우소를 가지 않을 수 없듯 탐진치 삼독을 버리도록 매일 마음을 정화하자는 것이 김경세 회장(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회장)의 말이다.
울력과 점심공양을 마치면 일요일마다 열리는 교양대학에서 공부를 하거나 법당에서 독경을 한다. 교양대학은 3기가 공부중이다. 1년 코스인 교양대를 수료한 거사들은 삼성각에서 신묘장구대다라니 독경삼매에 빠지거나,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동굴법당 나한전에서 참선에 든다.
“법회에 참석하는 군인들을 보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어요. 젊은 그들에게 불교의 진정한 맛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비록 햄버거를 먹기 위해 군법당에 왔더라도 부처님가르침이 마음밭에 뿌려지면 당장에는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싹이 트겠지요.”
원통사 거사회는 관음회(보살들 모임)와 함께 2달에 한번씩, 자매결연을 맺은 연천 5사단 35연대를 방문한다. 군인들과 함께 법회를 보고 음식을 나누고 상담도 해 주는데, 군불자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구동성. “요즘 풍물을 배우고 있습니다. 재미있어요. 부처님오신날 연등만 들고 걸으려니까 너무 밋밋합니다. 풍물을 배워 제등행렬 때 신나게 분위기를 돋구고, 군법당 위문 때도 보여주고 싶어요.” 젊은 피를 수혈해 현재 50대가 평균연령인 거사회가 좀 젊어졌으면 하는 것도 회(會)의 바람이다.
겨울, 눈이 많이 와 조난당하거나 다친 사람들을 돌봐주는 일도 거사들이 자원해 하고 있다. 등산로 곳곳에 거친 바위를 다듬고 계단을 만들어 좀더 수월한 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오가는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거사회원들이 시간을 내 틈틈이 손을 본 덕분이다.
원통사 총무 황산스님은 “사회적으로 나름대로 위치에 있는 분들이지만 늘 하심하고, 열악한 여건하에서도 절 일이라면 몸을 아끼지 않아 고맙다.”면서 “64세인 김경세 회장이 무거운 짐을 자청해 지고 올라오는 등 임원진이 솔선수범하는 데다, 서로 서로 챙겨주는 가족적인 분위기와 관음봉(우이암) 바위처럼 견고한 신심이 우리 거사회의 자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