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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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법 난립시대, 조사선의 나아갈 길-2
간화선 Vs 위빠사나

지금 한국불교는 수행법 홍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의 간화선도 이제 이 시대와 지구촌에 걸맞는 수행체계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에서 송대에 이르러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서 조사선이 간화선으로 본격적인 재정비를 했듯이 지금의 정신문화의 수준을 반영해 한국의 선수행 기풍도 새롭게 탈바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위빠사나를 중심으로 한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다시 생각해 보고 현재의 제반 수행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초기불교 수행법은 후기에 발달된 모든 불교 수행법의 이론적 근거와 실제적 토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편집자 주)

■위빠사나의 확산과 간화선의 대응
남방불교의 위빠사나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것은 1987년. 거해 스님의 안내로 미얀마의 우판디타 스님이 그의 스승 마하시 스님이 체계화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한국에 소개하면서부터다. 위빠사나는 아직 보급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나 동남아에서 비구계를 받거나 수행법을 익히고 돌아온 스님과 불자들이 지난 3~4년 사이에 선원이나 명상센터를 잇달아 개설, 현재 수행기관만 20여 곳에 이른다. 최근 보리수선원, 연방죽선원, 천안 호두마을, 김해 다보선원 등에서 위빠사나 수행법으로 정진한 불자는 2만여명. 매주 한 차례 이상 정기법회에 참석하는 수행자만도 5천여명에 이른다.

중국 선종의 전통을 이어온 국내 불교계는 위빠사나의 확산에 대해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간화선 수행풍토에 위기의식을 느끼는 동시에 소승불교로 폄하하는가 하면, 간화선과 위빠사나가 공존하면서 상좌불교가 새로운 종단으로 성립해도 좋다는 견해도 내놓고 있다.

조계종에서는 매 안거마다 90여 개 선원에서 2000여 명의 수좌가 안거에 들어 간화선 수행에 들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초 수행 및 지도점검 체계와 선지식 부재의 실정에 놓여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또한 재가자들은 위빠사나는 물론 묵조선, 염불선, 독경, 사경, 간경, 주력, 염불, 절 등 전통 수행법과 이른바 ‘제3수행법’등 다양한 수행법으로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이런 과도적인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불교 수행 전반에 관한 다각적인 연구와 실천체계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간화선-위빠사나의 공통점
남방 및 북방의 여러 가지 수행법들의 언어 표현과 구체적인 행법들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성장했다 할지라도, 이들 수행법 속에서 일관성 있는 이론적 토대를 찾아 볼 수 있다. 불교의 모든 수행법들이 붓다의 근본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산스님(조계종 사회부장)은 “불교의 공통적인 수행 원리들의 특징은 행복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해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라며 다섯 가지 원리를 제안한다. 수행의 제1원리는 항상 마음의 빛을 ‘밖에서 안으로’ 돌이켜(廻光反照) 이 물심현상의 향방을 면밀히 살피는 것이다. 둘째는 마음이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도록 ‘지금 여기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셋째 원리는 마음챙김(sati)과 알아차림이다. 간화선에서 대의심이란 늘 화두와 함께 하는 것, 즉 화두챙김이 있으므로 가능하며 이것이 ‘마음챙김’이다. 넷째는 분별심을 떠나 있는 그대로 보기다. 분별심을 벗어나 평정심을 회복하면 현상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관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 다섯째 원리는 중도의 입장을 견지하며 거문고 줄을 조율하듯, 쉬지 않고 꾸준히 한 곳에 매진하는 것이다.

각묵스님(초기불전연구원)은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견성과 해탈로 승화되어 귀결되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말한다. 또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모두 선정보다 지혜를 중시한다고 주장한다. 즉 간화선이 견성과 화두 챙김을 중시하는 이유는 선정의 고요함에 함몰하기 보다는 지혜로서 돈오견성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도 사마타의 적정처에 머물지 않고 온갖 물질과 마음의 현상이 무상, 고, 무아임을 통찰해 해탈을 실현하는 가르침이다.

■두 수행법의 차이점
북-남방 수행법을 대표하는 간화선과 위빠사나는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차이점을 갖고 있다.

인경스님(선상담연구원 기획실장)은 위빠사나가 대상을 인정하고 그것과 하나됨을 추구함으로써 번뇌를 극복하려는 입장에 있다면 간화선은 대상관계를 배제하고 견성을 강조한 점, 번뇌 자체를 부정한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분석한다. 간화선이 펼치는 화두 참구는 사물에 대한 관찰이 아니라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그것의 종착지는 주체도 대상도 없으며 이 세상이 깨달음 그 자체임을 깨닫는 것.

종호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은 위빠사나의 수행법은 처음 지계를 통한 예비단계를 거쳐 호흡 등 육신의 동요에 대해 살피고 이후 느낌이나 생각 등 정신적 움직임을 살펴나가도록 하는 등 매우 세부적이면서 직접 겪게 되는 문제점들의 해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간화선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선 수행의 핵심으로 삼는 특색이 있다고 설명한다.

현웅스님(미국 버클리 육조사 주지)은 “위빠사나 명상법이 팔, 다리 등 감각과 느낌을 통해 점진적으로 들어가 깨달음을 완성하는 것이라면 간화선은 그런 무상한 것들을 놔두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다(空)’는 관점으로부터 들어가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라고 말한다.

■두 수행법의 장단점
위빠사나는 좌선(坐禪)뿐 아니라 행선(行禪), 호흡관 등을 적절히 배합해서 지루함을 덜어주기 때문에 초심자도 접근하기 쉬워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쉽다는 것이 오히려 함정일 수 있다는 비판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현웅스님은 “서양인들이나 동양인들 모두 감각을 통해서 들어가는 방법을 쉽다고 느껴서, 요즘 위빠사나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일시적인 평온에 불과하며 현실에 부딪히면 금방 무너져 버리는 함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부처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일일이 지도해 주셨기 때문에 어떤 경계를 뛰어 넘을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부처님과 같은 스승이 없기 때문에 위빠사나로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호스님도 방법론상으로 위빠사나가 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간화선이 최상의 수행법인 이유는 분명하다고 강조한다. 위빠사나가 자신에게 나타나 있는 문제점을 하나 하나 해결해 나가는 세분화된 방법인데 비해, 간화선은 하나로 묶어서(화두) 전체로 나아가는 수행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위빠사나와 간화선을 동등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화선 역시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갖고 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간화선의 장점은 생활 속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월호스님은 “간화선은 본래 생활선(生活禪)으로서 주창된 것이지, 상근기의 소수 수행 전문가들을 위한 수행법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간화선의 주창자인 대혜(大慧)선사의 <서장(書狀)> 가운데 62편의 편지글 중 60편의 글이 재가불자를 상대로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가운데 꾸준히 화두를 참구해 나갈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월호스님은 “화두 참선법이야말로 모든 근기의 사람들을 위하여 개발되고 권장되어진 가장 발달한 수행법이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간화선의 단점도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은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일부 안목 없는 선사들이 경전이나 어록, 공안집을 제대로 후학들에게 가르치지도 못하고, 학인들이 경전이나 어록 등을 읽고 보는 것조차도 못하게 하여 불법의 본질과 정신을 모르는 수행자를 만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현웅스님은 “간화선은 나무의 뿌리를 파헤친다는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수행방법이지만 명석한 두뇌와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는 쉽지 않으며 혼자 수행하다가 어떤 특이한 것을 체험하게 되면 그것이 정말로 올바른 깨달음인지도 모른 채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해 버리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간화선 위주의 한국불교는 수행문화의 다양성과 창조적인 긴장을 위해서라도 초기불교의 수행이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수행법 보다는 수행자가 문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화두선은 왜 어렵다고 하는지, 왜 간화선 수행자들이 법거량 하는 것을 보고 ‘현실과 상관없는 관념의 유희다’ 하는 소리를 하는지, 선이 정말로 현대인들에게 맞는 수행법인지 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재성 빠알리성전협회장은 “화두선이 수승한 수행법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국의 선방은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강조하며 바로 선수행에 돌입한다. 선이 성립하게 된 역사적 교리적 기초를 닦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일부 소장 스님들 가운데는 “현재 제대로 인가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거의 없는 조계종의 간화선 수행체계에 문제가 있다”면서 “차제에 간화선 수행체계를 정비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혜원스님(동국대 선학과 교수)이 비구니 스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단계별로 적합한 수행법이 제시돼야 한다’는 응답이 89%나 나온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간화선 수행의 제반문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자성하며 올바른 간화선의 수행 방법과 공안 공부, 지도 방법 등을 정확히 파악, 이 시대에 맞도록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여론이 높다.
김재경 기자 | jgkim@buddhapia.com |
2003-07-10 오전 8: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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